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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책읽기

필사의 기초-좋은 문장 잘 베껴 쓰는 법, 조경국 저

필사를 계속하면 좋은 점

by Someday


조경국 작가는 '필사는 책과 펜과 노트를 동무 삼아 '삶을 정제'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작가가 필사를 사랑하는 이유 (23쪽)

1)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2) 차분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

3) '기억의 연장'에 있다.

4)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

5)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씨란 타고나는 것이며 필재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명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재가 있는 사람의 글씨는 대체로 그 재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일견 빼어나긴 하되 재능이 도리어 함정이 되어 손끝의 교(巧)를 벗어 나기 어려운 데 비하여 필재가 없는 사람의 글씨는 손끝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쓰기 때문에 그 속에 혼신의 힘과 정성이 배어 있어서 '단련의 미'가 쟁쟁히 빛나게 됩니다.'

-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어린 내가, 자기 마음에 든 책에서, 고전도 포함해서, 한 구절을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인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우선 책을 사서 내 것으로 하기 꽤 어려웠다는 점을 꼽겠습니다.

이웃 마을에 책방이 있었지만, 새로운 책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돈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그것은 내가 종이에 글을 옮겨 적는 일을 좋아하는 소년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번씩 옮기면서 정확하게 익히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부정확하게 익히는 것은 익히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나쁘다고 아버지가 내게 말씀했습니다.'

- 오에 겐자부로 『나의 나무 아래서』 중에서


'삶 가운데에서 예술을 배우고, 예술작품 안에서 삶을 배우라.

어느 한쪽을 옳게 알면, 다른 한쪽도 알게 되리라'

- F. 횔덜린 『다섯 편의 에피그램』


'대체로 글이란 눈으로 보고 입으로 읽는 것보다 손으로 직접 한 번 써 보는 것이 백 배 낫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반드시 마음이 따르므로, 20번을 읽고 외운다 하더라도 힘들여 한 번 써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가장 중요한 내용을 밝혀낸다면 일을 살피는 데 자세하지 않을 수 없고, 감추어진 이치를 반드시 끄집어낸다면 생각하는 것이 정확하고 세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 그 가운데 같거나 다른 내용을 깊게 살리고, 옳고 그른 점을 판단해 의심 나는 곳을 기록한 다음에 잘잘못을 가리는 자신의 이론과 논리를 덧붙여 보라. 그렇게 되면 지혜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마음이 누리는 안정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이덕무, 『사소절』 중에서


'부지런히 메모하라. 쉬지 말고 적어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기록은 생각의 실마리다. 기록이 있어야 기억이 복원된다.

습관처럼 적고 본능으로 기록하라.'

-평생 500권이 넘는 책을 썼던 다산 정약용,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 중에서



궁극의 독서법, 필사 (35쪽)

다산 정약용은 독서의 방법 다섯 가지를 말한다.

두루 읽는 박학(博學),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 명백하게 분별하는 명변(明辯), 읽고 성실하게 실천하는 독행(篤行)이다.

다산 선생은 선비들이 박학에만 빠져 다른 것은 가벼이 여긴다고 탄식했다.

두루 읽는 것도 좋지만, 심문, 신사, 독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독서를 완성할 수 없다는 의미다.


편안한 필사 자세 (41쪽)

'춥고 무더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날마다 갈대 혹은 새의 날개뼈로 만든 펜을 오른손에, 작은 칼 - 펜과 칼의 사자생(필사공)의 상징물이었다 - 을 왼손에 꼭 쥐고 책상에 엎드려 할당된 책임량을 채워야 했던 사자생들은 완성된 사본의 말미에 보람과 기쁨과 쌓인 고통, 그리고 불만을 토로하곤 하였다. "성모 마리아여, 사자생을 지켜 주소서." "여기서 이 책은 끝난다. 나의 손은 그것을 기뻐한다." "펜의 대가로 예쁜 아가씨를 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외』 중에서


옛 유럽 수도원의 필사공들은 고된 작업을 하는 노동자였다.

현대사회 인쇄술이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으니, 주위는 넘쳐나는 책들로 가득하다.

전자책까지 손바닥 속에 항시 대기 중이다.

그러니 우리의 필사는 고급 진 취미생활이다.


저자가 추천하는 필사 자세

1) 하루 30분, 시 두 편이나 두어 단락 좋은 문장 옮기기

2) 필사 전, 몸을 쭉 펴고 스트레칭 - 근육의 긴장을 풀고 하면 필사를 더 즐겁게 할 수 있다.

3) 몸도 바르게 세운다 - 책상과 몸 사이는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 여유를 두고 몸을 세운 다음 손에 힘을 빼고 필사한다.

4) 책을 독서대에 세우고 조명은 글씨를 쓰는 데 그늘지지 않도록 왼쪽에 둔다. 왼손으로 쓰는 사람은 그 반대.

5) 펜을 잡을 때 - 가볍게 쥐되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는다. 젓가락 쥐는 요령과 비슷하다. 펜의 각도는 45도가 적당

필사를 즐긴다 해도 목이 뻣뻣하고 허리가 휘고, 자세가 기울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펜을 놓고 쉬어야 한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져 글쓰기를 시작한 작가도 있다.

물리학자이자 수필가였던 데라다 도라히코는 위궤양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씨를 쓸 때는 '조화, 균형, 변화' 이 세 가지를 염두에 둔다. (65쪽)

글자는 음과 뜻을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그림과 같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가지런한 크기와 반듯한 오와 열을 익히기 위해 처음엔 10칸 공책으로 시작한다.

어느 정도 글씨 교정이 되었다 싶으면 모눈 공책을 구입해서 사용한다. 유선 공책보다 글씨를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고, 활용도도 높다.

10칸 공책 -> 방안 공책-> 유선 공책 -> 무선 공책 순으로 넘어가며 글씨를 교정하면 도움이 된다. (76쪽)


필사력을 키우는 방법 (77쪽)

'만약 천국이 있다면 나는 끝없이 쓸 수 있는 노트를 가지고 갈 것이다.

-에드워드 O. 윌슨, 『과학자의 관찰 노트』 중에서


1) 메모도 필사하듯

2) 필사는 자기 글을 쓰기 위한 디딤돌


작품 속, 역사 속 필사 이야기 (98쪽)

1) 오엔 겐자부로는 한 글 자도 쓰지 않던 날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카드나 노트에 썼다.

2) 브루스 채트윈의 작품은 평소 그가 즐겨 쓰던 노트에서 시작되었다.

3) 신영복은 사형을 언도받고 차가운 육군 교도소 감방 바닥에 엎드려 하루에 2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에 유서처럼 써 내려갔다.

조경국 작가는 책 『신영복의 엽서』를 구해 읽길 적극 추천한다.

4) 스티브 킹은 작가가 되고 싶은 독자들에게 많이 읽고 많이 쓰라고 충고한다. 지름길은 없다. '많이 쓰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필사도 포함된다.

5) 이대준은 여러 권 노트를 두고 썼다. 끊임없이 작품의 실마리를 찾고 문장을 다듬었다. 다음은 『무서록』에 나오는 제재(製材)이다.

'집기장이 책상에 하나, 가방에나 포켓에 하나, 서너 개 된다.

전차에서나 길에서나 소설의 한 단어, 한 구절, 한 사건의 일부분이 될 만한 것이면 모두 적어 둔다.

사진도 소설에 나올 만한 풍경이나 인물이면 오려 둔다. 참고뿐 아니라 직접 제재로 쓰이는 수가 많아 나는 사선보다 인물을 쓰기에 좀 더 노력하는데 사진에서 오려진 인물로도 몇 가지 쓴 것이 있다.

제재에 제일 괴로운 것은, 나뿐이 아니겠지만 가장 기민하게, 가장 힘들여 취급해야 할 것일수록 모두 타산지석으로 내어 던져야 하는 사정이다.'

6) 정약용은 주변에서 모두 인정한 '속필가'였다. 그는 평소 책의 중요한 부분을 베끼며 읽는 '초서(抄書)'를 중요하게 여겼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위해선 초서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믿었다.

7) 알 - 나딤의 저서 『알 피리스트』는 도서관 장서의 내용을 요약한 '목록'이다. 그는 자신이 읽거나 작업했던 책을 꼼꼼하게 요약하고 기록해 묶었다. 이 책에 언급된 책은 대부분 사라졌고, 그 책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건 『알 피리스트』 책밖에 없다.

8) 드니 디드로는 프랑스 계몽사상가다. 그는 평생 『백과전서』 만들기에 헌신했다. 이 책에 참여했던 계몽사상가 집단을 '백과전서파'라고 한다.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당시 내노라는 사상가들이 『백과전서』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탰다.

9) 임종국은 15년간 필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1만 2천 장의 친일 인명 카드를 작성한다. 이 친일 인명 카드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20년이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바탕이 된다. 손글씨로 정서한 '친일 인명 카드'와 노트들은 '필사의 정수'다. 투철한 역사의식과 강건한 의지가 바탕이 된 필사는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기록이다. 다음은 그가 남긴 글이다.

'혼이 없는 사람이 시체이듯이 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역사는 꾸며서도, 과장해서도 안 되면 진실만을 밝혀서 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한다.

15년 걸려서 모은 자료들이 그런 일에 작은 보탬을 해 줄 것이다.

그것들은 59세인 나로서 두 번 모을 수 없기 때문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는 내 서재를 뜰 수가 없다.

자료와 그것을 정리한 카드 속에 묻혀서 생사를 함께할 뿐이다.


조경국 작가가 추천하는 옮겨 쓰고 싶은 책 열 권, 참고할 만한 책 다섯 권

『무서록』부터 『문구의 모험』까지


옮겨 쓰고 싶은 책 열 권 (115쪽)

상허 이태준 『무서록』, 『문장강화』

김성동 『김성동 천자문』, 『대동 천자문』

백석 백기행 『정본 백석 시집』과 『한국 현대 시선』 1,2권

가와바다 야스나리 『손바닥 소설』

호시 신이치 『플라시보 시리즈』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책』


참고할 만한 책 다섯 권 (123쪽)

민병일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박종진 『만년필입니다』

데이비드 리스 『연필 깎기의 정석』

제임스 워드 『문구의 모험』

밥장 『밥장, 몰스킨에 쓰고 그리다』



필사를 계속하면 좋은 점을 정리해 본다.

필사하기 좋은 책은 읽기도 무난하고 쓰기도 쉬운 교재(교과서)로 시작, 차차 고전과 문학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좋다.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도 어려운 단어와 문장이 길거나 많은 책을 필사하기란 쉽지 않다.

처음부터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면 도중에 포기하게 된다.

바른 맞춤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필사를 통해 글을 옮겨 쓰면 자연스럽게 바른 맞춤법을 익힐 수 있다.

어휘력이 절로 향상된다. 책을 그대로 옮겨 쓰다 보면 평소 사용하지 않던 새로운 단어를 익히게 된다. 자연스럽게 어휘력이 향상되다 보면, 말을 하거나 글쓰기를 할 때 표현력이 보다 풍부해진다.

논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손으로 쓰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향상된다. 차근차근 그대로 옮겨 쓰는 동안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커지게 된다.

암기력이 좋아진다. 책을 옮겨 적다 보면 단어나 짧은 문장이 저절로 습득된다. 필사를 꾸준히 하면 외울 수 있는 문장도 조금씩 늘어나고, 이런 지속적인 과정은 암기력을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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