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숲에서 복효근 시인의 '버팀목'을 생각한다.
우리를 지리산 숲으로 이끌어 줄 박형유 지도사는 은퇴 후, 산림지도사의 길을 걷게 된 지 4년째라고 한다.
양보현 지도사는 산이 좋아 산을 품고 살아가는 노르딕 전문가이기도 하다.
두 분 모두 아직 젊고 건강한 50+세대이다.
지리산을 아끼며 지켜가는 이분들은 우리 같은 도시인들에게 생태계의 소중함을 알리는 숲의 전도사이며, 인생 2 막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동년배이기도 하다.
지리산에서도 말벌이 개체 수를 늘려가고 있나 보다. 숲길 초입에서 발견한 말벌 집이다.
지구온난화로 말벌이 늘어난 탓일까?
최근, 도시에서도 말벌집을 처리해 달라는 119 전화도 많이 늘어났으니, 말벌은 초대받지 않고 등장한 불청객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산딸기 꽃은 6월에 흰색으로 피고 열매는 집합 과로 둥글다. 보통 7∼8월에 짙은 붉은빛으로 익는다.
국수나무 흰 꽃은 계곡 주변이나 숲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지를 잘라 잘 벗기면 국수 같은 하얀 줄기가 나온다고 하여 국수 나무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즐겨 먹는 국수와는 관련이 없다. '거렁방이나무'라고도 부른다.
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는 웅덩이 속 올챙이가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은 독특한 향이 나는 산나물이다. 땅두릅과 나무 두릅이 있다.
비목의 초록 잎을 살포시 쥐었던 손에서 진한 레몬향이 묻어난다.
비목 열매가 바로 '사랑의 열매'이다.
조릿대는 벼과에 속하는 키 작은 대나무로 우리나라 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조릿대라는 이름은 ‘조리를 만드는 대나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조릿대는 곰이 좋아하는 풀이기도 하다.
인생 계단을 오르듯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 숲길 통나무 계단,
가까이서 들려오는 온갖 새소리에 귀가 활짝 열린다.
주위 모든 동식물 친구들의 속살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조릿대 길이 이어지는 이곳 언저리까지는 도립공원이고, 아래 사진부터는 국립공원 구역이라고 한다.
얼핏 보면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는 사이좋은 이웃 같아 보인다.
초기엔 나무도 크게 피해를 입지 않지만 넝쿨이 빠르게 성장할수록 나무로부터 빼앗아 오는 영양분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국 나무는 고사당하고 넝쿨은 다른 나무로 계속 옮겨가며 쑥쑥 성장한다니,
나무 기둥을 바라보며 잠시 '아름답다'던 낭만적인 생각이 싹 사라진다.
우리는 함께 '내 나무터'로 올라간다.
숲과 교감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행에게 서로 좋은 점을 말해주고 '최고'라고 큰 소리로 치켜세워주기도 한다.
당신은 건강 짱, 행복 짱, 돈 짱, 스마일 짱.... 이렇게 외치고 나니, 속이 탁 트인다.
상대를 칭찬해 주는 기쁨도 내가 받는 것보다 더 유쾌 통쾌하더라.
지리산 숲 속에서 서로 '최고'라고 소리쳐 불러보니, 정말 가장 멋진 사람이 된 듯도 하고, 오히려 겸손해지기도 한다.
우리도 나무처럼 서로 기대어 산다.
누구나 자기만의 버팀목이 있다. 가족과 친구일 수도 있고. 한 줄 글과 한 권 책일 수도 있다.
이제 나도 살아온 날이 길어졌으니, 남은 생은 누군가의 버팀목으로 살다 가고 싶다.
지리산 숲에서 복효근 시인의 시를 생각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릴 적에도 지금 늙어서까지도 내겐 든든한 버팀목이지!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비움의 숲'과 '채움을 숲'을 돌아보면서 '관계'에 관해 다시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리산 숲 속 친구들의 관계도 얽히고설켜 있는 것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숲 속 친구들도 저들만의 생존을 위해 조용하지만, 각자 또 함께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리산을 온몸으로 느끼며 함께 걸어 내려오는 이 길은 오늘 새벽 혼자 걷던 그 길과 일부 겹친다.
아침에 두 번씩 마주치는 같은 숲길이니, 혼자 속으로 더 반갑다.
숲과 갖는 교감은 건강한 관계이다.
이제부터 토요일 오후는 자유시간이다.
우리는 점심 식사할 장소를 찾아 남원시내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