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중턱에서 박규상 최희경 부부가 살아가는 이야기
남원 산내면 지리산 중턱에 보금자리를 꾸민 최희경 부부는 온아한 이미지가 서로 닮아 있다. 코로나 여파로 한동안 운영하던 에어비엔비 ‘수토산방’은 아직까지 열지 않은 상태다.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산 중턱 비탈진 외길에 집을 지었으니, 매일매일 아름다운 지리산 풍광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복 받았다고 해야 할까!
먼저 최희경 씨와 2명의 친구가 의기투합했고, 남편 두 사람의 적극적인 지지가 더해져 지리산 안쪽 산내면 양지바른 언덕에 3개의 지붕을 올리고 다섯 사람이 삶의 터를 잡았다. 박규상 최희경 부부, 남편의 선배와 희경 씨 대학동창 부부, 싱글 친구 한 사람, 이렇게 3 가구가 함께 살고 있다.
박규상 부부는 2013년 8월부터 2015년 8월까지 경기도 양평 국수역 근처 북포리에 전세를 얻어 2년간 전원생활을 경험했다. 이에 앞서 충주와 부여에서도 1년간 지역살이를 하면서 집 지을 터를 찾아 여행 삼아 자주 돌아다녔다. 고압선, 묘지, 쓰레기 매립장 등을 피해, 마을과도 어느 정도 떨어진, 공기와 경치 좋은 곳을 찾아 까다롭게 고른 곳이 이곳 지리산 중턱이다. 자녀들은 은퇴한 부모님의 산내 정착을 환영하진 않았다. 막내아들이 방위받을 때, 이곳으로 내려왔지만, 다행히 자녀들이 ‘인생은 각자 사는 것’이란 현실을 이해해 주었다.
집 짓기에서부터 부딪힌 현지인들과의 갈등
함께 모여 사는 친구들과의 갈등은 없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조금 떨어져 사는 마을 사람들과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친구 남편의 친구가 이곳에 먼저 정착, 집 지을 땅을 소개해주어서 구입했지만, 막상 집을 지을 때는 그분이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집 짓는 현장에 레미콘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도 앞장서는 바람에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진입로까지 돈을 지불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집을 짓고 우물을 팠더니, 이번엔 지표수량이 부족해졌다고 주장해서 우물까지 파주었다고 한다.
그나마 이곳은 도시에서 이사 온 분들이 전체 주민 중 절반 정도나 정착해서 살고 있어서 힘들어도 견뎌낼 수 있었다. IMF 때 정착한 분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마을 기금 관련해서도 50만 원을 미리 내고서야 지은 집에 입주할 수 있었다. 땅 문제, 돈 문제, 세대차, 문화차, 쓰레기 분리수거 처리 등 모든 일에서 생각이 다르니, 계속 부딪히며 갈등했다. 심지어 마을을 중앙 1리와 2리로 분리하자는 현지인들의 주장도 있었다. 지자체에 내려오는 관의 혜택은 함께 누리고 싶지 않다는 발상이었을까? 당연히 이주민들은 강력 반대했다.
마을 이장 선거도 외지인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그냥 배제시켰다. 이 일로 원주민들과 이주민들 간의 갈등이 다시 심해졌고, 결국 나중에 추인하는 형식으로 겨우 참여했다. 현지인과 외지인이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생길 수 있는 일들로 그냥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일종의 ‘텃세’라고 느껴질 땐, 더 힘들었다고 한다.
산내엔 동호회만 80개, 모든 주민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마을
그러나 모든 곳이 이곳 중앙리 같지는 않다. 가까이 있는 입성리(원천마을)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잘 지내는 중이란다. 물론 이곳도 일부 소유권 갈등을 겪기는 했지만.
지금도 근본적인 갈등은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마을기업에서 ‘화분나누기’, ‘마을 가꾸기’등의 프로젝트를 따오면서 모두들 자가가 좋아하는 동호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며 바삐 살고 있다. 길에서 마주치면 목례정도를 나누면서.
어찌 보면 이곳에 정착한 외지인 비율이 50%나 되다 보니, 현지인들도 도시인들의 문화를 다 품고 이해하긴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도 든다. 누구의 잘잘못이라기 보단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려는 기회와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산내 골에서 남편은 맥가이버가 됐고, 아내는 잔병치레 없이 산다.
시골에서 어느 정도 자급자족하며, 직접 만들고 고치며 살다 보니 ‘맥가이버’가 다 되셨다는 박규상 씨와 그런 남편 덕분으로 큰 걱정 없이 시골생활을 편히 잘 지내고 있다는 최희경 씨가 밝히는 귀촌의 첫 번째 조건은 ‘부부가 뜻이 맞는 것’을 꼽는다. 다음으로 용기, 돈, 건강이라고. 집이나 땅을 구입하기 전, 한 달 살기도 해 보고 가능한 1년 정도 지역살기를 해 보고 실행에 옮길 것을 권한다. 준비가 철저하면, 적응하기도 더 수월할 것이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도 훨씬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는 이곳으로 이사 와서 감기 같은 잔병치레는 하지 않고 산다. 공기가 맑고, 환경이 깨끗하기 때문이리라. 한여름에도 열대야가 없는 곳이며, 겨울에 눈이 내려도 폭설이 아닌 이상 내린 눈조차 따사로운 햇볕에 다 녹아내린다. 특별히 겨울눈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없다. 병이 나면, 이곳 사람들은 주로 보건소를 이용한다. 근처에 함양 성심병원, 남원 의료원 등을 있으나, 남원 의료원만 해도 규모는 큰데 인프라 확충이 제대로 되어 있질 않아 많이 아쉽다고 한다. 박상규 최희경 부부는 큰 병원 갈 일이 생기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평소 정기적으로 다니던 서울 아산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대부분 은퇴 후 시작하는 시골 살이다 보니, 건강 문제가 가장 커다란 관심사이기도 하다.
필요한 생활용품이나 먹을거리는 주로 인월 시장에서 사 온다. 시장 안에 농협 하나로 슈퍼가 있어 크게 불편한 점은 없다. 식자재를 제외한 상품들은 주로 온라인 구매를 이용한다. 택배도 우체국, 로젠, CJ, 쿠팡 등 대부분 이용가능하다. 자차로 인월 농협 마트까지 15분, 운봉 읍까지 20~25분, 남원 시까지 40분 정도 걸린다.
문화 인프라가 서울 못지않은 곳
산내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라면 문화 인프라를 꼽을 수 있다. 요가, 도자기, 꽃밭모임, ‘그래’(걷기와 자연관찰 모임), 지리산 탐사대, 국선도, 태극권 등 80개의 동아리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원시가 동아리를 지원하고 있어 강사나 프로그램의 질도 우수하다.
산내 중심의 지리산 권에는 산내면, 마천면, 운봉읍이 있다. 산내는 인구가 계속 늘고 있는 곳이다. 초등ㆍ중등학교 교육권도 좋아 전학인구도 늘고 있다. 특히, ‘실상사 작은 학교’는 초등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안학교로 타 지역에서도 유명한 곳이다. 실상사는 산내지역의 문화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이 지역 구심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묻자, 2가지 안을 내놓는다.
1안) 세 집에서 돈을 모아 사람을 2명 고용할 예정이라고. 집을 관리하고 돌보는 역할과 가사를 전담할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도 보았는데,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 많은 분들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도 일거리 창출일 수 있겠다. 병원에 입원해서 눕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2안) 연배가 비슷한 세 집 식구들이 나중엔 함께 같은 실버타운으로 들어갈 생각이라고.
지리산 언덕에 살지, 남원시 쪽에 정착할지는 귀촌인이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 도시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다면, 남원에서 편리한 일상을 즐기며 시작하면 되고, 맑은 공기와 온화한 지리산 품에 안겨 자연인처럼 여유롭게 살고 싶다면 산내를 선택해도 후회하진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