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구령 쉼터에서 장항마을 노루목 당산 소나무까지 걷다.
우리는 지난밤 고운향 센터에서 잘 쉬고 푹 자고 일어나,
오전엔 '수토산방'에 들려 인터뷰를 마치고, 자동차로 등구재 황토방 민박 식당에 도착했다.
금계에서 창원마을을 거처 등구재 고개를 힘들게 넘어온 이들에겐 등구재 황토방 민박 식당이야말로 쉼터이자 맛집이다. 등구재 황토방 민박집은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뚜벅뚜벅 걸어온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숙소로도 유명하다.
둘레길로 출발하기 전, 등구재 황토방 민박 식당에서 점심 식사로 든든하게 속을 채운다.
먹기에 바빠, 나중에 나온 비빔국수와 잔치국수는 사진 찍기도 잊고.
등구재 황토방 식당을 나와 패스파인더 가족과는 일단 이별하고, 50 플러스 세대 당사자인 우리만 지리산 둘레길 3코스에 오른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인월 - 금계 구간을 다 걸으려면 8시간이나 소요된다.
우리는 앞뒤 뚝 잘라내고 3시간 10여 분 정도 코스만 걷기로 정하고 출발한다.
그러나 나는 내심 3시간여 걷기도 꽤 부담스러웠다.
작년 부신 절제 수술 후, 밖에서 1시간 이상 걷기를 해 보질 않았다.
겨우내 집에서 트레이드 밀로 30분 정도 천천히 뛰기를 일주일에 5일 정도 꾸준히 해왔지만, 종종 숨이 찰 때도 있어 힘들어하곤 했다.
원래 걷기를 즐겼으나, 예전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지리산 둘레길을 일부분이지만 직접 걷게 되니, 일행에서 뒤처질까 걱정도 되었지만,
나의 한계를 느껴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다 싶어 혼자 살짝 흥분하기도 했다.
남원 지리산 자락에서 생활한 지 5일째인데, 그동안 평온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서 내심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패스파인더 김만희 대표가 '잘 다녀오라' 우리를 응원하며, 자동차를 타고 지나간다.
차 안에서 사진을 찍어, 이렇게 모두에게 보내주었다..
이번 여정은 글 대신 사진으로 남기기로 작정했다.
지나치는 지점마다 표지나 표석이 될만한 것들을 사진에 담아두었다.
나중에 다시 이 둘레길을 찾아 남편 '묵'과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쎄, 이뤄질지는 모르겠다.
'묵'은 걷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장거리 출장으로 운전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인지 가까운 곳엘 나서도 꼭 차를 출동시킨다.
나는 전보다 몸이 약해졌어도 가능한 가까운 거리는 자꾸 걷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다리에 쥐도 덜 나고, 밤에 잠도 푹 잔다.
수술 후, 전해질 균형이 깨져서인지 다리에 쥐가 자주 나서 힘들 때가 종종 있다.
둘레길에서 간간이 만나는 쉼터들은 하나같이 폐업 중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둘레길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그만큼 줄었다는 반증이기도 한가?
아무튼 아쉬운 상황이다.
'보복 여행자'들로 인천 공항은 성수기 때보다 더 붐빈다 하고, 항공사마다 운송 대란이라는 기사가 뜨는데, 이곳 지리산 둘레길은 너무 한가롭다.
사색하며 걷기는 딱 좋으나,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며 걷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지리산 둘레길 걷기 캠페인이라도 펼쳐야 할까 보다.
5월엔 지리산에도 하얀 찔레꽃이 절정을 이룬다.
소박하면서 은은한 향기가 우리네 정서와 잘 맞는 소박한 꽃이다.
옛날 보릿고개 시절엔 연한 찔레 순이 아이들의 요긴한 간식거리이기도 했다고 하니, 그 모습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산내면 지리산 중턱에 수토산방이 보인다.
자차로 여기서 등구재 황토방 민박 식당까지 5~10분 걸리는데, 같은 거리인 황토방 식당에서 수토산방까지 30분 넘게 걸어서 왔다.
나무늘보나 거북이처럼 기어 온 것도 아닌데,
자동차의 속도와 걸음걸이의 속도가 이렇게 생생하게 대비되긴 처음이다.
'느림의 미학'은 자연인에 가까울수록 그 낭만과 여유로움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오래 살지 않더라도 사는 동안 종종 이렇게 걸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즐기고 싶다.
우리는 등구재를 넘어온 상태로 출발한 터라 둘레길 중 특별히 힘든 코스는 없다.
굽어진 둘레길은 심한 언덕이나 비탈도 없이 온화한 시골길 그대로다.
잠시 지리산 자락과 마을 풍경에 한 눈 팔며 걸어도 특별히 위험하지 않아, 몸과 마음이 절로 힐링된다.
시간과 체력이 허락된다면 금계부터 출발 등구재를 직접 걸어서 넘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혼자였다면 우왕좌왕했을 초행길,
일행 중 지리선 둘레길을 여러 번 걸은 분이 있어, 이렇게 마음 편하게 따라가며 풍경까지 즐기고 있다.
'길섶' 강병규 주인장은 지난 4월 27일 '남원 지리산으로 경로 이탈' 웹엑스 강의를 담당했던 지리산 전문 사진작가다.
당시, 지리산 천왕봉을 뒤로하고 산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리에게 온라인 화상강의를 했던 분이니, 더 반가웠다.
더구나 내일(월) 마지막 묵고 갈 숙소가 바로 길섶 황토방이니, 더 관심이 갔다.
몸도 피곤하니, 이대로 방향을 바꿔 길섶으로 내려가 푹 쉬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이번 포스팅은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길 안내역을 자처한 사진 스케치다.
누군가 이 코스를 걷게 된다면, 동일한 쉼터와 펜션 그리고 똑같은 표지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시 걷게 될 때, 참고하고 싶어서 순서대로 찍은 사진 스케치다.
매동길 표지판이 보인다. 이제 중황마을 끝자락이다.
매동마을을 지나서 자동차가 다니는 대로로 나선다.
이 차선 도로를 너머 장항교를 건너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면 다시 지리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이번 둘레길 우리 도착지는 장항마을 노루목 당산 소나무다.
몸은 피곤했지만, 일행과 어울려 뒤처지지 않고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고운향 숙소로 돌아가 일찍 푹 쉬고 싶었지만, 수지면 양촌마을에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았으니 모두들 지친 몸을 이끌고 디시 이동한다.
차 안에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눈꺼풀이 자꾸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