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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도역서『혼불』과 <미스터 선샤인> 주인공들과 조우

지리산 둘레길로 떠난 여행이 산티아고 둘레길만 못하랴!

by Someday


서도역 입구 오른쪽, 소설 『혼불』의 한 장면이 보인다.

구 서도역은 최명희 소설 『혼불』의 배경이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입구에 '서도역 영상 촬영장'이라는 안내 표지가 있다.



서도역

2002년 10월, 전라선이 이설 되면서 역은 철거 위기에 처했으나, 남원시가 철도청으로부터 역사와 부지를 매입 구 서도역으로 남아있다. 이전된 역도 수요가 계속 줄면서 2004년 7월 여객탑승이 중단됐고, 2008년 7월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화됐다. 이도 농촌인구의 급속한 고령화와 과소화 때문이겠지! 소비하는 주체가 줄어드는 인구절벽 상황을 이 아름다운 서도역에서 실감하다는 사실이 슬며시 두렵다. 남원도 시내를 벗어나면, 젊은이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나이 든 분들만 남아있는 읍면군이 대부분이다. 60세는 청년이라니, 나 같은 쭈글이 사람도 청년이란 말인가! 기운도 달리고 힘도 없는데...


작년 12월 9일 자 연합뉴스를 보면 '한국 인구 올해 첫 감소… 인구절벽 시계 8년 빨라진다'란 기사가 농어촌의 현실을 대변해 준다. '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은 '데드 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의 국내 유입까지 급감한 여파다. 이에 따라 인구가 감소하는 이른바 '인구 절벽' 시계는 8년 더 빨리 돌게 됐다.'라는 기사 내용 일부가 생각난다.

이런 상황을 다시 걱정하게 된 것은 방금 다녀온 '혼불 문학관'에서도 우리 일행 외 아무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도심을 제외하면 이방인이 둘러보며 여행 다니기 적막할 정도로 주위가 한적하다.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지리산 자락 둘레길도 텅 비어있더라. 일요일(5월 22일 오후)에 둘레길 3코스를 걸었는데, 걸으면서 만난 사람은 오가는 방향 모두 합해 5명에 불과했다. 아직 오미크론 여파도 다 가시지 않았는데, 해외여행으로 몰리는 수요가 국내여행 즐기는 사람들로 팍팍 늘어났으면 좋겠다. 산티아고 둘레길을 찾아 멀리 나설 계획을 바꿔 지리산 둘레길로 오시라! 여유도 즐기고, 농어촌에 작은 힘이라도 실어주면 좋지 않겠나!


서도역

서도역은 강모의 색시인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기차에서 내리던 장소이며,

종손 강모가 전주로 학교 다니며 이용한 역이기도 하다. (혼불 1권 101쪽)


서도역 입구 오른쪽 느티나무와 서도역 오른쪽에서 바라본 풍경

서도역 입구 오른쪽으로 연륜이 배어 나오는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도역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듯 보인다.


서도역 안에서 바라본 풍경 속에는 '행희낭 프로젝트' 전시회 /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중요 장면들
역장실 / 숙직실 / 숙질실 안


서도역 안쪽 풍경과 녹슨 선로전환기

서도역 앞으로 선로를 연결시켜 주고 바꾸어주던 선로 전환기가 이젠 녹슨 기계로 방치되어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준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을 마음껏 즐기려고.

서도역 낡은 철로 위에 서니, 30년쯤은 젊어진 것만 같았던 날!




서도역 역사관


서도 역사관 안에서는 『혼불』과 <미스터 션사인>의 흔적도 만날수 있다.



행복, 희망, 낭만의 '행희낭 프로젝트' 전시회에서 『혼불』주인공들과 조우!


소설 『혼불』을 이렇게도 만날 수 있다?

구 서도역 입구에서 왼쪽으로 걸어가면 『혼불』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그대로 이곳 야외 전시장에서 다시 살아난다.

'행희낭 프로젝트'는 폐품을 이용한 조각품들로 소설『혼불』을 재탄생시킨 흥미로운 곳이다.

아무도 찾지 않던 이곳에서 잠시나마 여유로운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참 좋았다. 아, 혼자가 아니었지!『혼불』사람들과 만나 함께 한 특별한 여유로움이었다.


작품 '작가탑'

최명희 작가의 10권에 이르는 『혼불』원고 4만 6천 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원고지를 쌓은 상태를 표현한 작품이다. 뒤편으로는 타오르는 듯한 작가의 열정을 후광처럼 형상화했다.

작가의 열정이 함파우 소리체험관 불멍 시간 빠져들었던 참나무 장작 타오르던 형상과 닮아있다.

병풍처럼 두른 지리산 노적봉과 혼불 사람들, 거멍굴 사람들의 모습,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 올 때 당시 서도역 광경도 묘사했다.



강모는 이미 사촌동생 강실과 사랑하는 사이다. 효원과의 결혼생활이 걱정스럽다.


'꿈꾸는 강모'

강모는 벽에 걸린 기타를 내려 들고 두웅 튕겨져 나오는 음률이 창호지를 두드렸을 때 울리던 음향처럼 낮은 공명을 일으킨다. 그는 줄을 고르며 속으로 읊조린다. 글루미 선데이, 음울하고 적막한 곡조의 음률이었다. ( 혼불 1권 134~135쪽)


'혼례'

강모와 효원의 왁자지껄한 혼례식장 모습이 흥겹다.

그러나.....


모두 즐기는 잔칫날, 푸짐한 음식도 계속 만들어지고, 서로 덕담 주고받기도 바쁜 날!
'신랑 다루기'


흥이 넘치는 우리 민족, 잔칫날 흥겨운 가락의 농악이 빠질 순 없다.


나팔 불고, 장구 치고...


'농악'

오른쪽 '상모 돌리기'는 무거운 무쇠로 표현했지만, 흥겹고 가벼워 보인다.

소재보다 표현력과 상황 설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행희낭 프로젝트' 마지막 작품인 감나무, 나무 잎 속에 새집도 있다.



서도역에서 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돌아 나온다.

슬픈 이별은 아니고, 다시 기억해 내야 할 오래전 친구들이다.

『혼불』과 『토지』는 언젠가 다시 꺼내 들고 리마인드 해야 할 이야기들이니, 숙제로 챙겨 들고 나섰다.



운봉 흑돼지 전문점

저녁식사는 운봉읍으로 돌아와 토종 흑돼지 구이를 즐겼다.

이번 여행 중 두 번째 방문, 또 먹어도 여전히 맛있다.


남원시 운봉읍 운성로 13 (063-634-1588)

고기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나니, 한 잔의 커피가 그리워진다.

약속이나 한 듯 서어나무 숲 가까이 있는 카페 '늘파인'으로 달려간다.



카페 늘파인

저녁식사 후 들린 카페 늘파인에서 아름다운 소나무 정원 풍경에 푹 빠져든다.

노을이 물들기 직전부터 서서히 어둠이 스며드는 시간대별 풍경을 담아둔 사진이 있어, 이렇게 다시 펼쳐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행복하다.


카페 라운지 / 우리 소나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카페 앞 작은 공원




카페 늘파인 전경 (남원시 운봉읍 삼산길 8-17)

우리는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 모카와 바닐라라테 등을 마시며, 남원에서 살아보기 여행 4일 차에 처음 누려본 자유시간을 마음껏 즐겼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미음 씨 좋은 주인장이 구움 과자를 서비스로 날라다 준다. 자연스레 이야기꽃을 더 피우며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더라.


1층 라운지에서 바라보이는 풍경




사진출처 : 패스파인더 김만희 대표





우리는 어둠이 짙게 내린 카페를 뒤로하고 나와, 숙소인 '고운향'센터로 향한다.

고운향센터 숙소는 운봉읍 공안마을 복지센터 2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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