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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책읽기

『얼굴 빨개지는 아이』'장 자크 상페' 글과 그림

남과 같아야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by Someday



마르슬랭은 왜 아무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꼬마 마르슬랭을 만나면서 되묻게 되는 질문이다.

저 착한 아이 얼굴이 왜 빨개지는 건지, 마르슬랭처럼 그 원인을 알고 싶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빨개지고, 반대로 빨개져야 할 순간에 빨개지지 않는 얼굴을 가졌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암튼 남과 다르다는 것은 일반적으론 피곤하고 힘든 삶을 예측하게 한다.

이런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

혹 요정이라면 모를까!

현실적으로 환경문제(수질 및 대기오염), 유전, 햇빛 알레르기(오존) 등을 꼽아보지만,

의사도 요정도 아닌 나는 어느 것 하나 시원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책을 덮었다.


우리는 가슴속에 은근슬쩍 숨겨둔 비밀스러운 고민 한두 개쯤은 갖고 살지 않을까!


마르슬랭처럼 얼굴이 물드는 홍조는 감출 수 없는 고민거리일 수도 있다.


마르슬랭은 결국 계속 빨개지는 얼굴로 다녀야 했고,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다.

꼬마는 아이들이 자기 얼굴 색깔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것이 점점 견디기 힘들다.

오죽하면,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 바캉스 때를 항상 그리워했을까!

사람들도 모두 빨개지는 계절.

사람들은 피서지에서 빨개진 자기 얼굴에 만족하며 다녔으니까.

남과 같아야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 불행하지는 않았다.

단지 자신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를 궁금하게 여길 뿐이었다.' (P 26)


마르슬랭은 시도 때도 없이 '아~취' 재채기를 해대는 '르네 라토'를 만나, 우정을 나눈다.

르네 라토도 자기가 왜 재채기를 해대는지 모른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던 르네는 재채기 때문에 제대로 연주하기도 힘들다.

두 꼬마는 겉으로 드러나는 고민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하지만 르네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단지 코가 근질거렸을 뿐이고, 그것이 그를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들 뿐이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 마르슬랭의 얼굴이 빨개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P 42)


'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리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그리고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행복한 적이 있었다.

둘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P 62~63)


인생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란 걸, 아직 알 수 없던 어린 두 꼬마는 이별을 경험한다.

르네 라토가 이사를 가고, 주소를 받아 두었던 마르슬랭 부모는 바쁘다는 핑계(?)로 주소 쓰인 메모지를 끝내 찾지 못한다.

어른 들은 대부분 마르슬랭 부모처럼 살아갈까?


'그러나 여러분은 부모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항상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고, 항상 시간에 쫓긴다...." (P 74)


꼬마들이 서로 얼마나 의지하고 그리워하는지 부모는 다 살펴볼 여유가 없이 산다.


둘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얼마나 슬펐을까?


'장 자크 상페'가 그려낸 삽화들은 보면 볼수록 따스하고 잔잔하게 스며는 마력을 지녔다. 마치 자연의 힘을 의인화한 요정처럼.

상페 그림에는 어수선한 세상사, 고달픈 인생사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편안한 여백이 담겨있다.

얼굴 빨개지는 꼬마 마르슬랭 모습도 담담하고 의연해 보인다.

장 자크 상페 삽화 마력이 더 그렇게 보여준다.



'장 자크 상페' 글과 삽화에는 마르슬랭 일상도 여느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그려진다.


물론 삽화 속 마르슬랭 얼굴만 빨갛게 물들어 있어 눈에 확 뜨이긴 하지만.

꼬마는 '항상 빨간 자기 얼굴'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르네 라토를 향한 그리움'도 가슴에 담고 담담하게 살아간다.

어떤 상황을 이겨낸다기보다,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대견하다.

마르슬랭도 다른 아이들처럼 어른이 된다.


'마르슬랭은 르네 라토를 잊지 않았고, 자주 그를 생각했으며, 매번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지 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엔 하루하루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흘러가 버린다. 한 달 한 달도 마찬가지이고....

한 해 한 해도 마찬가지이다.

마르슬랭은 나이를 먹어갔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붉혔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조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다녔다.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변함이 없었다.' (P 85~86)


직장인이 된 마르슬랭은 대도시에서 빨간 얼굴을 한 채 열심히 살아간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바삐 뛰어다닌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마르슬랭은 계속 기침해대는 한 남자 소리를 듣는다.

그 멈추지 않는 기침소리에 모든 사람들(마르슬랭까지)이 웃음을 터뜨렸다.

버스 안에서까지 계속 재채기해대는 사람을 쳐다본 마르슬랭은 꿈에도 그리던 바로 그 친구 라토임을 알아챈다.

마르슬랭은 빨간 얼굴을 지닌 채, 계속 재채기를 해대는 르네 라토에게 다가간다.

르네는 계속 재채기를 계속하면서도 어엿한 바이올린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변하지 않았다.

둘은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른 어른들이었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하기 힘들었겠지만,


마르슬랭과 르네는 이날 이후로 계속 만나, 어린 시절 못다 나눈 우정을 꽃피운다.



'게다가 그들은 아주 자주 만났다.

마르슬랭은 어디든 도착하면, 곧바로 르네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마찬가지로, 르네 라토도 항상 마르슬랭 카이유를 찾았다. (P 111~113)

..... 여전히 짓궂은 장난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결코 지루해하지 않았으니까.' (P 116~121)


그런데, 마르슬랭과 르네가 마지막 함께 나눈 대화를 듣고 보니,

잠시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 큰 아들 로베르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그 애도 별 이유 없이, 그렇게 재채기를 하는 것 같아. 그것도 꽤 자주... 이상하지..."

"그러게. 이상하네. 그 애가 왜 그러는지 나도 궁금하군. 근데 미셸도 마찬가지야. 가끔 얼굴이 빨개지거든. 아주 빨개져. 참 신기하지..."

"잘 이겨 낼 거야."

"그럼, 잘 이겨 내겠지." (P 120~121)


DNA 유전자 생각에 움찔했다.

르네와 마르슬랭 자녀들이 재채기와 얼굴 빨개지는 부모를 그대로 닮았구나!

역시 장 자끄 상페다운 평범하고 담담한 대화로 나눈 이 글이 오랫동안 기억된다.

'그래, 로베르와 미셸도 잘 이겨 내겠지.'


살노라면, 바꿀 수 없는 상황도 많다.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탓하고 고민하면 뭐 하나!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일이다.

늘 얼굴 빨개지는 아이, 항상 재채기해대는 아이가 우리 곁에 있다면,

일반적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 자끄 상페는,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 불행하지는 않았다.'라고 전한다.

그 말이 세상 숱한 고민거리를 조금은 가볍게 내려놓으라고 권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남과 다르다.

별생각 없이 같다고, 또 그래야 편하다고 습관적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지금 안고 있는 건강문제도 '마르슬랭'이나 '르네'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야겠다.

바꿀 수 없는 상황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그 상황을 좀 더 여유롭고 편한 마음으로 품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의 성장기를 내 마음속에 꾸욱 담는다.


장 자끄 상페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편하게 읽고, 담담하게 들여다보면 살아가는 지혜를 저절로 터득하게 된다.

짧지만 굵은, 아플 수도 있는 상황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메시지로 울린다.

마음이 편해지는 글과 삽화 속 여백에 우리를 그대로 담글 수 있다.

보는 이를 마냥 너그럽게 대하는 글과 그림이다.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다 귀하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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