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지성과 이성에 앞선 것이 무력이고, 살생이란 말인가!
남원 자연휴양림에서 돌아 나오는 길, 멀지 않은 곳에 단군성전 푯말이 보인다.
자연스레 자동차를 오른쪽 좁은 샛길로 돌려 들어간다.
우리 모두가 단군의 자손이니, 단군성전은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져 있다.
단군왕검을 모시는 사당인 단군성전은 서울 종로구 사직동 단군성전을 비롯, 남해, 남원, 고창, 정읍, 영월, 대구, 청주 등 많은 곳에 있다.
특히, 종로구 사직단에 모셔진 단군성전은 우리나라 최초로 단군성전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곳이다.
건국신화에 따르면, 단군은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세운 국조이자 신인(神人)이다. 내용은 『삼국유사』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실제로는 고대부터 한민족의 정신생활 속에서 민족 신앙의 핵심이 되어 천손(天孫)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였고, 민족 주체의식의 원천이 되어 왔다. 이렇게 형성된 민족 주체의식은 역사상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에 항거하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단군 사묘 [檀君祠廟]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단군 민족주의적 인식이 표명된 가장 오래된 문헌은 13세기에 쓰인 <삼국유사>나 <제왕운기>이다. 이들 사서는 [위서]와 [고기]·[본기] 같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자료를 인용하여 단군의 건국 과정을 동국 역사의 첫머리에 수록하고 있는데, 특히 <제왕운기>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부여·예맥 등 고대국가들 모두를 단군의 후계로 서술하고 있다.
고려 말·조선 초에는 단군 민족주의 의식이 상당히 고조된다. 조선 초부터 논의되던 단군에 대한 국가적 제사 문제는 세종 때(1492) 와서 독립된 단군 사당을 세움으로써 진전을 이루었으며, 동국 역사의 시조 또는 국조로의 단군의 위상이 더욱 선명해지게 된다.
조선조를 통하여 단군은 ‘東方始受命之主’·‘東方始祖’·‘朝鮮始祖’·‘東方生民之鼻祖’ 등으로 지칭되었으며, 점차 국조를 넘어 민족적 시조라는 차원으로까지 인식이 심화되어 갔다.
물론 사대 모화사상이 강하던 중세기를 통해서는 기자에 대한 숭배가 강화되면서 단군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 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유교와 왕조 권력이 약화되면서 단군이 다시 떠오름을 본다.
특히 안팎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공동체와 집단 정체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단군 민족주의가 대중화하게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단군 민족주의 [檀君民族主義]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사당의 문이 굳게 잠겨져 있다.
찾는 이도 없으니, 현지 관리인도 상주하며 관리하긴 힘들 듯하다.
홍익문 안쪽은 깔끔하고 청결했다.
그러나,
홍익문 바로 앞이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다.
낡은 건물들이 너무 가까이 있어, 주의 경관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주의를 자세히 둘러보니, 홍익문 오른쪽으로는 남원시에서 정비 사업 중인 듯 보여 다행이다 싶었지만,
왼쪽 건물들이 마을 사람들 사유재산이라면, 쉽게 정비 작업을 진행하기 힘들 수도 있으려나!?
단군 신전에서 다시 남원 시내 쪽으로 나선다.
지금은 폐역이 된 구 남원역으로 가는 길이다.
열어둔 차장 문으로 따뜻한 5월 햇볕과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거리며 들고 난다.
달리다 보니 남원 시내로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무너진 산성이 보인다.
산성 곁, 우리가 지나치는 넉넉한 큰길로는 자동차들이 바람보다 빠르게 지나친다.
"음~ 그냥 지나칠 수 없지!" - 생각지도 못한 고성을 만나니 기뻤다.
우리는 아침에 숙소에서 출발 전, 방문할 곳들을 점찍고 나온다.
주로 내가 며칠 전 '남원에서 살아보기' 단체 방문 한 곳을 제외하고, 빠진 곳을 찾아 둘러보고 있다.
'묵'이 기꺼이 그렇게 하라며, 전용 기사로 풀 서비스하겠다니 편안하고 즐겁다.
대부분 계획했던 순서대로 돌아보는데, 이곳 산성은 미리 인지하지 못한 장소였다.
바로 남원 읍성이다.
현재, 발굴 작업과 주위 환경 조성이 진행 중이 것으로 보이지만, 이날은 작업 중지였고,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우리 부부가 체계적인 자료와 거리를 중심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모두 남원시에 속한 곳이니 드라이브 삼아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다.
남원은 어딜 가나 대부분 지리산 자락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도시다.
남원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길목쯤에 있다고 할까!
삼국시대 말에는 남원 운봉고원에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공방을 펼쳤던 역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곳 남원 읍성도 지난번 다녀온 교룡산성과 함께 오랜 전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남원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호남 방어를 위한 요충지이기도 했다.
정유재란 때는 진주와 하동을 함락시킨 왜군이 남원으로 밀려왔다.
백성들은 조명연합군과 함께 왜군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전라도로 진격하려는 왜군을 교룡산성에서 맞아 싸웠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을 되풀이하며 이어져 왔다.
지금도 지구상에서는 국지적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인간의 지성과 이성에 앞선 것이 무력이고, 살생이란 말인가!
옛 산성에서 벗어나, 지금은 폐역이 된 구남원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