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 성당, 지하 동굴(Grotto), 성 빠트리지요 우물
오늘(3월 5일)은 피렌체로 향한다. 로마 숙소에서 피렌체까지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우리를 태운 전세버스는 이탈리아 A1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했다. 고대 로마인은 세계를 정복하면서 도로부터 건설했다는데, 이탈리아는 세계 최초 고속도로 A1 도로를 건설한 나라다.
무솔리니 집권 2년 뒤인 1924년, 밀라노와 북부 호수 지방 코모 주변을 잇는 80㎞ 고속도로를 개통했고, 1935년까지 500㎞를 개통시켜, 나폴리에서 밀라노까지 남북을 잇도록 했다. 이 A1 고속도로는 나폴리-> 로마->(오르비에토)-> 피렌체-> 밀라노로 이어진다.
1시간 정도 달려, 중간에 도착한 곳은 절벽 위에 세워진 중세도시 오르비에토다. 오르비에토는 세계 최초 슬로시티로 유명한 16세기 중세 도시라는데, 잠시 들려간다니 내심 기대된다.
오르비에토는 움브리아주 테르니 현에 위치한 '코무네'다. 로마와 피렌체 중간, 로마 북쪽 약 120㎞에 위치한 농업 및 관광도시다. 응회암으로 된 넓은 뷰트의 평평한 산꼭대기에 있는 오르비에토는 세로로 솟은 절벽 위에 있어, 유럽에서도 가장 극적인 곳 중 한 곳으로 꼽힌다.
900여 년 전 투사(Tufa)라고 불리는 같은 재질의 석제로 성벽을 만들었다. 오르비에토는 두오모(Duomo) 대성당, 두오모 거리( Via Duomo), 성 파트리치오 우물, 지하 동굴(Grotto) 도시 등 중세 유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며, 현대 슬로시티 발상지이기도 하다.
*코무네: 12세기부터 13세기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에 있던 주민 자치 공동체. 영주권을 배제하고 주변 농촌 지역까지 지배하는 도시 공화국 성격을 지님
*뷰트: 경암층 대지 일부가 침식되다가 남은 것, 주위 사면이 가파른 벼랑으로 되어 있음
https://www.orvietoviva.com/en/
절벽 위 중세마을로 가기 위해 궤도 차량 푸니콜라레(Funicolare)를 탄다. 궤도 차량은 10분마다 운행되고, 꼭대기 도착 정류장이 있는 카헨 광장(Fiazza Cahen)까지 2분 여만에 닿는다. 케이블카 요금은 1.30유로.
표를 구입하고, Funicolare라고 쓰인 파란 표지판을 따라 이동한다. 케이블카 정류장 Funicolare는 영어 Funicular로 케이블카라는 뜻이다. 레일 따라 움직이는 케이블 카라니, 푸니쿨라를 타는 재미도 쏠쏠하다.
케이블카는 자체 지붕 위에 케이블을 매달아 움직이지만, 이곳 케이블카는 특이하게 레일을 따라 움직인다. 이런 케이블카는 처음 봤지만, 산비탈을 꽤나 빨리 내달린다.
이런 경사면 철도 푸니쿨라도 레일 따라 설치된 케이블 선으로 전차를 움직이는 원리라니, 케이블카가 맞긴 맞는가 보다.
창밖으로 이탈리아 중부지방 포도농장과 와인 리조트 모습이 잠시 스쳐가나 했는데, 곧 도착이다.
도착해서 승차장 밖으로 나오면 바로 카헨 광장이다. 카헨 광장 버스 정류장에서 파란 지붕 버스를 타면 5분 이내 오르비에토 구도시에 도착한다. 걸어도 10분 정도면 닿는 거리다.
일행은 푸니쿨라를 2~3회씩 나눠 타고 현지인들과 함께 올라온다. 먼저 타고 올라온 우리는 다른 이들을 기다리느라 여유시간이 생겼다. 이 짧은 자유시간, 주주와 레드루는 카헨 광장을 둘러봤다.
사진 속, 뒤에 보이는 문으로 내려가 중세 성벽을 따라 걸으면서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오르비에토 주요 명소 중 하나인 성 패트릭 우물로 걸어가는 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미리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다. 물론 알았다 해도 잠깐 내려갔다 곧 돌아와야 했겠지만, 직접 걸어 내려가 보지도 못한 것이 종내 아쉽다. 고풍스러운 오르비에토는 피렌체 가는 중, 잠시 들려가는 줄도 미리 알질 못해 사전 지식이 너무 부족했다.
성 패트릭의 우물로 내려가는 길 가운데로 우물 상판이 보인다. 성 파트리치오 우물은 중세 포위 공격에 대비해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진 혁신적인 절벽 위 구조물이다.
이 우물은 6세기 클레멘스 7세 교황이 지시해서 팠다. 5세기 아일랜드 가톨릭 성인 성 패트릭이 기도하자, 땅속 깊은 곳 연옥을 보았다고 한다. 오르비에토 우물은 마치 연옥처럼 깊다고 하여 '성 패트릭 우물'이 됐다.
오르비에토는 외국 관광객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 관광과 견학도 많은 곳이다. 오르비에토 거대한 지하도시는 현재 지상에 드러난 중세 도시보다 그 규모가 더 방대하다.
지하도시는 하루에 단 두 번, 일부분만 개방하고 있다. 가이드 투어에 참가해야만 관람할 수 있고, 가이드 투어는 두오모 광장에 있는 관광 안내센터에서 신청한다. 비용은 1인 6유로다. 그러나 투어 하고 싶다고 돈만 낸다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정 인원이 모여야 투어를 시작한다. 그래서 투어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매번 다르다.
적어도 하루 이상 여유를 갖고 방문해야 투어에 참석할 수 있다. Someday, 주주와 레드루는 여유롭게 이곳을 다시 찾아 가이드 투어에 꼭 참석해 보고 싶다.
포르테자 알모르노즈(Fortezza Albornoz)는 카헨 광장에서 바로 갈 수 있는 성이자 요새다.
포르테자 알모르노즈 요새 안쪽으로 가서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오르비에토 스칼로(Orvieto Scalo)이다. 원래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판 못)와 도개교(위로 열리는 다리)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요새 일부분이 원형 그대로 남아, 멋진 탑으로 우뚝 서있다.
오르비에토 지하 동굴(Grotto) 도시는 고대 로마 토착세력인 에트루리아 인들이 만들었으며 1,200여 개 인공 동굴들이 미로처럼 뻗어 있다. 3천 년 전 형성된 이 도시가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는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
지하 도시에는 구덩이에 홈을 파서 계단으로 이용한 흔적, 비둘기를 식용으로 기른 장소, 우물, 지하 무덤 등이 남아있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주민들 피신처가 되기도 했다.
화산암으로 이뤄진 땅속에 터널과 동굴로 이어진 미로를 갖고 있는 오르비에토 마을은 에트루리아 시대로부터 지하 동굴에 식품을 보관했다. 현재, 일부가 와인 저장고로 사용된다.
우리는 지하 도시와 우물 존재에 관한 설명과 관련 사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오르비에토 두오모(성당)로 향한다.
푸니쿨라가 도착한 카헨 광장에서 오르비에토 대성당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5분여 달리면, 중세 오르비에토 마을 입구에 내린다.
두오모로 향하기 위해 묵직한 세월이 느껴지는 중세 문으로 들어서는 기분은 좀 특별했다. 절벽 위 척박한 환경을 이렇듯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곳으로 가꾸고 지켜온 이곳 사람들의 삶이 참으로 독특해 보인다.
절벽 위 작은 중세도시에 이렇듯 거대한 규모의 두오모가 있다니, 광장에 들어선 순간 모두 놀라게 된다. 오르비에토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룬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한동안 성당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1263년 오르비에토에 거주했던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볼세나의 기적'을 보고받고, 대성당 건축을 명령한다.
두오모 정면 파사드는 오르카냐와 파사노의 작품이고, 성 브리지오 예배당 프레스코화는 안젤리코로부터 시뇨렐리가 마무리했다. 성당 안에 있는 성 브리지오 예배당 프레스코화도 유명하다. 성당 내부에는 모자이크와 조각 및 부조로 신구약 주요 인물과 장면들이 소상하게 재현되어 있다.
오르비에토 대성당은 1290년 착공, 300년 동안 공사를 진행 1600년 경 완공했다. 성당 전면을 장식한 모자이크가 화려하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문이 아름답다.
크고 넓은 기둥의 섬세한 부조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4개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성경의 내용을 형상화한 부조는 저절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하늘로 뻗어 오른 고딕 양식 첨탑과 박공을 장식하고 있는 황금빛 모자이크는 화려함과 신비로움을 드러내고, 건축물 외관은 석회암과 현무암이 줄무늬 형태로 보이도록 디자인되었다.
우리는 오르비에토 두오모의 감동을 간직한 채, 광장에서 이어지는 마을 골목 투어에 나선다.
골목길 투어 중, 갑자기 울려 퍼지는 종소리로 중세 오르비에토 마을 분위기는 더 아늑하고 평온하다. 모로 탑(Torre del Moro)은 오르비에토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다. 전망을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탑이다. 물론 전망대로 오르려면 종탑 안 수많은 층계를 딛고 올라가야 한다.
주주와 레드루는 오전 중, 이곳 중세마을을 돌아보고 있다. 마을 전체가 무척 조용하고 아늑하다. 이곳도 한낮 이후엔 로마에서 당일치기로 찾는 많은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오르비에토에서는 골목마다 중세도시 정취가 가득 묻어난다.
승용차도 경적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엄격한 간판 규제(병원, 약국 등 필수시설 간판을 제외하고는 네온사인 금지)로 좁은 골목도 깔끔하고 정겹다.
전기버스와 궤도 열차로 친환경 교통 시스템이 구축된 도시다.
오르비에토 시민들은 느리게 사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중세도시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현재를 넘어, 인간적인 삶을 누리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유유자적한 삶이 슬며시 부러워진다.
오르비에토 시는 '슬로시티 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곳 사람들은 인스턴트식품과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천연 올리브유와 와인으로 음식 맛을 낸다.
인스턴트 햄버거는 물론 미국식 커피 아메리카노조차 마실 수 없는 곳이다. 골목마다 자리 잡은 젤라토(아이스크림) 가게도 천연재료만 사용하는 홈메이드를 내세우고 있다.
오르비에토에서는 태양과 달, 별까지 더 맑게 행복하게 뜨고 지지 않을까! 이 세상 온갖 사물과 현상조차 이곳에서는 느리게 살아가는 참살이를 닮아간다.
상점 입구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기념품들까지 마냥 사랑스러운 골목길이다. 주주와 레드루는 중세도시에서 슬로시티로 거듭난 오르비에토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 채 골목길을 나선다.
고풍스러운 골목길 풍경이 아기자기 예쁘기까지 하니,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궤도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오르비에토 농가와 포도 과수원들이 계속 스쳐 간다.
궤도 차량 푸니콜라레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주차장에서 한 포기 흰 들꽃들이 'Ciao, ciao!' 하며 인사를 건넨다. 우리도 만나자마자 이별이구나!
여행 전엔 생소하기만 했던 중세도시 오르비에토 방문은 색다른 감동을 주었다.
절벽 위에 도시를 세워야 했던 당시 조상들의 절박함, 특별하고 아름다운 유구한 문화유산뿐 아니라, 긴 세월 가꾸어 온 삶을 스스로 지키고 있는 시민들의 용기가 이곳을 21세기 슬로시티로 거듭나게 했다. 조용하지만 당당한 현지인들 모습과 고풍스러운 골목길 풍경을 하나 둘, 차곡차곡 기억 속에 담는다.
오르비에토는 낯설기도 했지만, 이런 독특하고 멋진 곳의 방문을 미리 알지 못한 것이 종내 아쉽다. 피렌체 가는 도중 그냥 스쳐가듯 지나치기엔 너무 훌륭한 곳이다. 미리 공부 좀 하고 방문했더라면, 적극적으로 자유시간을 맘껏 활용했을 텐데. 성 파트리치오 우물 내려가는 길도 바라만 보았으니! 내려갔다라도 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곳이다. 작은 곳이 더 아름답고, 느린 곳이 더 소중하구나.
오르비에토에서는 친절한 우리 가이드도 우리끼리만 남겨둔 채, 푸니콜라레 차표 끊고, 순차적으로 도착하는 인원 점검하느라 꽤 바빴던 것 같다.
이제 전세버스에 몸을 싣고 피렌체로 간다. 피렌체에서는 미켈란젤로 언덕부터 돌아보고, 푸짐한 점심 식사를 하게 된다.
오늘 맛보게 될 피렌체 스테이크는 어떤 맛일까, 궁금해진다.
방금, 슬로시티 오르비에토에서 건강한 참살이 삶에 감동하며 출발했는데, 벌써 마음은 급하고, 시간은 바삐 흐르고, 소고기를 먹겠다는 의욕만 불타오른다.
오, 이를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