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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Oct 02. 2022

4대가 모여 기뻤지만 가슴 한편 진한 허전함은 뭐람!

95세 화가 할머니, 94세 어머니, 늙은이가 되어가는 또래들의 현실은?


벌써 3일째 뿌연 날씨가 이어진다. 

그래도 아침에 살짝 내린 비 탓인지, 오늘은 미세먼지가 보통이다. 

어제와 그제는 온종일 공기가 탁했나, 오늘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공기는 맑다. 


연휴가 이어진 어제(10월 1일), 우리 가족은 모두 11시경에 안성 어머님 댁으로 모였다. 

미세먼지 가득 내린 도로 위로 생각보다 차량이 많이 밀렸다. 

나는 비스듬히 눕듯이 앉아 『그림 그리는 할머니, 김두엽입니다』  책을 3번씩이나 읽고 보고 펼쳤다 덮었다 하며 갔다. 

할머니의 그림에는 집, 꽃, 가족, 개와 냥이, 닭 가족 등이 등장하고, 아련한 추억이 현실처럼 담겨있다. 

이 분의 그림은 천진난만해 보이고 밝고 예쁘다. 



평생 고생 같은 건 안 해본 화가로 느껴지지만, 이분의 삶 자체가 '고난의 행군'이셨던 것 같다. 

김두엽 할머니는 올해 95세로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 위시다. 

1928년 일본에서 태어나, 1946년 한국으로 오셨다. 우리말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던 상태에서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시작, 평생 혹독한 가난을 짊어지고 살면서도 8남매를 낳아, 모두 잘 키워내셨다. 

70세가 돼서야 제대로 한글을 배우신, 12년 차 화가시다. 

이 분을 닮은 막내아들은 2015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 부문에 입선한 이현영 화가이다. 


한 대단지 아파트 1층에서 혼자 살고 계신 시어머님은 70대까지도 강건하고 세련된 멋쟁이셨는데, 지금은 굽은 허리, 가녀린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서야 이동이 가능하시다

김두엽 할머니보다 평안한 삶을 살아오셨지만, 노화는 피해 가지 못하시는 긴 세월을 지나오셨다.

현재, 요양보호사분이 자식들을 대신해서 돌봐드리고 있는 형편이니, 아들만 다섯을 낳아 키우신 부모로서 회한이 드실 법도 하다. 매달 통장에 몇 푼 입금하고, 입원하시면 병원비 나누어내는 것이 드러나는 실체의 거의 전부 아닌가! 나 역시 이런저런 긴 말을 할 변변한 자식 꼴이 못된다. 더욱이나 나는 사랑받는 며느리가 아니었다는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감 없는 셋째였던 탓에 마음속으로 늘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아직까지 일을 하는 남편 '묵'이 출장을 오가며 어머니를 가끔이나마 찾아뵙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셋째 아들 '묵'이 따로 조금씩 모아둔 용돈을 넌지시 전해드린다는 사실조차 내 마음 한편으로 크게 위안이 된다. 내가 못하더라도 당신이 잘해드리니, 나는 진심 "땡큐"다.


우리는 11시 15분경에, 꾸미네 가족은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증조할머니는 온 힘을 모아 반가워하시는데, 꾸미는 내내 새초롬한 표정이다. 

세젤예 꾸미는 증조할머니가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90도 폴더인사도 드리고, 아주 가끔 인색한 미소를 날리기도 한다. 

새초롬한 표정으로 조신하게 앉아 있는 꼬마 숙녀 꾸미의 모습이 눈에도 조금 낯설다. 

오늘은 숱 적은 머리카락을 모아 모아 겨우 묶은 머리 아래로 튀어나온 꾸미 이마가 더 반짝거린다. 

내 눈엔 늘 세상 제일 예쁜 아기지. 



점심식사는 배달식을 선택했다. 

어머니는 아직 소화는 잘 된다며, 자장면을 드시겠다고 하신다. 

주문하고 30분을 기다려도 음식이 도착하지 않는다. 

전화로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 지금 막 만들기 시작했단다. ㅋ

지각 배달을 당연 하는 주인장의 당당한 전화 목소리에 어이가 없었지만, 기다릴 수밖에.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도착한 자장면 4그릇, 짬뽕, 볶음밥, 팔보채, 탕수육이니, 모두 그냥 맛있게 먹기로.

아파트 단지 가까이 중식집은 2곳뿐이라는데, 어머니가 알려준 이곳은 주말엔 이렇게 늘 바쁜가 보다. 

맛도 괜찮고, 양도 푸짐한 데, 가격은 7만 9천 원이니 도시보단 많이 저렴하다.  

어머니는 버무려 드린 자장면일랑 밀어놓고, 아들이 뒤늦게 상에 올려놓고 먹는 매운 짬뽕을 먹겠다고 하신다. 셋째 아들과 사이좋게 나누어 드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 세젤예 꾸미는 자장밥을 깔끔하게 먹는다.

모두 출출하다고들 하더니, 음식 양이 많아서인지 다들 남긴다. 

남겨진 음식물을 내려다보며, 어머니와 나만 그대로 버리기 아까워한다. 



손녀딸이 사 온 애플 망고는 살짝 숙성이 덜 된 탓인지, 어머니는 시다고 인상을 쓰신다. 

새콤한 맛을 좋아하는 꾸미와 딸과 나는 맛있게 먹었지만, 나도 더 나이가 들면 새콤한 맛보단 단맛을 즐길지도 모르겠다. 신맛이 덜한 머루 포도도 좋아하진 않으셨다. 

내 기억으론 포도는 즐겨 드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모든 과일을 썩 즐기진 않으신다. 

30년 후, 만약 내가 살아있다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테지. 입맛도 함께 늙어간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어머니는 지금 내 나이 때에도 무척 건강하셨다. 

외출할 때마다 머리에 롤을 감아 풍성하게 힘을 주셨고, 항상 마사지와 팩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옷도 유명 브랜드만 선호하셨고, 반듯하게 다림질해서 폼나게 입고 다니시곤 했다. 내게는 당시에도 무겁게 느껴지던 명품 가죽 가방을 꼭 들으셨다. 중간 높이의 클래식한 구두까지 신고 패션을 완성하고 다니시던 멋쟁이셨다. 자기 관리에 철저했던 옛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벌써 오래전부터 머리를 질끈 묶고 다닌다. 마사지와 팩도 귀찮아하고, 허리 통증이 들고날 때는 세수조차 하지 않고 산책길에 나선다. 나름대로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 관리 잘하며 살아왔다고 자신했지만, 솔직히 어머니에게는 못 미친다. 특히, 외모관리에서는 견줄 수가 없다. 

이번엔 내가 입고 간 옷을 살펴보시더니 디자인이 특이하다며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시더라!

비싼 옷도 아니고, 산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외국산이다 보니 디자인이 좀 특이하긴 했다. 

94세의 나이에도 디자인을 꼼꼼하게 살펴보시다니, 놀라울 다름이다. 

눈도 침침해져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하시면서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부스스하냐?"라고 물으신다. 난 할 말이 없어서 그냥 비시시 웃었다. 


나는 어머니 베개 밑에 준비해 간 흰 봉투를 디밀어 넣고 일어선다. 어머니는 다시 가져가라고 밀쳐내시지만, 지금은 내가 더 힘이 세다. 우리는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집을 나선다. 

모든 이별이 애닮지만, 혼자 살아가시는 94세 어르신과의 이별은 더욱 애달프다. 

지팡이를 짚고 배웅하시는 모습을 뵈니 발걸음이 딱 멈춰버린다. 

'묵'이 먼저 인사를 드리고 성큼성큼 나선다. 

한 사람씩 손을 잡고, "잘 살아라"라는 말씀을 전하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신다.


아들은 집으로 딸과 사위는 꾸미를 데리고 '안성 팜랜드'로 출발하고, 우리 부부는 공주 마곡사로 향했다. 

다음 주 수요일이 내 생일이다. 평일이니, 모두 함께 하긴 힘들 테고, 묵은 화요일 전북 쪽으로 출장길에 오를 예정이어서 안성까지 내려온 김에 마곡사를 찾는다. 마곡사 여행기는 다음에 이어가기로 하고, 이번 글은 4대가 함께 했던 이야기로 멈춘다.


마곡사 가는 길 풍경


오늘(2일) 아침엔 상쾌한 공기가 반갑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세상을 적시는 가을비가 계속 내린다. 

벌써 가을 느낌이 가득 차 오른 촉촉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오늘이 '노인의 날'이라는 소식을 다시 상기한다.

1997년 제정한 노인의 날은 노인 관련 단체의 자율 행사로 진행되는 법정기념일이다.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기념일'이라는 데, 행사에 그치지 말고 과연 우리나라 어르신들이 현재 얼마나 안락한 삶을 누리고 계신지나 진지하게 되묻고 갔으면 좋겠다. 우리는 결국 누구나 다 늙어가고 모두 노인이 된다.

95세 화가 할머니, 94세 우리 어머님, 그리고 점점 늙은이가 되어가는 또래들의 현실이 뿌연 대기 공간처럼 암울하고, 서늘한 가을비처럼 차갑게 느껴지는 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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