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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Dec 31. 2022

주저앉은 곳도, 날아오른 공간도 모두 나의 세상이었다

황지우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를 읊조리는 12번째 마지막 날

하루씩 나누어진 시간을 쳇바퀴 돌리듯 살다 보니 그 하루가 저절로 오는가 싶었다.

똑같은 속도로 흐른 시간이었지만, 가끔 세상으로부터 덩그러니 떨어져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수십 번의 새해를 맞는다.

젊은 날엔 숱한 날들이 모여 계속 차곡차곡 쌓이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가끔 오만하기도 했고, 종종 나태해지기도 했다.

매일 '국기에 대한 맹세'까지 하며 살았던 세대다.

영화관에서는 본 영화 상영 전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곧바로 차렷 자세로 일어서서, 동해의 떠오르던 붉은 해를 바라보던 70~80년대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나는 그 장엄한 조국 산하의 영상을 바라보며,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를 읊조리곤 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룩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꺌꺌 대면서

일렬 이렬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 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날아가지 않고 내 곁에 주저앉은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새 두 마리

다시 주저앉아서도 새들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생각을 접지 않고 살았다.

빛나던 시절이 가고 나서야, 세월은 쌓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잃어버린 시간들이 하늘로 날아갔다.

잊히는 세월의 조각들은 순서를 잊은 채 어수선하다. 쌓이는 것은 나이(age)뿐, 비어 가는 노년이 저만치 서있다.

진보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도 쇠퇴하는 몸뚱이는 보전되지 못한다.

날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은 몸뚱이다.

지금도 생각은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간다.

주저앉은 곳도, 날아오른 공간도 다 나의 세상이었다.


2022년, 지금은 100세 시대란다.

100세까지 살아 골골대는 모습을 그려보는 건 싫다.

어느 날 갑자기일 수도 있고, 백 살 넘어서일 수도 있는 '인생의 길이'를 알 순 없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삶은 원치 않는다.

순서대로 와서 평생 차례를 잘 지키며 살았지만 순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올 때처럼 돌아갈 때도 마음 대론할 수 없다.

지워지지 않는 안타까움일랑 한편으로 쓱 밀어낸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라는 '송구영신'의 뜻을 되새긴다.

'한 해를 잘 살았다'라고 스스로에게 전하며 '검은 토끼'해를 맞는다.


오랫동안 내 책장 한구석을 지켜온 황지우 시인의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9616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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