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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Jan 09. 2023

미석 박수근은 전무후무한 화풍을 만들어낸 토종 거목

美石은 신라시대 석물에서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 도입시켰다. 

박수근(美石)은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 서양화의 양대 거목이다. 

두 사람은 일제 탄압 기와 6.25 전쟁으로 얼룩진 시대의 아픔과 굴곡을 자신만의 화풍으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조국 광복을 맞았지만, 한국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1940~50년대 '새로운 표현 모색'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남긴 인물들이다. 

박수근(1914~1965)은 단순한 선과 구도로 드로잉을 하고, 화강암이 주는 회백색 질감으로 우리의 토속적인 미감과 정서를 담아냈다. 


사진출처 : KBS 예썰의 전당 사진 캡처

박수근은 너무 흔해서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아냈다. 

그의 그림 속에서 만나는 70년 전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역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상을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는 작고 평범한 일상을 소박한 화풍으로 담아낸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다. 


빨래터, 1954~1956

<빨래터>는 평면 구도이지만 오돌토돌한 표면 위에서 따뜻한 색감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에서도 역동성이 느껴진다. 소소한 일상을 단순화시킨 아낙네들의 고된 일상이 오히려 즐거워 보인다.


박수근은 빨래터에서 운명의 여인 '김복순'을 만나 결혼에 이르기도 한다. 


공기놀이하는 소녀들, 1965 / 맷돌질하는 여인, 1950


박수근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사람들의 평범한 순간들을 간략한 선으로 그려, 인물 각각의 개성을 담아냈다. 그는 드로잉에 많은 공을 들였다.

드로잉을 통해 평범한 풍경에 살아있는 이야기를 불어넣었고, 삶의 작은 이야기를 간결하게 풀어내 화폭에 담았다.   

미술평론가 김영주는 "박수근의 그림이 뛰어난 이유는 치밀하게 계산되었으나 꾸민 데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박수근이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술계는 일본 유학이 필수 코스였다. 

그는 국민학교만 나왔지만, 혼자 거장들의 작품을 스크랩하며 이론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제도권 교육을 받았다면 스승의 화풍을 이어받기 마련이지만, 박수근에겐 따로 스승이 없었다. 국내파 화가들의 모임인 '주호회' 회원이기도 했던 그는 '모든 것이 스승이다'라고 믿었다. 

박수근은 경주 문화재 답사 기행을 가서, 화강암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신라인들이 화강암에 새겨놓은 석물들이야말로 박수근에게는 큰 스승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옛 석물에서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끼며 조형화에 도입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 만날 수 있는 오돌토돌한 느낌이야말로 화강암 재질에서 느껴지는 바로 그것이다. 

화강암은 우리나라 국토 70%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돌이지만 단단하고 강하다. 갈수록 빛이 나는 돌이다. 

박수근은 화강암이 우리 민족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박수근은 *마티에르 기법으로 표현한 이 질감을 오직 유화 물감만으로 만들어냈다.  

물감 층의 두께와 캔버스의 재질에 따라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한 독특한 색감이다. 

1) 물감을 시간 차를 두어 여러 겹의 층으로 쌓아 올린다. 

2) 양각과 음각의 거친 물감 층 위에 드로잉을 한다. 

3) 그 위에 다시 물감 층을 쌓고, 지워진 드로잉을 채우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의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여러 층의 물감이 요철을 만들어내듯 돌과 유사한 오돌토돌한 질감을 구현했다. 

박수근은 전무후무한 화풍을 만들어낸 토종 화가다. 

"박수근은 질감에 있어서 새로운 양식의 창안자다" - 반도화랑 설립자, 실리아 짐머맨 -


* 마티에르 기법 :  다양한 재료와 기법으로 만들어내는 화면의 시각적인 효과


나무와 두 여인, 1956 / 1962


박수근은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1953년부터 주한 미 8군 PX(현 신세계백화점)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팔기도 했다.  

당시 PX에서 경리를 보던 박완서가 박수근을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후일 그와 그의 작품을 소재로 한 소설 『나목(裸木)』(1970)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수근 그림 속 나목은 한국 전후시대 자화상이면서 고통을 극복해 가는 인내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1960년대 「나무」, 「고목과 어린 나무」 등 나무가 등장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나무와 두 여인」을 반복적으로 변형하여 큰 사이즈의 작품들도 제작한다. 


박수근은 어릴 때부터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다고 전해진다.  

박수근과 밀레는 다른 시공간을 살았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 소박한 모습들을 화폭에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프랑스 바르비종파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로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농부들 삶을 관찰하며 자랐다. 농부였던 자신 경험을 토대로 농촌의 고단하고 열악한 일상 삶을 관찰자 입장에서 그렸다. 

밀레는 빈센트 반 고흐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노르망디>를 그린 클로드 모네 작품들도 밀레 풍경화에서 영향받았고, 밀레 작품 구도나 상징적인 요소 등은 <쇠라>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박수근도 초기엔 밀레 화풍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http://www.parksookeu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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