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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온책읽기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삶의 철학이 담긴 작은 고전

인디언들 삶의 지혜가 담긴 '포리스터 카터'의 자전적 소설

by Someday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포리스터 카터'의 자전적 소설이다.

주인공 '작은 싹'이 '작은 나무'로 성장하던 5살부터 11살까지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던 숲 속 이야기가 담담하지만 아름답고 투명하게 펼쳐진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현대인들에게 삶의 철학을 바꿔 주는 ‘작은 고전’으로 알려진 명작이다.

책장 한편에 박혀있던 오래된 이 책을 다시 펼쳐든 것은 지친 내 영혼이 위로받기 위해서였을까!

책 속에는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인디언들의 지혜로운 삶의 방법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들의 생활태도와 지혜는 백인들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폐해에 대처할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준다.

결코 낡아버려 쓸모 없어진 삶의 철학이 아니다.

최근 곳곳의 이상 기후와 걷히지 않는 미세먼지는 산업화에 따른 환경 파괴를 그대로 보여준다.

돈을 인생 목적에 두는 물질만능주의, 부패와 사리사욕이 넘치는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인디언 소년 '작은 나무'가 들려주는 영혼의 이야기는 오늘날 삭막한 물질문명을 되돌아보게 한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주변의 소중한 모든 생명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기에 충분한 지혜가 담겨있는 책이다.

읽을수록 가슴이 따뜻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지혜가 담겨있다.

* 작은 나무는 저자 포리스터 카터의 인디언 이름이다.


The Way 자연의 이치 - 19쪽

주인공 작은 나무는 아빠가 세상을 하직한 지 일 년 만에 다시 엄마의 죽음을 맞게 된 5살짜리 소년이다.

고아가 된 '작은 나무'는 인디언 체로키족인 할아버지 '웨일스'와 할머니'보니 비(bonnine bee)와 함께 산속 오두막집에 살면서 인디언들의 지혜를 배우며 자연의 이치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건강한 나무로 성장해 간다.

* 체로키족 : 미국 남동부 애팔래치아산맥 남쪽 끝에 살면서 농경과 수렵생활을 한 인디언들이다.

1838~1839년 오클라호마 주로 강제 이주 당했지만, 산속으로 숨거나 달아난 사람들도 있어 지금은 멀리 떨어진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작은 나무는 본래 고향인 테네시 주에 머문 그룹의 자손에 속하다.

할아버지는 반이 스코틀랜드 혈통이었지만 자신을 인디언으로 여기고 있었고, 할머니는 체로키족 인디언이었다.

조부모를 따라나선 길, 작은 나무는 밤이 이슥해서야 버스에서 내려 자갈길에 내려선다.

유리가 쨍하고 깨질 것처럼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자갈길을 벗어나 흙길로 들어서자 작은 나무는 산이 바로 옆에 와 있는 것을 느낀다.

할아버지는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로 지치는 게 좋아."라고 하시면서도 걷는 속도를 늦추어 주신다.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울리기 시작했다. 주위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만물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작은 휘파람 소리와 숨소리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춥지는 않았다. 길옆에서는 달랑거리는 소리와 깐닥거리는 소리, 술렁이는 소리들이 뒤섞여 흘러갔다. 바위 위를 굴러 내려오면서 멈추는 곳마다 여울을 만들고, 다시 굴러 내려가는 시냇물 소리였다. 이제 우리는 깊은 계곡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반달은 맞은편 산등성이 뒤에 숨은 채 뿌연 은빛만을 하늘 가득히 토해내고 있었다. 덕분에 계곡에는 회색빛 아치 같은 것이 드리워져 우리 모습을 희미하게 밝혀 주었다. - 16쪽

작은 나무가 숲 속에 들어선 어둠 속 풍경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지, 읽기만 해도 함께 그 산 길을 걷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이 소설 전문은 이렇듯 숲과 그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온갖 동식물들을 세밀하고 다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따뜻한 영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할아버지는 사냥을 할 때도 누구나 자기가 꼭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를 몰아세우던 버스 운전사에 대한 할아버지의 말씀도 작은 나무는 기억해 둔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 사람이 짊어져야 할 짐이란다. 우리한테는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당신을 사랑해, 보니 비” - 57쪽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서 사랑과 이해는 같은 의미라는 것을 느낀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는 분이다.

할머니 보니 비는 신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두 분은 서로 이해하고 계셨다.

그래서 두 분은 서로 사랑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세월이 흐를수록 이해는 더 깊어진다고 하신다.


파인 빌리 - 82쪽

작은 나무는 밭 일구는 일을 좋아했다.

밭을 갈다 보면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도 저녁 식탁에서 할머니에게 작은 나무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할머니도 작은 나무가 갈수록 어른스러워진다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노새 '샘'영감은 쟁기를 끌어주는 고마운 가족이지만 똑똑한 노새인지 멍청한 노새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할아버지의 생각이다.

잘 웃는 사람 파인 빌리는 가끔 숲 속 오두막집에 들러 마을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다.

마을 소식을 들으며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작은 나무 가족은 이 사람을 좋아한다.

어둠이 깃든 오두막집에서 파인 빌리는 <붉은 날개>라는 곡을 바이올린 연주로 들려준다.

작은 나무는 이 감미로운 바이올인 소리를 듣다 잠이 든다.


나만의 비밀 장소 - 95쪽

체로키는 누구나 자기만의 비밀 장소를 갖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갖고 있다고 하셨다.

숲과 산에도 생명이 있다.

영혼이 빠져나간 마른 통나무만을 땔감으로 쓰는 이유다.

작은 나무는 인디언들이 백인 물질문명에 짓밟혔지만, 영혼의 풍요로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어떻게 자신들의 영혼을 지켜갔는지도 조금씩 배워나간다.

할머니는 작은 나무에게 두 개의 마음에 대해 알려주신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잠자리, 먹을 것 따위를 마련할 때, 짝짓기를 하고 아이를 가지려 할 때도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다른 마음은 '영혼의 마음'이다.

몸이 죽으면 몸을 꾸려가는 마음도 함께 죽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영혼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평생 욕심을 부리며 살아온 사람은 죽고 나면 밤톨만 한 영혼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이런 사람은 다시 태어날 때 밤톨만 한 영혼을 갖고 태어나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만 커지면 영혼의 마음은 땅콩알만 하게 줄어들었다가 결국 그것마저도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영혼의 마음을 완전히 잃게 되는 것이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

몸을 꾸려가는 마음이 욕심부리는 걸 그만두지 않으면, 영혼의 마음으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이해라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영혼의 마음도 더 커진다.


할아버지의 직업 - 106쪽

할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쪽 가계로부터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위스키를 만드셨다.

산에 살지 않는 사람들은 누가 위스키를 제조한다고 하면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도시 사람들은 저품질 대용량 위스키를 만들어 팔지만 할아버지는 위스키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손수 농사지은 옥수수만을 사용해서 100% 순수한 위스키를 만든다.

할아버지의 증류기는 실개천들이 모여들어 시내를 이루는 곳에 있다.

빽빽한 월계수와 인동덩굴 숲에 깊이 파묻혀 있어서 하늘을 나는 새들로 찾아내기 힘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코일까지 모두 순동으로 만들어진 증류기를 자랑스러워하셨다.

한 달에 한 번씩 11갤런(약 42리터)만 만들어 그중 9갤런만 마을 사거리 가게 젠킨스 씨에게 1갤런당 2달러씩 받고 팔았다.

그 돈으로 생필품을 샀고 적으나마 저축도 했다.

할머니는 남은 돈을 담배쌈지에 넣어 과일 항아리 속에 담아두셨다.

할머니는 작은 나무도 힘들게 일하고 기술을 배웠으니 이 속에는 작은 나무의 몫도 있다고 하셨다.


위험한 고비 - 155쪽

할아버지는 '쓸모 있는 것일수록 더 얻기 힘들게 마련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숲을 손상시키지 않고 숲과 더불어 산다면 숲이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도 하셨다.

자리공 열매처럼 새들이 먹지 않는 열매는 함부로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인디언은 절대 취미 삼아 낚시를 하거나 짐승을 사냥하지 않는다.

오직 먹기 위해서만 동물을 잡는다.

즐기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

할머니는 방울뱀에 물린 할아버지를 인디언 방식으로 침착하게 처치하고 슬기롭게 대처하셨다.

작은 나무는 조심하지 않은 자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할머니는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며, 심지어 방울뱀의 탓도 아니며 또 이미 일어난 일을 놓고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정신이 돌아온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와 뱀 사이에 당신의 손을 집어넣었던 일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으셨지만,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할머니 다음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대부분에서 이렇듯 숲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글이 슾처럼 곱다.

산꼭대기에서의 하룻밤 - 192쪽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는 인디언식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사람들은 작은 나무더러 너무 단순하다는 말들을 했다.

그때마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가 '말'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들을 떠올렸다.

'단순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단순하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단순하기 때문에 내가 언제나 잘 해낼 것이라고 하셨다..... 실제로도 그랬다.

할아버지는 반이 스코틀랜드 혈통이었지만 자신을 인디언으로 여기고 계셨다.

위대한 붉은 독수리, 빌 웨더포드, 멕질버리 황제, 매킨토시 같은 사람들도 모두 할아버지 같았다고 한다.

그들은 인디언들이 그러하듯이 자신들을 자연에 내맡겼다.

책을 2번씩 읽으면서도 나는 매킨토시 외 다른 이들에 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검색을 해도 찾을 수없는 인물들이어서 아쉬웠지만, 자연을 정복하거나 이용하려 들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다 간 분들인 것이 분명했다.


윌로 존 - 215쪽

이 산에 온 첫날밤 할머니가 노래하신 것처럼 작은 나무는 자연 속의 모든 것을 형제자매로 가질 수 있었다.

다른 애들은 부모가 죽고 나면 외로움을 느끼지만 작은 나무는 나무와 새와 시냇물, 비와 바람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다.

여름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었다.

작은 나무는 여름에 태어났다.

그 사람이 태어난 계절이 바로 그 사람의 계절이 되는 것이 체로키의 관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나무의 생일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여름 내내 계속됐다.

이제 작은 나무는 여섯 살이 됐다.

할머니는 매일 밤 등잔불을 밝혀놓고 책을 읽어주셨고, 사전 공부도 계속 시키셨다.

작은 나무 가족은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면 윌로 존을 만난다.

그의 집은 교회를 지나서도 한참 더 가야 하는 깊은 산속이어서 작은 나무네 오두막집과 윌로 존의 집 중간쯤에 교회가 있는 셈이다.

그는 인디언식으로 땋은 백발을 어깨 아래까지 드리우고 있는 여든 살이 넘은 분이셨다.

윌로 존은 교회를 지나서도 한참 더 가야 하는 깊은 산속에 살고 있었다.

그는 자동차도 기차도 타지 않고 맨발로 산들을 지나는 분이셨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작은 나무는 *제로니모의 사진 속에서 윌로 존과 똑같은 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로니모 : 미국의 인디언 정벌에 대항하여 조직적인 저항을 시도한 아파치족의 마지막 전사


234쪽 사진

교회 다니기 - 235쪽

한번 무언가를 단념하고 나면 그 사람은 일종의 방관자가 된다.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종교상 의식 절차에 대해서는 방관자로 행동했다.

사실 두 사람은 그 문제 대해 안달복달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이미 포기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남에게 주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하면 받는 사람보다 자신이 잘났다는 허세와 우월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해야 할 일은 받는 사람의 자립심을 일깨울 수 있는 작은 뭔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의 눈에 비치는 산 아랫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숲 속의 일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입에 발린 말로 사람들을 속여가며 자기 욕심 챙기기에만 급급한 정치인들, 영혼의 구원보다는 종교를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삼는 목사와 백인 부자 신도를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가 그대로 보인다.


와인 씨 - 248쪽

와인 씨는 겨울과 봄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해가 지는 것만큼이나 규칙적으로 오두막집에 찾아와서 하루나 이틀 밤을 묵고 떠났다.

그는 개척촌에 살고 있었지만, 보따리를 등에 짊어지고 산에서 산으로 다니며 장사를 했다.

와인 씨는 쉬지 않고 시계를 수리하면서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작은 나무는 와인 씨로부터 시계 보는 법도 배웠다.

와인 씨는 작은 나무 또래 애들 중에서 맥베스 씨나 나폴레옹 씨에 대해 알고 있는 아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며, 사전을 공부하는 아이도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 산수도 가르쳐 주셨다. 숫자 쓰는 방법과 덧셈, 뺄셈, 곱셈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여름이 마지막을 재촉하고 있던 날, 와인 씨가 마지막으로 숲 속 오두막집에 들르셨다.

물론 그 당시 그게 마지막인 걸 아는 사람은 없었다.

와인 씨는 바다 건너 사는 증손자에게 주려고 만들었다는 노란 코트 한 벌을 꺼냈다.

와인 씨는 자꾸 뭔가를 잊어버리곤 하는데, 그 사이 세월이 흐른 걸 그만 깜박 잊고 증손자 어렸을 때 몸집에 맞추었다고 한다.

이제 그 옷을 입을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멋진 코트는 결국 작은 나무의 것이 되었다.

작은 나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서 거실 문을 밀고 와인 씨가 있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분은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인 채 식탁에 초를 켜놓고 계셨다.

와인 씨 가족들은 모두 넓은 바다 건너에 살고 있어서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 가족들이 매일 밤 정해진 시간에 똑같이 촛불을 켜는 것이었다. 이렇게 촛불을 켤 때면 서로의 생각이 하나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작은 나무는 윌로 존에게도 촛불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다.

작은 나무는 그 이야기에 푹 빠져서 노란 코트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하려던 걸 까맣게 잊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와인 씨는 돌아갔다.

와인 씨는 등에 짊어진 짐 무게로 구부정하게 허리를 구부린 채 할아버지가 히코리 나무로 깎아 만든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산길을 내려가셨다. 작은 나무는 뒤늦게 "와인 씨! 노란 코트 고마워요!" 고함을 질렀지만, 뒤돌아보지 않는 걸 보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와인 씨는 건망증만 심한 것이 아니리 귀도 어두웠다.

작은 나무는 조부모와 친절한 사람들로부터 감사를 바라지 않고 사랑과 선물을 주는 것,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영혼의 마음' 가꾸는 것 등을 익혀간다.

작은 나무는 체로키 인디언의 생활철학을 배우며 건강한 아이로 성장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와인씨를 인색하다고 하지만, 그는 근면하고 검소한 바른 사람이었다.


산을 내려가다 - 261쪽

가을은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 정리할 기회를 주는, 자연이 부여한 축복의 시간이다. 회상의 시간이며 후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겨울 준비가 한창일 무렵 정치가처럼 보이는 백인 남자와 여자 한 사람이 숲 속 집으로 찾아왔다.

사람들이 작은 나무의 교육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몹시 걱정하고 있으니,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몇몇 사람들이 작은 나무가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법에 고소했으며, 이기적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이를 양육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작은 나무의 인생을 가로막고 있다는 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세 사람은 새벽에 골짜기를 내려와 와인 씨를 찾아갔다. 그에게 정치가 같은 백인들이 놓고 간 쪽지를 보여주기 위해.

그러나 와인 씨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가 작은 나무에게 남긴 유품 자루를 챙겨 들고 슬픔을 겨우 가눈 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다. 변호사 테일러 씨는 할아버지가 위스키 제조로 - 딱 한 번 - 감옥 간 적 있는 것을 되묻는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정부 관리들은 산사람들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요.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지요."

"인디언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재판해 봤자 우린 질 거요. 놈들은 결국 이 아이를 데리고 갈 거요."라고 말했다.


늑대별 - 281쪽

백인들은 작은 나무를 강제로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고아원으로 보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들이 인디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과는 다른 방식과 철학으로 아이를 기른다는 이유로 만으로 사랑하는 작은 나무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고아원 원장인 목사는 이중적이고 편협한 사람이었다.

"여기는 순종이든 혼혈이든 간에 인디언이라곤 한 사람도 없어. 게다가 너의 어머니 아버지는 정식으로 결혼하지도 않았어. 우리가 사생아를 받아들인 건 정말이지 네가 처음이다."

작은 나무는 할머니가 말해주신 것을 목사에게 이야기했다. 체로키들이 아빠와 엄마를 결혼시켰다고.

목사는 체로키가 한 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자기는 작은 나무에게 질문하지 않았노라고 화를 냈다.

작은 나무는 일 학년 반에서 외톨가 되어 교실 한구석에 처박혀 있어야 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무척 사무적인 덩치 큰 여자로부터 배우는 내용 중에는 와인 씨가 가르쳐 준 내용들도 있었다.

어느 날 그 여자가 내민 사진에는 사슴 두 마리가 시냇물 건너는 모습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틀린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작은 나무는 '수사슴이 암사슴의 엉덩이 위로 뛰어오른 걸 보면 그들이 짝짓기를 하는 중이며, 주의 풀이나 나무 모습들을 보더라도 사슴들이 짝짓기 하는 계절이란 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 여자는 작은 나무의 멱살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흔들어 댔다. 얼굴을 벌겋게 붉히면서 고함까지 질렀다.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우리 모두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이렇게 추잡스럽다니..... 이 사생아 녀석아!"

작은 나무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악을 써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이 일로 작은 나무는 목사에로 끌려가 굵다란 막대기로 등에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는다. 그 피는 다리를 타고 흘러내려 신발 안이 피로 질척해졌다.

작은 나무는 부모가 백인처럼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차피 지옥에나 떨어질 사생아'로 취급하는 백인 문명의 잔혹성과 위선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백인들이 말한 ‘더 좋은 교육’과 ‘더 나은 환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작은 나무는 날마다 해와 구름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하늘이 흐려 있으면 밤이 되어도 늑대별을 볼 수 없다. 그럴 때면 창가에 서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작은 나무는 늑대 별을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 윌로 존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다..... 목사는 작은 나무가 악의 씨로 태어나서 고칠 방법이 없다는 말도 했다는 것을 알렸다. 작은 나무는 지금 이 상황을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 없으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작은 나무가 늑대별을 보다가 잠이 든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날 이후 땅거미가 내리고 늑대별이 반짝이기 시작하면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 윌로 존에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어느 날 저녁 늦게 막 방으로 돌아가려 할 때, 작은 나무는 고아원 문밖을 지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키가 큰 남자는 검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큰 소리로 "할아버지 저예요! 작은 나무예요!" 고함을 질렀지만 듣지 못했는지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분은 윌로 존이었다.

드디어 땅거미가 내리고 있던 크리스마스 날, 할아버지는 고아원으로 작은 나무를 찾아오셨다.


집으로 돌아오다 - 307쪽

마을 대장 보안관으로부터 고아원에서 할아버지를 보잔다는 연락이 왔다.

할아버지가 고아원을 찾아가니, 목사는 몹시 짜증스러운 얼굴로 작은 나무를 포기한다는 서류에 서명하는 중이라고 말하더란다.

목사 말로는 한 야만인이 이틀 동안이나 자기 뒤를 따라다니더니 결국 사무실까지 뛰어들어와, 작은 나무는 산에 있는 집으로 가야 된다는 말을 하더라고 했다. 목사는 야만인이나 이교도와 분쟁을 일으키는 건 딱 질색이라고 했다.

그제야 작은 나무는 고아원 담 밖을 걸어가던 분이 누구였는지 알게 됐다.

집으로 돌아온 다음 첫 번째 일요일, 작은 나무는 교회에서 윌로 존을 만난다.

윌로 존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작은 나무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작은 나무가 올려다보니 깊고 그윽하게 반짝이는 그의 눈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음의 노래 - 316쪽

작은 나무에게 남겨진 그 해 겨울은 무척 행복했다.

할아버지는 때로는 혹독한 겨울도 필요하다고 하셨다.

이 시기는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보다 튼튼히 자라게 하는 것이 자연의 방식이었다.

얼음은 약한 나뭇가지만 골라서 꺾어버리기 때문에 강한 가지들만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게 된다.

또 겨울은 알차지 못한 도토리, 밤, 호두 등을 쓸어버려 산속에 더 크고 좋은 열매들이 자랄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혹독하게 춥던 겨울이 지나고 씨 뿌리는 봄이 돌아왔다.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옥수수 씨를 예전보다 좀 더 많이 뿌렸다.

가을에 만들 위스키 양을 좀 더 늘릴 생각에서였다.

사거리 상점 젠킨스 씨가, 세상이 불경기여서 모든 장사가 안되고 있는데 위스키 거래만 오히려 더 잘 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힘든 세상살이를 술에 취해 지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되자 작은 나무는 일곱 살이 되었다.

할머니가 아빠와 엄마의 혼인 지팡이를 작은 나무에게 주셨다.


계절이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어가던 어 일요일, 윌로 존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작은 나무 가족은 예배에 참석하는 것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 아침해가 뜨기도 전에,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윌로 존을 찾아 나섰지만, 윌로 존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작은 나무야, 나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단다. 이제 그만 가고 싶어. 언젠가 네가 오길 기다리마"

작은 나무와 할아버지는 윌로 존의 영혼이 눈 속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이 느껴졌다.

남겨진 두 사람은 윌로 존이 산등성이와 산봉우리들 저 너머로 사라져 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바람 속에서 그를 느끼고, 나무들의 속삭임 속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작은 나무 가족은 교회에 가지 않았다. 이제 그곳에 가도 윌로 존이 없었으니까.


그 후, 작은 나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함께 산 기간은 2년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고, 모카신을 약간 끌 듯이 걸으셨다.

어느 날, 파인 빌리가 찾아와 할아버지 옆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껴안은 채였고,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그러고 나자 윌로 존이 그러했던 것처럼 할아버지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비밀 장소였던 곳에 묻혔다.

할아버지가 아침의 탄생을 지켜보며 "산이 깨어나고 있어!"라고 말씀하시던 그곳이었다.

가족같이 지냈던 개 리핏이 먼저 세상을 떴고, 겨울이 끝날 무렵 모드까지 뒤를 따랐다.

봄이 오기 직전이었다.


봄이 다 오기도 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주황과 초록과 빨강과 노랑 무늬의 드레스를 입고, 가슴 앞섶에 작은 나무에게 쓴 편지를 꽂고 돌아가셨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들을 느끼듯이,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

다음 날, 작은 나무와 파인 빌리는 할아버지 곁에 할머니를 묻었다.

작은 나무는 두 분의 혼인 지팡이를 두 분의 무덤 사이에 돌무더기를 쌓아 잘 세워두었다.


작은 나무는 두 마리 개 블루보이와 리틀레드와 함께 숲 속 오두막집에서 남은 겨울을 보냈고, 봄이 오자 하늘 협곡에 숨겨진 증류 솥과 관을 땅에 묻었다. 할아버지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것들을 써서 질 나쁜 위스키를 만들어내 원치 않으실 것이다.

작은 나무는 이제, 할머니가 모아둔 위스키 판 돈을 가지고 아득히 저 멀리 서쪽 산들 너머에 있다는 인디언 연방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블루 보이와 리틀레드도 함께 떠났다.

리틀레드는 빙판을 잘못 밟아 시냇물에 빠져 죽었고 얼마 후, 늙고 노쇠한 블루보이도 세상을 떠났다.



작은 나무를 아끼고 보살펴 주던 분들이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작은 나무는 자연의 이치를 깨우치던 숲 속을 떠나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홀로 살아가야 한다.

백인 문명의 허구성이 만들어 놓은 *인디언 연방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작은 나무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디언들을 위한 인디언 연방을 찾아 헤매는 어린 방랑자가 된 것이다.


*인디언 보호구역(인디언 연방) : 1830년의 인디언 이주법은 유럽계 거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원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은 미국 연방정부의 정책의 일환이었다. 보호구역에서의 삶은 기대수명은 짧고,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빈곤하며, 마약 및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고 한다. - 위키백과 내용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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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고 보관 중인 이책은 1999년 '아름드리미디어'에서 발간한 오래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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