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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Apr 03. 2023

인천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의 봄과 야속한 미세먼지

'인천 자유 공원 벚꽃축제'는 4월 8일과 9일 양일간 열릴 예정


아침에 일어나, 블라인드를 올리니 창가로 파란 하늘이 미소를 보낸다.

미세먼지 없는 아침을 맞은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요일이다.

어제(4월 1일)는 미세먼지 가득 덮인 인천 자유 공원에서 훈훈한 봄기운을 느꼈지만, 얼굴엔 마스크를 딱 붙이고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미세먼지 가득한 일상이 이제는 코로나보다 삶을 지치게 하는 것 같다.

자유 공원 맥아더 동상 앞 광장에서 인천항을 바라보노라니, 답답한 심정을 접을 수 없었다.

봄나들이 길에 올랐지만, 묵직한 대기가 머리 위를 꾹꾹 누르는 듯하니 가볍게 즐기려던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내가 언제부터 공기의 무게를 느끼며 살았단 말인가!

손녀 꾸미처럼 2020년대 출생한 신생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의 축복도 가까이서 받지 못했다. 백일도 돌잔치도 가족들만 모였다가 조용히 헤어졌고,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마스크를 쓰고 외출한다.

꾸미는 할미가 얼마나 맑고 투명한 세상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옛이야기로만 상상하며 살게 될까 봐 슬며시 두렵다.

미세먼지로 오염된 대기 질이 밀려가고 오늘은 이렇게 날씨가 맑고 투명하니 심신이 편안하다.

'인천 자유 공원 벚꽃축제'는 다음 주 4월 8일과 9일 양일간 열릴 예정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까! 우리 부부는 언제부터, 어딜 가든 붐비는 축제 기간을 살짝 비껴서 다녀오기 시작했을까!


구) 인천 일본 제1은행 지점 / 최초의 우편배달부와 우체통


우리나라 우편 제도는 1884년 11월 18일 서울과 인천 간에 우편물이 교환으로 시작됐다.

위 '최초의 우편배달부' 조형물은 근대 사진자료에 남아있던 1912년식 우체통과 우체부의 모습을 기초해서 제작된 것이다.

구) 인천 일본 제1은행 지점은 일본 제1은행 부산지점 인천출장소로 1883년 인천개항 후 개설된 근대적 금융기관이다.

1888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고, 초기에는 해관 통관세를 취급했다. 1911년 조선은행 인천지점, 1950년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됐다. 이후 조달청 인천사무소, 법원 등기소 등으로 활용됐고, 2010년 인천개항 박물관으로 개관했다.

1899년 신축된 지상 1층 건물로 석재 기단부와 수평 줄눈으로 안정되고 견고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돌출된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룬 석조 건축물이다.

현관 위는 아치구조이고, 지붕에는 중앙 돔과 작은 천창을 설치했다. 처마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이 올려졌다.

복림원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맞은편 쪽에 있는 대불호텔 전시관과 중구 생활사 전시관을 둘러봤다.


복림원 유니짜장 / 유산슬 밥


대불호텔 전시관중구 생활사 전시관은 테마 박물관이 밀집한 박물관 거리에 있다.

대불호텔 전시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 역사를 소개하는 곳이고, 생활사 전시관에서는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며 100년 전 개화기 인천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불호텔 전시관에서 관람권을 구매할 때 5 개관 통합 관람권을 구매하면 저렴한 가격에 박물관을 투어를 할 수 있다.

5 개관 통합 관람 대상 박물관은 대불호텔 전시관, 한중문화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인천개항 박물관, 짜장면 박물관이다.

우리는 대불호텔과 중구 생활사 전시관만 둘러보기로 했다.


생활사 전시관과 오른쪽 대불호텔 전시관


대불호텔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은 개항 후,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외국인들이 서울로 가기 전 묵었던 조선 최초의 호텔이다.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불호텔 전시관에서는 호텔 역사와 객실 등을 재현해서 보여준다.


대불호텔 외관 / 호텔 로비


1층, 대불호텔 터에서 발견된 호텔의 흔적을 통해 당시 건축양식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대불호텔에서 중화루로, 그리고 중화루가 철거되기까지 역사와 영상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2층, 대불호텔 객실을 재현한 곳이다.

대불호텔과 함께 당시 인천의 다른 호텔, 여관 등 숙박업소 운영방식, 이용요금, 제공된 서비스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고풍스러운 가구와 다기, 커피 메이커, 테이블웨어 등 전시된 근대 물품이 당시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대불호텔은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자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제공했던 곳이다.


사진출처: 인천 중구  문화 관광 -  서양식 서비스 / 객실을 재현한 방

3층, 연회장을 재현한 공간이다.

당시 연회장은 음식과 음악을 제공하는 사교의 장이었다. 

현재 대불호텔 전시관에서는 연회장을 기획전시장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세미나·강연·전시회 등을 위해 시민이나 단체에게 대관해 주기도 한다. 연회장 밖에는 가상 피팅기로 근대 의상과 드레스를 가상으로 착용하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고 한다.



1960~19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

중구생활사 전시관은 지하 1층, 1층, 2층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1960~1970년대 인천 시민들의 생활과 문화 등을 엿볼 수 있다.

특색 있는 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카페와 사진관도 있다.

생활사 전시관은 대불호텔 전시관 관람을 마친 후, 대불호텔 1층 뒷문을 나서면 이어진다.



지하 1층, 안내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생활사 전시관 지하 1층 출입문과 지하철 모형이 있다.

인천 중구가 출범한 1968년을 기준으로 현재까지 인천광역시 중구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표도 전시되어 있다.



1층, 1960~1970년대 중구 생활사를 의, 식, 주로 나누어 전시한다.

일부 공간마다 특색 있는 음식과 문화상품도 판매한다.



의상 대여실에서 교복, 복고 의상 등을 대여하하기도 한다. 

대여한 옷을 입고 사진관에서 기념촬영할 수도 있다고 하나 우리가 방문했을 때, 이 코너에 상주 안내 직원은 보이질 않았다.



1960~1970년대 정서가 담긴 이발소, 연탄, 클래식 카메라, 공중전화 등의 소품을 마주하면 옛 추억이 손에 잡힐 듯 곁에 머문다.

당시 주거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엌과 방 등도 재현되어 있다.

전봇대와 전깃줄이 늘어진 1960~1970년대 시장 골목에서 서성이다 보면 당시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2층, 1960~1970년대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선술집, 극장, 다방 등이 있다.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틀어주던 당시 다방에는 레코드판 앨범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극장에는 1970년대 인기 영화 포스터와 매표소를 재현, 전시해 놓았다. 상영 시간이 맞으면 70년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우리가 지나 칠 때는 '맨발의 청춘'이 상영 중이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1층으로 내려가면, 출입구는 생활사 전시관 전면이다.




차이나타운 인천 개항장 근대 건축 전시관 근처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타고, '신포로 23길'을 따라 내려간다. 곧 '홍예문로'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응봉산' 자락 남쪽 산을 뚫어 만든 홍예문을 만난다.



자유 공원이 있는 '웃터골' '오포산' 기슭을 넘어가려면 이 문을 지나가게 된다.

홍예문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제물포항(지금의 인천항)에서 물건을 빠르게 실어 나르기 위해 응봉산을 잘라내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축조 과정에서 많은 조선인 인부들이 희생당한 곳이다.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석축 하나하나에 우리의 뼈아픈 역사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홍예문을 지나 벚꽃과 개나리꽃이 반겨주는 왼쪽 '자유공원로'를 따라 천천히 달린다.

양쪽 길가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 못다 핀 꽃길을 거닐며 봄을 즐기고 있다.

자유공원로가 끝나는 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자유공원서로'를 따라가다 블루마운틴 카페 근처에 주차를 하고, 한미수교 백 주년 기념탑으로 올라간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이 탑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각계의 뜻을 모아 1982년 5월 착공, 12월에 준공됐다. 

설계는 강석원 건축가가 맡았고, 탑 중앙 조각 '움직임 그 100년'은 최만린 조각가의 작품이다. 

기념탑의 영문은 박두진 시인이 짓고, 김충현 서예가의 손길이 닿아 만들어졌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에서 내려오면 보이는 자유 공원 광장 / 자유 공원 광장쪽에서 올려다본 기념탑



인천 자유 공원은 응봉산 전체를 말한다. 

서울 파고다 공원(1897년)보다 몇 년 앞선 공원이라고 하다. 

인천항 개항 후, 외국인 거류민단에서 관리 운영, 당시 시민들은 이를 만국공원이라고 불렀다. 

1914년 일본 세력이 커지면서 각국 거류지 철폐와 함께 공원 관리권이 인천부로 이관되었고 이때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서공원'으로 불렸다고 한다.  

자유 공원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응봉산 정상에 세워진 1957년 10월 3일부터이다. 



기념탑에서 내려와 자유공원 광장으로 내려가 맥아더 장군 동상을 만난다. 

맥아더 장군 동상은 1957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 7주년을 맞아 장군을 추모하고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인천시민의 성금으로 건립되었다. 

그런데 맥아더 장군 동상 부조물에 오류가 있어 보훈처와 인천시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협조 중에 있다고 한다.  

맥아더 동상 부조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레이테만 상륙작전'모습이 형상화되어 있어, 인천상륙작전 모습으로 바로 잡을 것이라고 한다. 


맥아더 장군 동상 / 자유공원 시계탑


맥아더 장군 동산 앞 공원에서 인천항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미세먼지로 피곤해진 눈을 크게 뜨고 인천항을 바라보지만 내 눈도, 폰 카메라도 뿌연 시야로 미항의 풍경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

잠시, 자유 공원 빈 의자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던 것은 조금 피곤했기 때문이다.

시야가 답답하니,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가득 들어찬 공원인 데도 내 기분은 다운되더라.


자유공원 정상에서 바라본 인천항,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4월 첫날, 인천항과 자유 공원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고 돌아가니, 작은 추억을 하나 더한다. 

쾌청한 어떤 날, 다시 자유 공원 정상에서 인천항을 내려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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