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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Mar 31. 2023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서 봄비 휘몰아치던 날

덜커덩 거리는 증기기관차, 간식 파는 역무원 모습이 옛 추억을 불러온다.

3월 12일(일) 구례 화엄사에서 곡성기차마을로 향하는 길, 

잿빛으로 어두워진 하늘에서 별안간 빗방울이 내려와 후드득 차창을 두드린다. 

고마운 봄비다. 

대황강도 춤추듯 봄비를 환영하며 끌어안는다.  


빗줄기가 점점 강해진다. 

섬진강 기차마을에 도착한 10시 45분경, 정말이지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한두 번 천둥까지 울리고 번개까지 따라왔다. 3월에 이런 봄비는 본 적이 없었다. 


cㅏ


곡성 기차마을을 한 바퀴 쭉 돌아보고 11시 출발 증기기관차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점점 드세지는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5분 이상 자동차 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쏟아지는 빗줄기기가 싫진 않았지만 기차는 정시에 출발하니, 빗줄기를 뚫고 곡성역으로 들어섰다. 

어젯밤 예약해 둔 증기기관차 티켓은 곡성역에서 발급받지만, 그전에  섬진강 기차마을 입장권 매표소(061-362-7461)에서 공원 입장료를 내야 한다. 



증기기관차, 기차마을 레일바이크, 미니기차, 드림랜드 등 유료시설을 이용하려면 따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아이들과 가족단위로 오면 즐겁게 이용할 시설들이지만, 이날은 비도 거칠게 내렸고, 조금 춥기까지 해서 시설을 둘러보는 사람들은 보이질 않았다. 우리도 역사에서 빼꼼히 내다보는 것으로 공원 둘러보길 마쳤다.

  




곡성 역사 안에서 바라본 입구 쪽


역사 안에서 바라본 중앙광장과 승강장 쪽 / 왼쪽 미니기차 타는 곳, 오른쪽 중앙광장


곡성 섬진강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구간


증기 기관차에 오르기 위해 곡성 역사를 나선다.

빗줄기는 잦아들지 않았지만, 기차는 예정대로 11시에 곡성역을 출발했다. 

평소 주말대로라면 3량 모두 사람들을 가득 채우고 출발한다는 데, 이날은 한 량도 다 채우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가 탈 '섬진강호' 1호 차 / 증기기관차 타는 곳


증기기관차에서 바라보이는 KTX


달리는 기차 안에서 먹거리를 파는 역무원이 지나가자, 아이들이 좋아한다.

 덜커덩 거리며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살짝 불편한 승차감, 쏟아지는 봄비, 간식을 파는 역무원 모습이 어우러져 아련한 옛 추억을 불러온다. 

퍼붓는 빗줄기와 차량 안 습한 공기로 차창에는 공중목욕탕의 수증기처럼 뿌연 김이 서린다. 

바싹 말라있던 세상이 봄비를 모두 품어 안는다. 

세상이 비로소 다시 활기를 찾는다. 

거칠기까지 한 봄비가 싫지 않은 이유다. 


빗줄기가 세졌을 때는 창에 김까지 서려 밖이 잘 내다보이지도 않는다.

기차 차량이 연결된 곳으로 살며시 나서니, 좀 더 선명하게 비 오는 날 대황강을 볼 수 있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과 장수군 장수읍 경계인 팔공산에서 발원, 진안군 백운면과 마령면을 거쳐 임실군 운암면 갈담 저수지로 흘러들고, 곡성읍 북쪽에서 남원시 요천과 합류한 후, 남동으로 흐른다. 

그리고 이곳 압록 근처에서 보성강(대황강)과 합류한 것이다. 

이제, 물길은 지리산 남주 협곡을 흘러 경남과 전남의 도계를 이루며 광양만으로 흘러들어 가는 긴 여정에 이르게 된다. 

섬진강은 남한에서 4번째로 큰 강으로 길이는 212.3km에 이르며, 강 너비는 넓지 않다. 

강바닥에는 암반이 많이 노출되어 있어 항해를 하기에는 불편한 강이다.  



비 오는 날 차량이 이어진 곳으로 나가 풍경을 찍다가, 다른 칸에 있던 역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곧 "어서 들어가요!"라고 안내한다. 

안전사고를 걱정하시는 그 마음 잘 알기에 "예 예!"라고 크게 대답하고, 이내 차량 안으로 돌아간다. 


봄비가 휘몰아치던 날, 곡성 11시발 증기기관차를 타고 달리다 보니, 김용택 섬진강 시인의 '거기 가고 싶어요' 구절이 맴돈다. 

'당신을 만나 안고 안기는 것이 꽃이고 향기일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지금 그리고 가고 싶어요.' 

나도 지금 거기로 가고 싶다!


11시 25분 가정역 도착.

대황강 구름다리가 크게 두 팔 벌리고 맞아준다. 

평소라면 구름다리를 건너갔다 왔을 텐데 계속 비가 내리다 보니, 주위 풍경을 바라다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다리로 오르는 난간이 미끄럽기도 했고, 내 운동화가 물에 스며드는 재질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아예 기관차 밖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구름다리 주변은 썰렁했고, 온몸으론 으스스 한기가 느껴지다. 


가정역 승차장 / 내리는 봄비로 멈춰있는 가정역 레일바이크 


대황강 구름다리와 주위 고즈넉한 풍경


섬진강호 증기기관열차

11시 40분 섬진강호 증기기관차는 가정역을 떠나 옛 곡성역을 향해 출발한다. 

5분여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억수로 내리던 빗줄기가 슬며시 잦아들기 시작한다.



곡성역에 도착하니, 1시간 5분 전 쏟아붓듯이 내리던 비는 슬며시 자취를 감추고 보슬비 이슬비 가랑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다. 

나는 가장 먼저 자동차 트렁크에서 단화를 꺼내와 바꿔 신는다.

뺨에 살짝 맞는 가랑비는 좋아하지만 내 두 발에 스며드는 습기는 싫다. 


가정역에서 도착한 후, 곡성역 앞 풍경 




비가 그쳐 가지만 섬진강 기차마을공원 둘러보기는 접고, 점심 식사할 곳을 찾는다. 

기차마을 정문 맞은편으로 '황금 코다리'(곡성군 오곡면 기차마을로 217-4 / 061-363-0023) 식당이 보인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싶어 망설임 없이 들어선다. 

우리는 식당 왼쪽 안으로 안내를 받는다.

코다리&시래기 조림 小를 주문한다. 



두 사람이 먹기에 푸짐한 양이다. 코다리는 담백 얼큰하니, 입안에 착 감겼다.

나는 특히, 구운 김에  쌈 싸서 먹는 코다리 맛이 좋다. 

봄비 탓인지 실내가 좀 추웠다. '묵'은 춥지 않다고 하니, 나만 그런가 싶다. 

한동안 스스로 작정하고 마시지 않던 커피지만, 황금 다방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니, 몸이 한결 나아진다. 

이곳에는 믹스와 원두커피, 매실차, 오미자차 등 다양한 후식이 준비되어 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니,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춥다.

아침 화엄사에서 맞은 봄과는 너무 달라, 여벌의 옷을 더 껴입고 광양 매화마을 쪽으로 향한다. 


* 블로그에 이미 포스팅한 글을 가져온 여행기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RmkRvj9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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