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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Mar 29. 2023

지리산, 구례 화엄사 가람 배치에 숨겨진 의도

대웅전보다 각황전이 더 큰 화엄사의 특별함이 빚어낸 가람 배치의 비대칭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구례 화엄사는 2021년 5월에 찾았던 곳이다.

그날, 지리산에는 이슬비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엄사 경내를 촉촉이 적시던 봄비는 포근하고 온화했다.

연기암에서 나를 품어주던 보슬비는 '어머니의 산'인 지리산 숨결을 그대로 전해 주었다.

산 멍, 운무(雲霧) 멍에 취한 채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았을 때, 세상사 아쉬움 다 밀려나고 삶이 어찌나 여유롭게 느껴지던지!


화엄사 입구 풍경

2023년 3월 12일, 아침부터 하늘이 찌뿌둥하다.

일기예보에서는 한 때 비가 내릴 것이라 했지만, 9시경엔 지리산 햇살이 슬쩍슬쩍 내비치고 있으니 불어오는 가벼운 봄바람이 마냥 흥겹다.

가뭄으로 바싹 말라있는 세상이니 비가 와도 좋겠다. 

1년 7개월 전 다녀간 화엄사이니 오늘은 쓱 지나쳐 가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조금 서둘러 곡성 기차마을로 향할 예정이다. 몸이 바쁘니 마음 살짝 어수선하다.


반야교 건너 주차장이 있다.

자동차를 세워두고, 돌계단과 사잇길을 따라 올라간다.


주차장에서 화엄사 올라가는 사잇길 풍경


지리산 화엄사 



일주문을 지나면, 법구경에 나오는 불견, 불문, 불언을 상징하는 3개의 불상이 있다.

늘 새기며 살아가면 좋을 귀한 말씀이다.


불견(不見)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한다.

불문(不聞)

산 위의 큰 바위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불언(不言)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품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혀야 한다.


종무소 앞 홍매화


가운데 왼쪽 낮은 건물이 전남 유형문화재인 '보제루' 그 오른쪽 '법고루(法鼓樓)'


화엄사 보제루

중문인 천왕문을 지나 대웅전과 각황전을 가기 전에 거쳐야 하는 보제루도 역시 동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부분의 사찰은 보제루 아래로 지나가도록 되어 있지만 화엄사 보제루 밑으로는 지나가지 못한다.


왼쪽 각황전, 오른쪽 대웅전

화엄사는 대웅전보다 각황전이 더 크다.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대웅전과 그 앞에 모셔진 탑이 가장 크지만, 화엄사에서는 각황전이 더 크다.

물론 각황전도 부처상을 모신 금당이긴 하다.

그러나 각황전이 더 크다 보니, 건축물 규모 차이로 가람의 배치가 비대칭적으로 되어있다.

각황전 앞 석등과 계단 아래 '서 오 층 석탑'은 물론, 대웅전 앞에 있는 '동 오 층 석탑' 역시 정 중앙을 내어준 채 서있다.

절의 찾는 중생들은 보제루를 오른쪽으로 멀리 돌아 대웅전으로 오르게 된다.

그러면 각황전은 멀어지고 대웅전은 가깝게 된다.

이렇게 대웅전에 오르면, 원근감으로 각황전과 대웅전의 크기 차이가 줄어드는 착각에 빠진다.

보제루를 돌아 삐뚤게 배치되어 있는 각황전과 대웅전 탑과 석등 전부를 동시에 바라보면, 순간 마치 일직선상에 놓인 것처럼 보인다.

이 얼마나 탁월한 배치인가!

오 층 석탑-석등-각황전이 일렬로 놓이고, 동 오 층 석탑과 대웅전이 일렬로 놓이게 되는 것을 직접 바라라 보시라! 가람 배치에 이런 숨겨진 의도가 담겨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화엄사 대웅전과 동 오 층 석탑
대웅전 금불상 / 대웅전과 앞뜰 소나무, 오른쪽 명부전                                

화엄사 대웅전은 조선 인조 때 건립, 현존하는 화엄사 당우(堂宇)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 벽암 대사가 재건했다.



화엄사 각황전과 서 오 층 석탑

각황전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서 있는 탑이 서 오 층 석탑이고, 각황전 앞에는 국보인 석등이 있다.  

오른쪽 건물인 원통전 앞에는 사자탑이 있는데, 위 사진에서는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화엄사 홍매화는 조선 숙종 때, 계파 선사가 장육전이 있던 자리에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 

일명 장육매라고 하며, 각황매, 각황전 삼존불을 표기하여 삼불목이라고도 부른다. 

홍매 불자는 향긋한 향기를 불보살 전에 올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참배객에게 보여주어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니 고색창연한 화엄사 가람 화엄 연화장 법계와 화엄 동천에 홍매화 향이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각황전 오른쪽과 나한전 왼쪽 사이에 우뚝 서 있는 홍매화 나무.

봄의 전령인 홍매화 개화를 알리는 행사는 3월 18일부터 시작된다.

살짝 아쉽지만,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때보다야 이런 호젓한 날이 더 좋다. 

3월 12일, 붉은 홍매화 꽃은 아직 다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붉은 꽃을 한 송이송이 피워내는 그 모습이 더 애틋하게 고와 보이니, 딱 내 취향이다.  



각항전 왼쪽 뒤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은 18개월 전 방문 했을 때는 한창 보수공사 중이었던 곳이다. 

지금은 불사리 공양탑이 자리한 효대에 수행공간인 적멸보궁 탑전을 완공했다. 



왼쪽 법고루 하단 돌기둥, 가운데 천왕문



불이문을 나서서 돌아보니, 지리산 자락과 화엄원 건축물이 두 눈에 가득 찬다. 

지리산 속 길고 깊은 곳에 있는 연기암에도 올라가질 못하고 떠나다 보니, 눈길이 자꾸만 연기암 오르는 산길로 향한다. 

우리는 화엄사 경내만 40분 정도 돌아보고 나와, 곡성 기차마을을 향해 출발한다.


https://brunch.co.kr/@6fe5671e95844e0/2


http://www.hwaeom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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