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코 광장 카페 '라베나'에서 여유
자동차가 없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150개가 넘는 수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400개 넘는 다리가 그 수로들 위로 육로를 잇는다. 그랜드 운하가 이 도시 가운데를 통과하고 다른 작은 운하들이 십자를 그리며 도시를 가로지른다.
곤돌라는 베네치아 대표 교통수단이었지만 이제 실질적인 기능은 바 포르토(수상버스)와 수상 택시가 한다. 21세기 곤돌라는 일정 구간을 순회하는 관광상품이다.
산마르코 광장 명품거리 가까이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지그리오 선착장으로 곤돌라가 쉴 새 없이 들고 난다. 우리도 이곳에서 잠시 차례를 기다려, 흔들리는 곤돌라에 조심스레 오른다. 베네치아의 낭만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일정이니, 기대감으로 살짝 설렌다.
현재 관광용으로 쓰이는 곤돌라의 개수는 200~ 300척 정도다. 교통수단이 곤돌라 밖에 없던 전근대 시절에는 1만여 척도 훌쩍 넘었다고 한다. 곤돌라는 베네치아 전통적인 이동수단으로 손으로 나무를 깎아 담금질하는 작업을 무한 반복하며 만들어진다. 전 공정이 사람 손으로 만들어지므로 웬만한 중형차 가격을 훌쩍 넘는 대단한 몸값을 자랑한다.
베네치아(베니스)에 곤돌라 탑승 정류장은 여러 곳에 있다. 베네치아는 도시 자체가 아담하다. 당연히 걸어서 이동하는 거리도 대부분 짧다.
곤돌라는 탑승도 예약 가능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승차권을 구매하고 탑승한다. 곤돌라 탑승 정원은 6명, 운항 시간은 30분 정도다. 2019년 3월 당시, 주간엔 80유로 야간엔 100유로를 받았다.
곤돌라는 한대 당 6명이 타나 1명이 타나 같은 금액을 받는다. 곤돌라가 한 번 출발하면 돌아오는 코스가 같기 때문이다. 혼자 자유여행 다니는 분들은 현지에서 동행자를 구해 탑승하면 경제적이다.
곤돌라는 수상 택시와 달리 좁은 수로 쪽을 돌아볼 때 이용한다.
모든 곤돌라는 검은색이고, 칸막이가 없다. '곤돌리에'라 불리는 뱃사공들은 모두 검은색 가로 줄이 있는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는다. 이날은 바람도 불고 해무도 낀 우중충한 날씨 탓으로 좀 추웠다. 곤돌리에 중에도 검은색 조끼나 점퍼를 덧입은 이들이 많았다.
곤돌라만 비싼 게 아니다. 곤돌리에들도 현지서 귀한 대접을 받는 고소득 전문직업인이다. 곤돌라 뱃사공은 베네치아에서 인기 직업 중 하나다. 단순히 힘을 많이 필요하고, 역사와 지형만 외우면 아무나 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관련 학교를 수료하고 적어도 4개 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며, 곤돌라 조종법 외 역사와 노래 등 가이드 역할까지 겸할 수 있을 정도로 베네치아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도 해야 한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 주소를 둔 사람만이 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하루 평균 150만 원을 벌어 들인다니, 곤돌리에가 되려는 사람들 경쟁도 치열하다. 어려운 면허 시험은 물론 국가에서 발행하는 영업 증도 필요하다. 그런데 이 영업허가는 단 407명 곤돌리에게만 주워진다. 면허증을 취득해도 TO가 나지 않는다면, 곤돌리에로 일할 수 없으니, 경쟁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30m 넘는 커다란 노를 저어, 탑승 인원 6명을 태운채 육중한 곤돌라를 움직이려면 고되고 힘들 법도 한데, 이들은 프로다움과 고소득자의 여유로움이 온몸에 흘러넘친다. 하루에 열 번 남짓 30분 코스의 노를 저어 150만 원이란 거금을 번다니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곤돌라를 타고 베네치아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좁은 수로를 따라가는 짧은 여정이 흥미진진하다. 영화나 명화에서처럼 곤돌리에가 이탈리아 가곡이라도 한곡 뽑아줬으면 하는 기대는 그냥 기대로 끝! 우리 곤돌리에는 말이 없다. 가이드 역은 포기한 사무적인 까도남으로 보인다.
허긴 좌우 앞뒤를 살피며, 두 팔로 노 저어가면서 우렁차게 가곡을 불어 제치는 모습을 현실에선 보기 쉽지 않을 듯하다.
계속 들고나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기에도 웬만한 체력으로 힘에 부칠 듯하나, 곤돌라끼리 가까이 스쳐갈 때면, 곤돌리에 자기들끼리 몇 마디씩 주고받기도 하며 유유자적 노를 젓는다.
다음에 혹 베네치아에서 다시 곤돌라를 타게 된다면, 그땐 엔터테이너 기질 흠뻑 지닌 목청 좋은 가이드를 만나게 되길!
베네치아 본섬을 관통하는 대운하로 나서면, 낭만적인 곤돌라보다 스피드 한 수상택시가 눈에 많이 띈다.
우리를 태운 곤돌라는 거대한 돔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을 가까이 지난다. 나무 기단 위 석호에 저런 거대한 성당이 견뎌 온 오랜 세월이 그냥 대단해 보인다.
저곳은 베네치아 '도르소두로 푼타 델라 도가나'인, 카날 그란데와 베네치아 석호 중 하나인 '바치노 디 산 마르코' 사이에 누워있는 좁은 손가락 모양 땅이다.
베네치아 곤돌라 투어는 좁은 수로를 지나 대운하를 돌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30분 이내의 적당한 여정으로 진행된다.
곤돌라 선착장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그리티 팰리스 호텔(Gritti Palace Hotel)이 보인다. 이 유서 깊은 호텔은 [노인과 바다]로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장기 체류하면서 작품을 집필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곤돌라 투어 후, 50여 분간 자유시간을 갖는다. 주주와 레드루는 산 마르코 광장에 있는 카페 '라베나'에서 이탈리아 전통 라테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누린다. 라베나 1, 2층을 오르내리며 사진도 찍고, 들고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주주와 레드루도 마치 현지인 인양 무심한 듯 편하게 관광객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카페 라베나는 '바그너의 카페'라고도 불린다. 독일 작곡가 바그너가 방문했던 카페이기도 하고, 그의 대표작 '트리스탄과 이졸데'(Wagner, Tristan und Isolde)를 완성한 장소가 바로 이 카페 라베나이기 때문이다. 여름엔 카페 앞 광장에서 작은 클래식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이날(3월 6일) 베네치아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하고 좀 쌀쌀했다.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 예보로 접이식 우산도 넣고 다녔던 하루다. 날씨만 좀 더 화창했다면, 카페'라베나' 앞 광장 노천카페에서 여유를 즐겼을 텐데. 이 날은 아무도 노천카페에서 여유를 즐기지 않는다.
수상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앞에 늘어서 있는 이동식 상점들을 둘러봤다. 카니발 가면, 공예품과 기념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같은 듯 각기 다른 가면들은 텅 빈 눈동자를 채워 줄 자신만의 눈동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무심히 스쳐 지나가고, 축제가 끝난 베네치아 노점은 한가하다. 오늘, 빈 눈동자 가면들은 긴 기다림과 간절한 바람을 저 혼자 삭히고 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운하(카날 그란테) 풍경은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 그러나 운하 수질은 일반 하수도만큼이나 오염되어있다니, 놀랍고 안타깝다. 대운하 쪽은 물 흐름이 빠르고 폭도 넓어 그나마 낫지만, 주택가로 흐르는 폭 좁은 운하의 수질은 하수도 수준이란다.
베네치아는 16세기부터 사용한 gatolo라는 전통 하수관을 통해 하수를 운하로 배출해왔고 현재까지도 그대로 쓰이고 있다.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유산이니, 현대적인 대규모 하수처리 시설을 만들기도 힘든 상황이다. 특히, 석호 내부로 갈수록 해수 순환이 느려서 수질은 더 안 좋다
대운하 곳곳마다 노란 띠가 둘러진 직육면체 수상버스 정류장이 말뚝에 고정된 채로 둥둥 떠있다. 본섬에서 무라노 섬, 부라노 섬 등 주변 다른 섬들로 이동할 때 현지인들은 물론 여행자들도 많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다.
민원인들이 많이 찾는 관공서 앞엔 보트를 정박할 수 있는 말뚝이 여러 개 박혀있다. 우리네 구청 주차장 같은 보트 주차장이다.
베네치아는 낭만적인 도시임에 틀림없지만, 나같이 땅에 발을 딛고 여기저기 마음 내키는 대로 걸어서 돌아다니는 사람에겐 신기하긴 해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발아래선 물결이 찰랑거리고, 눈 속엔 운하가 가득 들어차고, 맞은편 친구 집엘 가려해도 배를 타야 한다니 난 그냥 우리나라에서 살겠다.
게다가 최근엔 이상 기후로 해수면이 상승, 1층이 물에 잠기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베네치아 인들은 주택 1층을 아예 포기하고, 보트 주차장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베네치아는 원래 습지로 6세기경 훈족 습격을 피해 이곳에 정착하게 된 이탈리아 본토 사람들이 간척으로 건설한 도시다. 그 공법은 공학적으로 간척과는 다른 영구적 수상가옥 건설이다. 당시 베네치아 인들은 개펄 습지에 통나무를 촘촘히 깊이 박아 넣었다. 그 위에 나무로 된 기단을 얹고, 다시 돌을 얹어 건물을 지었다.
이곳은 지중해 동부에서 유럽으로 운반하는 상품 집산지로, 지중해 무역 중심지였다. 특히 유리, 양복지, 비단 제품, 금, 철, 청동 등 가공 기술이 유명하다. 697년 독자적인 공화제 통치 시작, 11세기 십자군 원정 기지가 되기도 한 곳이다.
공화국 베네치아는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간 분쟁을 개신교 쪽으로 유리하게 중재, 1606년 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한다. 179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침략으로 1805년 나풀레옹 치하의 이탈리아 왕국에 귀속됐다. 1815년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기 시작, 1866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된다.
베네치아 운하인 카날 그란테(Canal Grande)는 오랫동안 수상 교통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대중교통으로 바포레토(수상버스)와 수상택시가 운행된다. 관광객들은 수상 택시와 곤돌라를 타고 카날 그란테를 오가며, 운하도시 베네치아의 아름다움과 낭만에 취하곤 한다.
대운하는 산 마르코에서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 기차역 인근 석호로 이어진다. 베네치아 석호(Venetian Lagoon)는 아드리아 해 북부 석호 중 하나로 베네토 주 해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