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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Aug 29. 2023

레즈의 '동성결혼' 소식

한 친척 아이가 있었다.

털털했고, 건강했고, 영리했고, 배려심도 좋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해, 성장하면서 점점 더 두각을 드러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중 1 과정부터 다시 시작했지만 수학과 과학에서는 곧바로 우수한 성적을 드러냈다.

몇 달 만에 영어도 현지인들과 어울릴 정도로 잘하게 됐다고 들었다.

미국 중산층 가정집에서 기숙을 했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집 아이들을 어찌나 잘 돌봐주었던지 집주인인 젊은 부부는 이 아이를 무척 신뢰하고 아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어서, 고등학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다녔지만, 우수한 성적은 여전했다.

가문의 영광인 수재였다.

고교 졸업 후, 다시 미국으로 서둘러 떠났다. 

명문 대학 4곳에서 입학허가를 받았으니, 골라서 갔다.

이후론 만난 적이 없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미국에서도 내놓으라 하는 G사에 취직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엔 귀국을 해서 반년 정도 재택근무를 하다가 돌아가기도 했다.

이때 부모님께 자동차를 한 대 사 드렸다고 들었다.

세월은 흘렀다.

아이는 어느덧 건강하고 매력적인 숙녀가 되어 있었다.

추석이나 구정 때 친척들을 만나면 이 숙녀의 우수함이 종종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락 없이 지낸 지 오래됐지만, 내심 자랑스러웠다.


이틀 전, 이 멋진 숙녀의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미국 현지에서 이미 결혼을 했다고.

동성 간 결혼이어서 따로 연락을 못했단다.

처음엔 많이 놀랐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바로잡았다.

이 건강한 숙녀는 레즈로서 성 정체성 받아들인 것이었다.

2013년 '여성의 전화' 단체에서 진행되었던 강의 내용이 자연스레 소환됐다.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한 레즈 여성의 강의였다.

뛰어난 미모와 자존감이 드러나는 언어, 개성적인 복장이 단번에 호감을 일으켰다.

알고 보니 이쪽 분야에서는 유명한 강사였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당시엔 호기심의 한계를 크게 넘진 못했다.

그래도 이후엔 게이나 레즈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나름 다 자기의 합리화가 필요한 인생살이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꽉 막혔던 생각도 많이 유연해졌다.

이런 나도 놀랐으니, 남편 '묵'은 더 크게 놀랐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곧 생각을 정리하고 '진심으로 축하할 일'이라고 같은 의견을 모았다.

아직 우리 아들딸에겐 알리질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기회에 이야기할 생각이다.

60대인 나보다 생각이 훨씬 더 유연한 30대들이니, 크게 놀라지도 않겠지만 일부로 카톡이나 문자로 수다를 떨고 싶진 않았다.


레즈비언, 레즈, 퀴어, 부치 모두 여성 동성애자를 이르는 말이다.

예전엔 입 밖으로 드러내기도 쉽지 않았던 단어들이었지만 최근엔 성소수자들의 인격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게이(gay)'라는 단어가 동성애자 자체를 일컫기 때문에 여자가 '나 게이야.'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레즈비언(lesbian)이란 단어가 고대 여성의 동성애가 성행했다는 에게해의 레스보스 섬과 관련지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 걸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유구한 세월 동안 성 정체성으로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상상이 된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 성향은 태어날 때부터 지닌다고 하니, 스스로도 어쩔 수 없이 떨쳐내지 못하는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065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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