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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Oct 27. 2023

'청풍 레이크호텔' - 자드락 호수길과 수경분수 쇼

세상을 두루 품어주는 노을빛은 어둠까지 품고 가려는 긴 인내심을 보였다

제천 청풍리조트 가는 길, 10월 25일 2시 30분경, 청풍 호수 위로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내린다.

두 눈이 투명해지고, 무겁던 머릿속이 가볍고 맑아진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커다란 가을을 작은 가슴으로  다 품는다.

청풍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청풍 레이크호텔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들어서면 레이크 호텔이 6층 건물로 보이지만, 호숫가 쪽으로 내려서면 8층 건물이다.

우리는 3층 로비에서 안내를 받아, 하루 전에 예약했던 4층 스탠더드 온돌룸으로 들어서 가벼운 여장을 풀었다. 호숫가 대신 산과 단풍나무가 바라다 보이는 작은방이 예뻤다.

2시간 30여 분을 달려왔으니 가벼운 피로를 털어내고 일어나, 자드락 호수 길로 나섰다.



일단 레이크 호텔을 끼고 한 바퀴 쭉 걸었다.

청풍 호수가 긴 태양빛을 품고 반겨주었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2018년 2월, 겨울 추위가 혹독하던 어떤 아침, '묵'과 함께 걷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호수는 한 폭 그림처럼 조용했고,

산책길 위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도 지치지 않고, 우리를 쭉 따라왔다.



오늘은 좀 더 먼 곳까지 걷기로 했다.

갈바람과 가을빛이 던지는 부드러운 손길을 마다할 수 없었다.  

만남의 광장 쪽으로 계속 걸었다.


맞은편 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자드락길 펜션'

나무 계단을 내려가서 왼쪽으로 걸었다.

레이크 호텔과 반대 방향이다.

숲에는 가을빛이 가득했고, 호숫가로는 저무는 가을 햇살이 모든 공간을 다 품고 있었다.

그 온화한 빛은 널리 퍼져 나갔다.

내 마음속을 돌아나가, 물결 위로 흘렀다.

집라인을 타고 나르더니, 가을 산 너머 너머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가을빛은 작은 들 꽃의 예쁜 얼굴도 비껴가지 않았다.



'자드락길 펜션'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풍 호수는 시간조차 멈춰 선 채 긴 노을을 그리고 있었다.

사진 왼쪽으론 집라인 출발대가 보였고 오른쪽으론 레이크 호텔이 보였다.





펜션 앞뜰을 가득 채운 코스모스 꽃과 노을빛이 이렇게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건,

호수가 품은 노을빛과 내 눈에 담긴 지는 햇살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짧지만 강렬한 순간을 서로 잇고 있었다.



'자드락길 펜션'을 둘러보고 산책을 이어갔다.

주위가 너무 조용했다.

사람 모습은 보이질 않았지만, 가을꽃들이 우릴 반겨 주었다.

펜션을 내려와 산책로를 따라 더 걸었다.

사람의 발자취가 적은 곳이다 보니, 곤충들이 우리 인기척을 썩 좋아하지 않는 티를 낸다.

별안간 후드득 거리며 우리를 놀래기도 하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어지럽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크~, 조용히 살고 있던 너희도 우릴 보고 놀래기는 마찬가지였구나.'


산책길로 내려갈수록 길은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만남의 광장' 표지도 보일질 않았고, 길도 점점 좁고 울퉁불퉁 거리는 샛길로 이어져 있었다.

주위 숲을 덮고 있던 풀들도 억센 넝쿨 외래종이어서 척박한 환경이 그대로 드러났다.

바지와 신발에도 도깨비 풀 씨앗이 여기저기 점점 더 많이 붙기 시작했다.

나는 살짝 가려움증을 느꼈고, 해는 점점 서산으로 기울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5시가 되어갔다.  

계속 더 내려가겠다는 '묵'을 간신히 설득시켜 돌아 나오는 길,

그런데 호수 한가운데서 수경분수 쇼가 열리기 시작했다.

제법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행운이자 커다란 기쁨이었다.



조용하던 호숫가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던 수경분수 쇼는 다이내믹하고 멋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nLvXEr8

2023년 10월 25일 오후 5시,  

내륙의 바다 청풍호수 위에서 펼쳐진 수경분수 쇼.

어떤 이는 호숫가 산책을 즐기고  

어떤 이는 익스트림스포츠, 집라인을 즐기고,  

어떤 이는 레이크 호텔 창가에서 이 모든 풍경을 눈 속에 담는다.



5시 15분경, 드디어 다이내믹한 수경분수 쇼가 막을 내렸다.

호수와 석양을 한 방향으로 바라보다 보니, 어둠이 가득 내린 듯 보였지만,

석양을 왼쪽에 두고 숲길을 바라보니 아직 아름다운 가을빛을 가득 품고 있었다.

한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을빛과 가을빛이 오묘한 조화를 이룬 호숫가 풍경에 풍덩 빠졌다 나온 기분이 묘했다.

1시간 30분 산책길 풍경은 어쩜 단조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가을빛은 하늘 아래 모든 곳에서 그 찬란한 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화를 모두 그렸다.

찬란한 가을빛은 지상에 머물렀고,

세상을 두루두루 품어주는 노을빛은 어둠까지 조용히 품고 가려는 긴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오늘, 노을빛은 슬프지 않았다.

노을빛은 어둠을 품기 시작했다.

다음날 여명까지 모두 품을 수 있을 만큼 그 빛은 넓고 편안했고 침착했다.

우리는 노을빛처럼 곱게 늙어가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3층에서 레이크 한식으로 즐겼다.

해물순두부와 약선산야초 비빔밥을 먹고 나니, 속이 든든했다.



저녁식사 후, 계산을 하고 있는 '묵' /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1층에서 올려다본 레이크 호텔 엘리베이터 3대를 마주하고 찰칵!


온돌방은 저녁 7시 30분부터 난방이 시작됐다.

밤새 내내 따뜻한 방바닥 위에 요를 2장 펴 놓고, 나름 침대처럼 편안하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이런 편안함을 누리기 위해 별안간 결심하고, 2시가 30분을 그냥 달려온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내일 아침에도 자드락 길을 산책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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