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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Feb 12. 2024

설날 단상을 잇다.

차례, 세배, 꾸미의 시간, 어머니 댁 방문 등 바빴던 시간도 흘러가고

까치설날

설날 하루 전, 꾸미 모녀가 왔다.

나는 차례상 준비로 바빴고, 꾸미는 할아버지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큰댁 부부는 친손주 2명을 데리고 지난 12월 말 뉴질랜드로 떠났다. 아들 며느리가 맞벌이를 하니, 대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들 3개월짜리 어학연수 보호자로 함께 간 것이다.

그래서 '설날 차례 상차림'이라는 과제가 내게 맡겨졌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인 설날 차례상 준비였지만, 셋째인 우리 부부가 주관하긴 처음이어서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차례상 목록을 만들어 세심하게 준비하느라 했지만, 막상 까치설날과 설날 당일 오전엔 정신없이 바빴다.

내가 남편 조상님을 마주한 지도 38년째, 이제 숨 가빴던 설날 연휴도  끝나간다.

암튼 남들 다 준비하는 차례상 한 번 차린 것이 뭐 그리 대단하랴 싶지만, 마음 한 뼘이 쓱 성장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까치설날 저녁은 정신없는 할미(나)를 위해 간단하게 가족 외식을 했다.

천안 맛집 '광화문집'에서 돼지 왕갈비(2만 2천 원/300g)와 양념구이(1만 9천 원/250g)를 각 600g, 500g 시켜 구워 먹었다. 물냉면(5천 원/1인)과 공깃밥+된장찌개(3천/1인)도 깔끔한 맛이 좋았다. 잠시 바쁜 마음을 접어두고 몸이라도 편한 시간을 가졌다.



설날

설날 아침, 친척들이 도착하기 전에 차례상을 차리기 시작했으나, 내 마음은 정신없이 바빴다. 제기도 병풍도 없는 상태였지만, 정성을 가득 담아 올렸다.

그러나 역시 실수가 있었다. 나중에 모두 돌아간 뒤에 비로소 냉동고 보관 중이던 부세를 꺼내서 상에 올리는 걸 아예 잊고 있었으니...

아쉬움과 후회가 오갔으나, 어쩌겠는가!

차례가 끝나기 전에 친척들 먹일 떡국 끓이고, 갈비 굽고 하다 보니 나는 사진 한 장 찍을 여유도 없었다.

한동안 차례상을 주관해서 차려온 어머니와 그 뒤 막중한 책임을 이어받은 형님의 노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 한 살 준 나이로 - 올해도 94세이시지만 거동이 편치 않으시니, 차례에 참석하지 못한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설날이나 추석 차례가 끝나면 각자들 시간을 고려해서 자유롭게 찾아뵙는다. 우리는 오후에 꾸미 아빠가 오기로 되어 있어서 설날 다음 날 찾아뵙기로 했다.



차례를 지내고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친척들과 덕담과 세배와 세뱃돈이 오갔다.

비로소 허리 펴고 제대로 잠시 앉아본 편안한 시간이었다. 나는 꾸미의 한복 입은 모습을 눈 속에 가득 담아 두었다.

어머니를 찾아뵙고 서울로 올라가겠다며 시동생 부부, 큰댁 큰아들 부부와 초등생 아들, 작은 아들 부부가 우르르 엘리베이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두 바쁘다 하니, 이별은 간단하고 쿨하게 했다.  

우리 아들도 약속이 있다며 자기 집으로 떠났고. 꾸미 모녀와 할아버지는 전지에 그림을 그리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MDVnuzHnS8


사위가 도착하니, 꾸미는 아빠 왔다고 좋아했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런 날은 삼시 세끼가 삼시 두 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위는 백년손님이자 편한 가족이기도 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떡국을 끓이고, 갈비를 구워냈다. 사위가 까탈스럽지 않은 입맛으로 이것저것 맛있게 먹어주니 좋았다.  

다시 세배와 세뱃돈, 덕담까지 주고받으며, 사돈 댁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꾸미 가족은 내일 다시 친가를 방문할 예정이란다.  


꾸미와 꾸미 맘의 놀이는 참 다양했다.

할미는 '김밥 말이' 놀이인 줄 알았는데, 꾸미 맘이 '속싸개 한 아기 꾸미' 놀이라고 해서 뒷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폰카를 급히 켰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CfFDZzxAk


꾸미네 가족도 늦은 오후에 떠났다.

오늘은 모두 배 부른 날, 사위와 딸도 저녁식사를 하지 않고 차에 올랐다.

하긴 우리 부부도 세끼식사를 다 챙겨 먹기 부담스럽던 날이었다.  

오후 8시가 지나, 곰국에 밥을 두 숟가락만 말아서 물김치로 한 끼 식사를 때우긴 했지만.


설날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식사를 가볍게 마치고 어머니 댁으로 출발했다.

챙겨간 전과 곰국, 한과, 과일 등을 냉장고에 채워드리고,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했다.

집안에만 계시니 답답하실 것 같아서 시내를 드라이브하면서 문 연 맛집을 찾아 헤매긴 했지만, 의외로 피곤해하기보단 즐거워하셨다.

청력과 치아는 노화가 살짝 심하시나, 눈은 오히려 나보다 밝으셔서 차창밖 상가 표지판을 하나하나 다 읽으셨다.

노화가 천천히 진행되는 좋은 DNA를 지니고 계신 것이 분명했다.

90대 기억력도 어떤 면에서 60대인 나보다 더 또렷하고, 심지어 바느질과 손미싱으로 옷의 디자인을 고쳐 입기도 하시니 내심 놀라울 뿐이다. 저런 좋은 유전자가 '묵'과 우리 아들 딸 그리고 손녀 꾸미에게까지 조금씩이라고 전해졌길 다시 바랬다.

메뉴의 호불호도 확실하셨다.

삼계탕, 장어구이는 싫고, 설렁탕이나 소고기 구이는 조금 먹어보겠다고 하셨다.

94세의 어르신 모습이 이 정도면 정정하신 것 아닌가!

그래서 찾아간 곳이 '힘찬 유통'과 '힘찬 풍천장어' 집이었다. 장어구이로 유명한 곳이지만, 안성 한우 등심구이와 설렁탕 맛집이기도 했다.

우리는 '힘찬 유통'에서 등심 한 팩(6만 3천5백5십 원)을 먼저 구입한 후, 힘찬 풍천창어 홀에서 식사를 했다. 추가로 상차림비(3천/1인)가 있고, 설렁탕(8천 원/1인)을 함께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다. 미식가셨던 어머니는 등심구이가 맛있다고 하셨으나, 씹어서 즙만 삼키고 고기는 다시 뱉어내셨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설렁탕이 맛있다며 잘 드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시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 늦었지만 세배를 올렸다.

'묵'이 두둑한 - 내 눈엔 그리 보였지만, 상관하지 않으니 그 금액을 알 순 없다 - 세뱃돈을 쥐어들였다.

자꾸 낮잠이라도 자고 가라 하시지만, 우리 부부도 살짝 피곤한 상태여서 그냥 집에 가서 쉬겠다고 했다.

말은 그러라고 하시지만, 이별할 때가 늘 문제다.

복도식 아파트 1층에 살고 계신데, 나오지 마시라고 해도 밖으로 걸어 나 슬픈 얼굴과 글썽이는 눈망울을 계속 보내기 때문이다. 그런 얼굴을 마주하는 건 서로에게 모두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복도 끝까지 나오지 않으시면 정말 좋겠다.

훌쩍 떠나면 되는데, 애잔한 표정으로 쉬지 않고 흔드는 손을 뒤로 하고 나오려면 더 힘들지만, 어쩌겠나!


오늘에서야 몸과 마음이 좀 여유로웠다.

딸과 아들, 큰집 아들이 보내준 설날 사진을 모아 정리하고, 내가 찍은 세젤귀 꾸미의 동영상을 조금 수정하는 작업도 했다. 영상을 수정하고, 유튜브에 짤막한 꾸미 영상을 2개 올렸다. 그저 나 혼자 만족하면서...

낮에는 친구들과 단톡에서 안부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길게 이어져 오는 편한 사이니 카톡으로 만나도 항상 반갑다.

아직 피곤이 싹 가시진 않았지만, 엉성한 대로 설날 단상을 스케치해 보았다.

우리 꾸미 사진을 올리다 보면 내 마음은 다시 업된다.

세젤귀 꾸미는 우리 가족에게 힘이 되는 희망의 아이콘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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