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후인 2022년 3월, 수술 예후를 살펴보기 위해 채혈을 하고 일주일 후 외래진료를 받았다.
그 후 2년간 3월이면, 한림대 성심병원 내분비내과 주치의 허지혜 교수를 만나왔다.
그런데 올 1월, 허 교수는 해외 연수 중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나는 지난 1월 내내 코로나, 감기 등으로 몸 상태가 좋질 않아 혈액검사를 미리 받아보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기에 유선으로 예약 일정을 한 달 앞 당겨 2월 15일로 변경하고, 채혈검사는 2월 7일로 예약해 두었다.
2월 7일 평촌 한림대 병원 1층 로비
설날을 3일 앞둔 지난 7일, 아침 식사를 거르고 채혈 검사하러 병원을 찾았다.
남편 '묵'이 동행해 주어서 마음이 편하고 든든했다.
노련한 간호사는 주삿바늘을 팔 안쪽 한 곳에 찌르지만, 가운데 손가락 크기의 작은 병 6 곳에 혈액을 나누어서 담곤 했다. 혈액만으로도 많은 결과 수치를 알 수 있으니 간편하면서도 편한 방법이다.
2층에서 채혈 후 진료비 계산까지 마치고 내려오면서 병원 1층 로비를 내려다보니, 2년 5개월 전 부신 절제 수술을 마주해야 했던 괴롭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무튼 수술 결과는 좋았고, 오른쪽 부신만으로도 정상적인 혈압을 유지하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점심시간이 되어가지만 빈속인데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그렇다고 밥을 잘 못 먹는 것도 아니다. 있게 잘 먹고 있지만 먹는 양이 예전보다 꽤 줄긴 했다.
보통리 저수지에서 멀지 않은 사찰 '보문사' 봉안당에는 우리 엄니의 유골 항아리가 모셔져 있다.
올 설날 시댁 차례상을 내가 준비하기로 되어있어서인지 이 날따라 부모님 생각이 더 났다.
오빠와 올케언니가 항상 정성껏 차례상을 준비해 온 긴 세월이 '커다란 정성의 의미'로 다시 전해졌다.
봉안당에 자주 들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떨쳐 버리고, 보문사 지장전으로 내려갔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주불(主佛)로 봉안하는 곳이라고 했다.
지장보살은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수라·하늘·인간 세상의 여섯 가지 세상)의 중생을 구원하는 보살이시라니, 불교신자였던 엄마가 이곳에 쉬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보문사 경내 풍경 / 지장전과 봉안당 입구
보통리 저수지 근처에는 엄마의 유골 항아리도 보관되어 있지만, 절친 SH 집도 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은 사찰 용주사와 화성 융건릉도 가까이 있어 이래저래 내겐 자잘한 추억이 많이 담긴 곳이다.
오늘은 SH를 만나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며 살짝 설레기도 했지만, 친구 남편은 부재중이어서 셋이서 식사를 하며 담소를 즐겼다.
2016년 4월 보통리 저수지 산책길 봄 풍경 / '오병이어 왕 코다리' 맛집에서 바라본 2024년 2월 7일 보통리 저수지 풍경
지금은 보통리 저수지를 따라 맛 집들이 가득 들어서 있지만, 6~7년 전만 해도 조용하고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다. 저수지 길을 따라 걷노라면 맛집도 서너 곳, 카페도 한두 곳이 눈에 들어왔던 한적한 풍경이었다. 오늘은 '오병이어 왕 코다리' 맛집에서 절친 SH와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하니, 이도 즐거웠다.
'파스텔라' 아동복 쇼핑몰 / '오병이어 왕코다리' 실내 / 왕코다리조림(中) + 공깃밥 포함 5만 2천 원, 무청시래기 추가 5천 원
SH의 큰 딸은 결혼해서 현재 울산에서 살고 있는데, 국가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파스텔라'라는 아동복 쇼핑몰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격하게 축하하면서 핸드폰으로 쇼핑몰 사진을 한 장 찍어두었다. 8월 우리 손녀 꾸미 생일엔 이곳에서 옷을 한 번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돌아오는 4월엔 용주사 근처 SH 집에서 삼겹살 파티를 하자고 약속하며 헤어졌다.
'묵'은 친구에게 '오병이어 왕코다리'점에서 구입한 현미쌀 과자를 전했고, 친구는 새로 짰다는 귀한 들기름 한 병을 갖고 나와 내 손에 쥐여주었다.
매번 말 인사로 끝내곤 했던 수많은 약속들이 우리를 향해 허망한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뭐가 그리들 바빴던지!' 세월은 우리 의지 밖에서 오갔고, 시간은 똑같은 속도로 계속 덧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천안 도착. 집으로 가기 전에 뚜쥬루제과점에 들려 일주일 간 먹을 빵을 샀다.
우리는 2층 카페로 올라가 따듯한 우유와 찬 딸기라테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섰다.
뜌주루 제과점 2층 카페 / 우유와 딸기라테 / 2층서 내려다본 1층 매장
2월 15일(목)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런 날은 외출하기 싫다. 집에 콕하면서 따뜻한 차와 좋아하는 음악을 들고 흥얼거리며 마냥 한가롭고 싶었다.
13시 35분 한림대 내분비내과 정한나 교수 진료 예약이 되어있으니, 마지못해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서니 창가에서 바라보던 겨울비가 생각보다 많이 드셌다.
북풍을 정면으로 받아내지 못하던 빗줄기가 이리저리 흩어져 허공을 헤집어댔다.
열정적인 춤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사납게 흔들어 댔다.
내 두 손으로 받쳐 든 검은 우산까지 이쪽저쪽으로 마구 잡아당겨대니, 우산 살이 휠 정도였다.
픽사 베이 무료 이미지 / 금정역과 군포역 사이, 비 내리는 풍경
정 교수는 부신 절제 예후가 좋다면서 내년 진료는 예약할 필요 없다고 했다.
혹, 주치의 허지혜 교수를 만나고 싶으면 '예약하셔도 된다'라고 웃으며 여운을 남겼다. 나 역시 허 교수를 만나지 못하고 이번이 일단 마지막 진료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살짝 섭섭했다.
혈액검사는 많은 결과 지표를 보여준다.
혈당, 지질, 간 기능, 신장 기능까지 정상치를 살짝 벗어난 수치도 있었지만 '이 정도는 정상이'라는 말씀은, 아마도 내 나이까지 고려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암튼 대부분 안정된 수치를 보였고, 특히 정상치 혈압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별안간 혈압 수치가 높아지지 않는 이상 병원에 더 이상 올 필요가 없다니, 날씨는 사나웠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내분비내과 허지혜교수, 수술을 집도한 유방 내분비외과 서용준 교수를 비롯, 정맥채혈 담당의와 간호사분들에게 진한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술받길 잘했다. "Bye, 내 왼쪽 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