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알도스테론증으로 나타났던 이상 증상들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왔다
나는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 6층 입원실에서 초조하게 수술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2시, 드디어 수술실로 이동했다.
내 왼쪽 부신이 잘려 나간 사이 나는 의식과 감각을 잃은 마취 상태였으니, 내 존재조차 허상에 불과했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6시 10분경 다시 입원실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고 알도스테론 환자가 아니었다.
작년 추석 연휴는 수술 후, 몸을 추스르는 회복기였다.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며 "빨리 건강해져야지." 다짐하며 보낸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남편 '묵'의 지극한 간호와 알뜰살뜰 챙겨준 삼시 세끼에 대해 지금까지 고마운 마음에 변함이 없다. '묵'에게도 나에게도 특별한 추석 연휴였다.
그날 이후, 딱 1년이 지났다.
고 알도스테론증으로 나타났던 이상 증상들은 대부분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혈압이 정상수치로 돌아온 것이 제일 만족스럽다.
매일 측정했던 혈압도 이제는 가끔 생각날 때만 측정해 본다.
온몸이 여기저기 저리고 쑤시던 증상도 없어졌다.
다리와 손가락이 많이 아파 힘들었던 상황도 부신 절제 수술 후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싹 사라졌으니, 내심 놀랍기도 했다.
특히, 내 눈을 들여다보면 수술 전 황색이던 눈동자 흰자위가 이제는 항상 맑은 흰색을 띠고 있는 것도 좋아진 증상 중 하나다.
손등에 생긴 검버섯 색깔도 수술 전보다 많이 옅어졌다.
조금만 피곤해도 입술이 잘 부르트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증상도 거의 사라졌다.
물론 검버섯이나 입술 상태가 꼭 호르몬 균형과 상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술 후 증상이 개선된 것은 확실하다.
한 개 남아있는 오른쪽 부신이 호르몬 균형을 이루려면 힘들 법도 한데,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이 고맙고 기특하다.
한림대 성심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서용준 교수와 내분비내과 허지혜 교수도 수술 후 혈압은 곧 좋아질 거라 말했다. 특히, 서 교수는 '다리와 손가락 통증도 수술 후, 전해질이 균형을 이루면 어느 정도 나아질 것'이라는 언질을 주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느낄 정도로 상황이 금세 좋아지리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 온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탓이기도 했으리라!
고 알도스테론증 확진 검사 과정이 까다롭고 힘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고통스럽던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수술받길 잘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한동안 이런 괜찮은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앞으론 신나는 일만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허리 디스크 통증이 자주 들고 나서 힘들다.
허리가 아프면, 온몸의 균형이 깨진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받고, 소염진통제 약을 복용하며 푹 쉬어 주곤 하지만, 한 번 망가진 뼈에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없다.
잘 관리해 나가다 심해지면 수술을 하던지 주사치료를 지속할 수도 있다고 하니, 바른 자세를 지키지 못하고 바삐 달려온 세월이 안타깝기만 하다.
살아온 날들이 길어질수록 이 세상 어떤 부귀영화도 건강만 못하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올 추석은 9월 10일(토). 작년 추석이 9월 21일(화)이었으니 열하루나 빨랐지만 절기는 어김없이 찾아와, 아침저녁으론 제법 가을다운 날씨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들고나던 허리 통증을 다 이겨내지 못한 채 양평 큰댁과 안양 오빠 댁을 들렸다.
자주 오가지 못한 관계를 코로나 탓으로 돌리며, 오랜만에 방문한 큰댁은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1년 반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제일 불편하니, 자동차 안에서는 허리에 쿠션을 대고 거의 눕다시피 앉아 달렸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지나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돌고 돌아가자니, '왜 이런 불편한 곳에서 사실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외진 곳이다 싶었지만, 막상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여러 채의 전원주택이 조화롭게 이웃하고 있었다.
특히, 맞은편으로 바라보이는 양자산의 풍광이 퍽 포근하게 느껴졌다. 병풍처럼 아름답게 둘러쳐 있는 양자산의 풍광을 마주하면서 전원주택의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황토 흙벽돌로 지은 집이다 보니 거실 천정은 통나무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심신이 절로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차례를 마치고 나서,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즐겼다. 여자들은 식탁에 따로 모여 앉아 그동안 오가지 못하고 밀린 이야기들을 나눴다.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아름다운 양자산을 마주하며 정원을 거닐다 보니 좀 더 멀리 나서고 싶었다.
나는 천천히 걷는 것을 평소에도 즐기는 편이니, 양평 성덕리 비탈길도 마다하지 않고 산책을 나섰다. 동서 3명이 함께 10여 분 거리 떨어진 이웃집까지 돌아서서 오르며 다녀오는 코스를 택했다.
조금 떨어진 윗집에 산다는 갈색 멍멍이 한 마리가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따라다니는 것도 신기했다. 처음 보는 우리를 마치 자기 주인인 양 꼬리까지 흔들며 따라나서, 앞서기도 하고 뒤따라 오기도 한다.
우리가 벤치에 앉아 환담을 나누자, 갈색 멍멍이도 바로 우리 앞에 느긋하게 앉아 귀를 쫑긋 세운다.
길지 않은 만남의 시간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짙게 드리워진 회색 구름도 바삐 어디론가로 서둘러 떠난다.
오후 햇살이 크고 무거워 보이는 구름 사이로 잠시 들고나기도 하는 도로를 따라 달렸다.
안양에 도착, 오빠 댁에 들려 맛있게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니 7시가 되어간다.
딸 부부와 세젤예 손녀 꾸미는 연휴 마지막 날 우리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니, 차라리 잘됐다.
이틀간 편안한 마음과 달리 지친 몸을 살살 달래 가며 추석 연휴를 보냈다.
냉장고에 준비해 둔 재료를 꺼내, 세젤예 꾸미 가족을 생각하며 간장게장과 잡채를 따로 더 만들었다.
허리가 편치 않으니 잡채 거리를 11일 날 미리 볶아서 준비해 두고, 당면은 12일 날 삶아서 버무려냈지만 폰 카메라를 들여다보니 완성된 잡채 사진은 없더라.
음식을 만들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지금 내겐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느새 2가지 이상의 일을 하려면 집중력이 팍 떨어지는 나이가 됐다.
게장 간장은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해서 넣고 정성껏 조려 만들었다.
온 가족 점심 식사 주메뉴로는 LA 갈비를 구워 먹었고, 간장 게장은 반을 옮겨 담아 꾸미네 집으로 싸서 보냈다. 오로지 꾸미 맘을 위해 만든 게장이었다.
어릴 때부터 딸은 간장게장을 유난히 좋아했다. 묵은 게장이 있으면 즐겨 먹는 편이나, 아들은 먹는 과정이 귀찮아서인지 게를 잘 만지려 들질 않았다.
꾸미 맘이 '게장이 맛있다'라고 보내온 카톡을 보니, 부산했던 과정과 불편했던 허리 통증까지 쓱 사라지는 듯했다.
추석 연휴 내내 보름달은 검은 구름 뚫고 그 신비로운 자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특별히 아쉬울 건 없다. 한가위야 해마다 다시 찾아올 테고, 눈으로 볼 순 없어도 보름달의 기운이 우리 집으로 내려와 두루두루 편안한 한가위를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예년에 마주했던 보름달의 풍성했던 기억을 품고 여유롭게 한가위 연휴를 보냈다.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본 병원'이다.
아직 불편한 허리를 곧게 세우고 들어서니, 예약을 한 상태였지만 3층 진료실엔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스스로 혈압을 측정하고 나서, 먼저 4층으로 올라가 도수치료와 물리치료부터 받고 내려와 담당 의사를 만났다.
이렇듯 자꾸 허리 통증이 들고나면, 결국 CT 촬영을 하고 판독 결과에 맞는 약물 주사 치료든 수술이든 결정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 알고 있던 상황이지만,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 통증도 그럭저럭 넘어가고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긴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근심일랑 딱 멈추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추스른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최악의 상황을 미리 걱정하며 살 필욘 없다.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잘 관리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