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는 만 공 선사의 항일 정신이 깃든 백제시대 고찰
수덕사는 예천 덕숭산 남쪽 자락에 있는 고찰로 백제시대 6세기경 창건된 1500여 년 역사를 지닌 곳이다.
오래된 역사만큼 수덕사 창건 설화도 흥미롭다.
한 청년이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졌다.
낭자는 결혼 조건으로 절을 지어달라고 했다.
절을 짓고 난 후에서야 청년은 설레는 마음으로 낭자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낭자는 그대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청년은 얼마나 놀랐고 서글펐을까', 이런 생각이 든 건 나 같은 중생들이겠지만.
그 낭자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다고 전해진다.
수덕사 선문에 들기도 전부터 꽃무릇(석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선문을 지나자 발길 가는 곳마다, 눈길 닿는 곳마다 붉은 석산이 장관을 이룬다.
수덕사에서 걷는 꽃길은 더 특별하다.
축복처럼 내리는 햇살 사이로 꽃길만 걷는 산사라니!
꽃길만 있더냐!
석산 무리가 어울려 장관을 이룬 꽃밭도 있다.
꽃무릇들이 나지막한 언덕을 이룬 곳에도 가을볕은 어김없이 내리고.
석산은 구근식물이다.
석산(石蒜)은 돌+마늘이라는 뜻이다.
비늘줄기의 외형이 마늘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석산은 '꽃무릇'이란 예쁜 이름으로도 불린다.
석산은 외떡잎식물 백합목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사찰에서 많이 길렀다고 하며, 석산으로부터 얻은 녹말로 풀을 쑤어 탱화를 그리는 데 활용했다고 전한다. 한방에서 약재로 활용한다고 하나, 독성이 있어 모르고 섭취하였을 경우 오심과 설사가 발생하며 심하면 중추신경의 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죽음과 관련된 많은 이명(異名)이 존재하는데, 지역에 따라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禮花), 유령화(幽靈花), 지옥화(地獄花) 등으로도 불린다. 일본에서는 주로 피안화(彼岸花)라고 불린다. - 자료 출처 두산백과
선문에서 일주문까지 걸으면서 만나는 풍경
수덕사 일주문
석산(꽃무릇) 꽃길 걷기
안에는 두 명의 금강 장사가 떡 버티고 서 있다.
'나라연금강'은 천상의 역사로, 그 힘이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니, 동양의 슈퍼맨이 여기 계셨네!
'밀적금강'은 금강의 무기로 붓다를 경호하는 야차 신의 우두머리이다.
금강문을 나서면, 곧이어 닿게 되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천왕문이다.
남장 증장천왕은 수미산의 남방을 수호한다.
항상 *염부제 중생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증장시켜 주는 천왕이라는데, 이분 발에 밟혀있는 자는 중생이 아닌 악귀란다. '아귀도 고통을 느끼겠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아귀는 뉘우치고 깨닫지 못하는 운명을 지닌 것일까?'
*염부제: 사주(四洲)의 하나. 수미산 남쪽에 있다는 대륙으로, 인간들이 사는 곳이며, 여러 부처가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덕승 총림 - 황하정루
수덕사 칠 층 석탑
조인 정사 앞에 세워진 칠 층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든 탑이다.
지대석 위에 기단 면석 외부로 우주를 표현하고 있다.
면석에는 두께 10㎝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둘려져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옥신은 없는데, 그 대신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옥개석을 받치도록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만공탑은 만 공 선사를 추모하기 위해 제자들이 세운 탑으로, 보름달처럼 둥근 조형물인 구체(球體)를 올려놓았다고 한다. 수덕사 경내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어, 우리는 들리지 않고, 곧바로 수덕사 경내를 향해 올라갔다. 대웅전까지 오르는 데도 가파른 계단이 높아, 숨이 찼을 정도였다.
대웅전으로 오르기 전, 칠 층 석탑 근처에서 포대화상이 불뚝배를 내밀고 중생들을 향해 웃고 있었다.
*포대화상은 당나라 말 명주 봉화현 출신의 인물이다. 본명은 계차인데 항상 포대자루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화상이 되었다. 배가 나오고 대머리인 특징이 있다. 한국에도 포대화상에 대한 신앙이 퍼졌으며 포대화상의 배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 서양에서는 웃는 부처(Laughing Buddha)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이 때문에 서구에선 포대화상이 석가모니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다. 포대화상을 중국어로 '부다이'(bùdài)로 발음하는데 Buddha와 발음이 비슷한 데다 불교 승려이기까지 해서 이런 명칭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자료출처: 나무위키
수덕사 법고각
수덕사의 대웅전 외형은 단순하고 별다른 장식이 없다.
단정한 고려 시대 목조건축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맞배지붕은 장중한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기둥은 한반도의 특징적인 고중세 목조건축 양식인 배흘림기둥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건축물이다.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됐다.
수덕사 대웅전 건축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6-40년에 걸쳐서 대웅전을 완전 해체 수리하던 중 대들보에서 건립 연대를 적은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었다.
수덕사에는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문화재가 고루 남아있다.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 보물로 지정된 노사나불괘불탱 및 묘법연화경뿐만 아니라 삼층석탑, 칠 층 석탑 등 충청남도에서 지정한 문화재도 많이 보존되어 있다.
수덕사 경내에서 바라다본 풍경
수덕사와 덕숭산에는 들리고 싶은 곳도, 더 돌아볼 곳도 많지만, 일단 몸이 피곤했다.
앞서 들린 간월도에서 체력 소모를 많이 했는지, 아름다운 산사에서도 체력이 달리니 별도리가 없었다.
돌아 나오면서 비로소 일주문 옆에 있는 해탈교를 건넜다.
수덕사 해탈교
수덕사 선 미술관
해탈교를 건너면 수덕사 선 미술관이 있지만, 오후 5시에 폐장하는 미술관은 문을 막 닫은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으로 선 미술관 앞뜰을 둘러보았다.
야외 전시된 조각상 몇 점을 감상했으니, 이것으로나마 만족하기로 했다.
수덕사 방문은 아쉬움을 남겼다.
환절기여서 인지, 50견 통증도 다시 느껴지고, 재채기와 콧물도 제대로 찾아왔다.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은 유량골에서 소고기 버섯 만두전골을 먹었다.
이런 날은 먹고 들어가서 그냥 푹 쉬는 것이 제일 좋다.
곧 돌아가 쉴 생각을 하면서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피로가 풀리는 듯했지만 몸은 더 나른해졌다.
3인분 주문해서 만두와 국수는 집으로 포장해 왔다.
다음 날 아침, 냉장고에 모셔둔 꼬리반골 사골 국물에 맛있게 끓여 먹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