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금 청사포와 방파제, 금천 앞바다와 노루목 방파제 풍경을 담은 바다
밤새 내린 비로, 천안 집 뜰 촉촉한 대지를 벗어난 것은 9시 경이었다.
대전까지 경부고속도로로 달려가, 통영대전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는 붐비지 않았다.
평일(월요일)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다른 고속도로 들보다 교통량이 적기도 했다.
물론 여름 휴가철에는 다른 양상을 보이겠지만.
함양을 지나 산청까지 내달리는 동안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차창으로 가득 들고나니, 아침이라 가라앉았던 기분까지 가벼워졌다. 가을 하늘빛이 순하디 순한 얼굴로 내려다보니,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의 마음도 절로 유순해진다.
통영대전 간 고속도로는 과거 육상 교통에서 소외되었던 경남 서부의 균형 발전을 위해 1986년 6월,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로 최초 기획됐다. 그러나 2차선에서 4차선으로 규모와 노선 변경 등을 거치면서, 경남 통영시와 대전광역시 동구를 연결하는 현재 고속도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2005년 12월이다.
이 고속도로의 총 연장은 215.3km로 국내 고속도로 단일 노선들 중 여덟 번째로 긴 노선으로 통영(통영 나들목), 진주(진주 분기점), 함양(함양 분기점), 무주(무주 나들목), 대전(비룡 분기점) 등의 도시를 경유하고 있다.
산청을 지나면서 하늘이 조금씩 짓궂은 회색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사천시로 접어들면서 파란 하늘을 덮어버린 회색 구름이 넓게 자리를 펴고 엎드려 세상을 얄궂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각산터널을 지나 사천시로 들어서니, '삼천포 대교'와 그 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여러 대의 '사천 바다 케이블카'가 쭉 올려다 보였다.
한낮(12시 30분경) 가을 하늘에 가득 드리워진 잿빛 구름은 뭔가 잔뜩 심술 난 표정이었다.
곧이어, 삼천포대교 진입 지시 화살표가 보인다.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사이 바다 위로는 모개섬이 있다.
초양대교를 달려가 초양도에 닿으면, 초양도 휴게소와 초양 문화공원이 있다.
우리는 남해 바다와 독일마을 먼저 들릴 요량으로 초양도를 그냥 패싱하고 달렸지만, 돌아나갈 땐 들려갈 생각이다.
우리는 남해군 삼동면 동천리 쪽 바다로 드라이브를 즐기고 나서, 독일마을로 향할 생각이다.
늦어질 점심 식사 시간을 미리 각오하고 준비해 간 간식거리가(호두과자, 귤, 코코아, 음료수 등) 입을 즐겁게 해 줬다.
동천리 작은 마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사포 해변은 너무 조용했다.
스치는 바람 소리와 그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과 나뭇잎 외 이 세상 모든 움직임이 잠시 딱 멈춰 선 공간 같았다.
해상 위 배들도 특별한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이 떠있었다.
펜션 쪽으로 고양이가 한 마리 쓱 지나가는 것 말고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예 보이질 않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살짝 가파른 마을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곧 양화금 청사포 해변에 닿는다.
'청사포'란 지명이 내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2020년 12월 부산 해운대 달맞이 언덕 송정 방향, 오른쪽 아래로 보이던 아름다운 포구 '청사포'와 이름이 같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다녀온 곳인데도 그 풍경이 이곳 해변과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바닷가로 내려서니 어느새 회색빛 하늘이 밀려가고 흰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몇 분 전보다 남해 풍경이 제대로 곱게 밝아지고 있었다.
대자연이 급히 부린 마술로 아름다운 풍경을 순간 이동시켜 턱 들여다 놓은 것 같았다.
얼마 전,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 책을 읽고 난 후부터 바다에 가고 싶었다.
월요일 아침, 무작정 따라 나선 길 끝엔 아름다운 남해가 있었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바다에 닿고 보니, 종종 무료했던 일상이 낭만적인 변화를 품게 됐다.
'파도의 리듬에 맞출 때,
파도의 움직임과 빛이 보여주는 놀라운 아름다움 속에 있을 때,
산다는 것과 충만함이 무엇인지 대략 보일 것이고, 이렇게 '보이는 것'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눈과 귀를 활짝 열었다.
청사포 해변과 방파제를 한 바퀴 돌고 나니, 투명한 바닷물처럼 마음까지 맑게 정화되었다.
깨끗한 바다와 아기자기 늘어선 섬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이 그윽한 풍경을 기억 속에 꾹 담아둔다.
다시 작은 마을 사잇길 계단으로 올라가, 자동차에 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 '금천'마을이 있다.
독일마을로 향하던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저만치 노루목 방파제가 보인다.
'금천'이 방금 들려온 '양화금'보다 마을 규모가 훨씬 컸다.
바닷가와 앞바다엔 정박 중이 어선들과 바지선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정박 중인 어선들도 찰랑찰랑 물결에 흔들리는 것 외엔 움직임이 없었다.
바닷가로 사람들이 없다 보니, 먼바다로 나서고 싶어 찰랑대던 어선들도 별수 없이 조용히 휴식 중이다.
바다로 좀 더 나설 수 있는 철강판 다리 난간은 쇠닷줄로 고정되어 있었다.
녹슨 쇠닷줄은 세월의 무게까지 더해져 그 묵직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쇠닷줄은 난간 양쪽에 균형을 이루며 걸려 있다.
구조물의 맨 끝까지 통통 거리며 걷다보니, 잠시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금천마을 앞바다를 둘러볼 때는 청명한 가을 하늘과 흰 구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남해로 들어섰을 때만 해도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언제 그랬냐 싶게 밝게 빛났으니, 이날 바다의 날씨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보다 더 변덕스러웠다.
이제 쪽빛 남해를 가슴에 품고, 독일마을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