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마을 위에서〉, 1918
: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하는 샤갈은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한 가지 색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라고 했다.
22살 때, 벨라 로젠 펠트를 만나 첫눈에 반하고, 세계 1차 대전 전운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인 28살, 벨라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벨라는 그의 작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연인이기도 하다. 샤갈 57세 되던 해, 벨라는 병으로 세상을 뜨고, 그는 한동안 붓도 들지 못할 정도로 상심이 컸다.
60세 되던 해, 샤갈의 딸은 아버지에게 유대계 러시아인 바바를 소개한다.
두 사람은 민족적 정서와 종교를 공유하면서 서로 통하는 사이가 되고, 바바는 샤갈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샤갈은 세상을 뜰 때까지 다시 얻게 된 '사랑의 색'으로 그의 작품을 그려냈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었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 마르크 샤갈
프란츠 리스트의 <사랑의 꿈>, 1849
: 리스트는 사랑의 기쁨을 음표로 남겼다.
20대 초반에 만난 마리 다구 백작 부인과 3명의 아이 둔 리스트는 당시 무대 위의 슈퍼스타였고, 가는 곳마다 연생 팬들과의 스캔들로 시끄러웠다. 결국 5년 만에 결혼생활은 끝났고, 리스트는 그 안타까움을 독일 시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에 선율을 붙인 노래로 표현한다.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사랑하는 이의 무덤 옆에서
슬퍼할 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 페르디난트 프라일리그라트의 시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중에서 - 147쪽
https://www.youtube.com/watch?v=5U3PwQY2b5E
아서 해커 〈갇혀버린 봄〉, 1911
: 화사한 봄 햇살은 나무랄 데 없이 눈이 부시다.
나무 테이블과 나무 바닥으로 온화한 빛이 드리워져 있다.
테이블 위에는 누군가가 막 식사를 마친 듯 보이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다 알 순 없다. 그림은 그저 암시만을 전할 뿐이다.
단정한 차림의 여인은 창문 안과 창문 밖, 어두운 실내와 밝은 실외의 바로 경계인 창문가에 서있다.
우리는 자연스레 창밖으로 향한 그녀의 공허한 눈빛을 따라가게 된다.
허공을 향한 그녀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 차 보인다.
화사한 꽃은 그녀의 눈길을 빌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꽃과 그녀의 묘한 대비는 그녀의 알 수 없는 근심조차 아름다워 보이게 한다.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내 이 괴로움을 알리." - 독일 대문호 괴테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주인공 소녀 미뇽이 부르는 노래 중 돋보이는 시구 - 160쪽
표트르 차이콥스키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1869
: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면, 얼마나 오장육부를 아프게 하는 일일까?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는 바로 이런 심정을 노래로 만들었다.
그의 첫사랑은 28살에 만난 아름다운 소프라노 가수였다. 둘은 결혼을 약속하지만, 다음 해 봄에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한다.
배신감에 괴로워하던 차이콥스키는 그녀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실을 괴로워하며, 괴테의 시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에 선율을 붙인다.
처연한 쓸쓸함이 돋보이는 차이콥스키의 선율과 만난 이 시는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이 된다.
홀로 고독한 나는 세상의 기쁨을 모르네.
아! 나를 사랑하고 알아주는 사람은
그렇게도 먼 곳에 있구나.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시 <그리움을 아는 자반이 >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hkDtSqH2cKc
작자 미상, 외젠 들라크루아 〈쇼팽과 상드〉, (1838)를 다시 그림
: "쇼팽은 하늘과 땅이 부러워한, 비교 불가한 천재였소." - 외젠 들라크루아의 편지 중에서 - 186쪽
외젠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로,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 등 피아노 앞에 앉은 많은 음악가들의 얼굴을 그림으로 담아냈다.
1834년, 들라크루아는 한 월간지 의뢰로 당시 신예 작가로 급부상한 소설가 상드의 초상화를 그린다.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된다. 둘의 우정은 죽을 때까지 30년간 계속된다.
상드는 자신의 본명 대신 조르주 상드라는 남성 이름을 필명으로 쓴다. 그녀는 짧은 머리에 바지 슈트를 입고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다. 쇼팽은 리스트의 애인인 다구 백작부인의 살롱에서 상드를 만난다. 상드는 는 쇼팽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프랑스 남부 노앙 별장에 쇼팽을 초대하지만, 쇼팽은 수차례 거절한다.
하지만 상드의 2년여에 걸친 끈질긴 구애 끝에, 둘은 결국 연인이 된다.
그녀는 들라크루아에게 쇼팽을 소개해 주고, 두 예술가가 서로 잘 알고 지내길 바랐다.
상드는 들라크루아에게 자신과 쇼팽의 모습을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이 그림에서 상드는 원래의 중성적 이미지는 온데간데없다.
왼손 손가락 사이에 시가를 끼운 채 쇼팽의 음악에 빠져있는 모습이다.
서둘러 그린 크로키 같은 이 그림 〈쇼팽과 상드〉는, 실은 들라크루아의 미완성 초상화를 후대 화가가 다시 그린 것이다.
프레데리크 쇼팽 〈이별의 노래〉, 1832
: 쇼팽의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이었던 시기는 바로 상드가 그의 곁에 있을 때였다.
둘이 여인으로 함께한 9년 동안, 상드는 쇼팽에게 사랑하는 연인일 뿐 아니라 모성애 가득한 엄마, 그리고 극진한 간호인이었다.
상드는 쇼팽의 뮤즈였고, 둘의 사랑이 없었다면 쇼팽의 음악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 - <이별의 노래> 중에서 - 193쪽
https://www.youtube.com/watch?v=Ho4rczoOV4s
귀스타브 카유보트 〈오르막길〉, 1881
: 프랑스 화가 카유보트가 남녀의 뒷모습을 그린 <오르막길>에서는 침묵이 흐른다.
화가는 동생과 함께 노르망디 해안에서 여름휴가를 즐기며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는 남녀를 그린다. 남자가 쓴 노란 밀짚모자와 여성의 붉은 양산이 초록빛 수풀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거리 두기와 침묵. 함께 걷는 것만으로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이다.
그림 속에는 서로의 생각이나 느낌이 묻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노르망디의 따사로운 여름 햇살 아래를 걷으면서, 입을 다문 채 말 없는 연애 시를 쓰는 것만 같다.
가브리엘 포레 〈침묵의 로망스〉, 1863
: 포레의 <침묵의 로망스>를 들으며, 노르망디 햇살 아래를 걸어본다.
세련되고 정감 넘치는 선율은 따뜻한 화성 속에서 더욱 마음을 녹인다.
느릿하면서 편안한 왼손의 펼친 음들 위로, 오른손이 "람빠바암~"의 선율을 부드럽게 전한다. 양손이 함께하던 음악은 오른손이 옥타브 위로 올라가면서 마치 3개의 손으로 연주하는 듯 들린다.
두 사람은 침묵하지만, 음악은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네듯 주위를 맴돈다.
가사가 없는 것이, 되레 더 아름답고 선명하게 깊은 사랑의 감정을 전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 뒤는 상대에 대한 존중이자 배려이다.
때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다가가지 않아도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45CdhbiM1j4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 〈폭풍〉, 1880
: 프랑스 화가 오귀스트 코트의 그림 <폭풍> 속 사랑은 순수하고 소박한 사랑이다.
제목과 달리 그림에서는 그 어떤 공포나 위협이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금방이라도 그림 밖으로 튀어나와 요정처럼 사뿐사뿐 걸어 다닐 듯,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럽다. 맨발로 비를 피해 다급히 뛰듯이 걷는 남녀의 표정이 생생하다.
소녀는 더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다 해도 소년이 있는 한 안심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은 공포와 걱정 그리고 슬픔까지 몽땅 몰아낸다. 두 사람은 한 방향을 향해 뛰어간다.
프란츠 리스트 〈위안 3번〉, 1850
: 이 곡은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는 20대 초반에 사랑하는 다구 백작부인과 동거하며 아이 셋을 낳지만, 그의 잦은 연주 여행과 여성들과의 스캔들로 헤어지고,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 연인이 된다.
현명했던 공작부인은 리스트가 연주 여행을 다니며 소모되기보다는, 작곡가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기도록 설득한다.
당시엔 녹음이라는 것이 없던 시대였으니,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영원하기는 어려웠다.
창작이 사명임을 되새긴 리스트는 36세에 유럽 최고의 비르투오소(뛰어난 기교를 가진 음악가) 피아니스트라는 왕좌에서 은퇴하고, 위대한 작곡가로서 새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랑의 꿈'은 '사랑의 힘'으로 바뀌어, 리스트는 바이마르 궁정의 음악감독이 되고, 교향시를 창시한다.
그는 제2의 음악 인생을 펼치며 공작부인과 결혼을 꿈꾸지만, 그녀는 남편의 반대로 이혼을 하지 못한다.
비트겐슈타인 공작은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정략결혼은 한 것이었다.
리스트는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6곡의 <위안>을 써 내려갔다.
그중 3번째 곡은 그즈음 세상을 떠난 친구 쇼팽을 기리며, 쇼팽의 <녹턴> 스타일로 작곡한다.
이국 땅 파리에서 함께 우정을 나눈 친구를 향한 오마주였다.
리스트는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과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해 준, 러시아 황제의 여동생에게 6곡의 <위안>을 헌정한다.
"음표들이 내면의 깊은 곳에 파고들어 정신적인 울림을 일으킨다." - 이 곡을 즐겨 연주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 - 235쪽
이 곡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선물 같은 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a1E26wwblwA
가브리엘 뮌터 〈안락의자에 앉아 글 쓰는 여인〉, 1929
: 독일 화가 뮌터의 그림 속 그녀를 보면, 정돈된 깔끔한 모습이다.
노트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그녀, 두 발을 붙인 채 다소 불편하게 앉아 있어, '안락의자'를 무색하게 한다.
뮌터는 자신의 모습을 짧은 단발의 여성으로 그려 넣은 듯하다.
"나는 여학생이 일기를 쓰듯, 스케치북을 채운다. 내 그림은 내 삶의 순간들이다." 이렇게 뮌터가 스케치북에 그림을 채우듯, 그림 속 그녀는 노트에 자신의 일상을 새긴다. - 243쪽
젊은 시절 뮌터는 화가 칸딘스키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살았다.
그러나 칸딘스키는 바우하우스의 교수가 되고 유명해지자 결국 그녀를 떠난다.
홀로 남은 뮌터는 고독을 견디며 은둔 생활을 한다. 이 그림은 그녀가 다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에 그려진 작품이다.
뮌터와 칸딘스키가 서로에게 영향을 준 것은 클라라와 슈만이 음악가 부부로서 서로에게 뮤즈였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클라라 슈만의 〈녹턴〉, 1835
: 클라라 슈만은 당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그녀는 위대한 음악가 슈만의 아내일 뿐 아니라 그의 뮤즈이면서, 동시에 위대한 예술가였다.
데뷔 이후로 쇼팽의 곡을 즐겨 연주한 클라라는 13살 때 파리에 연주 여행에서 쇼팽을 만나고, 쇼팽 앞에서 그의 곡을 연주한다.
그녀의 연주에 반한 쇼팽은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악보를 선물한다.
"신과 같은 놀라운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꼭 이 곡을 연주하길 고대하며!"라는 메모와 함께. - 240쪽
두 사람의 만남으로부터 약 60년이 지난 후, 70세의 클라라가 자신의 은퇴 무대에서 연주한 곡은 바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소녀 시절,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 준 쇼팽에게 전하는 감사의 표시였다.
<녹턴>은 26살 쇼팽의 음악 스타일에 완전히 반하 17세 소녀 클라라의 팬심으로 작곡된 곡이다.
밤의 감성을 차분히 녹여낸 <녹턴>은 왼손의 정적인 화성 안에서 오른손이 우아한 선율을 그려가는 것이 특징이다.
클라라는 '쇼팽'스러운 장식음의 형태와 임시표로 반음씩 움직이며, 쇼팽의 스타일을 그대로 들려준다.
"삶의 모든 순간에는
감사한 일들이 있습니다.
감사의 말과 글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한 비타민입니다." - 245쪽
https://www.youtube.com/watch?v=4pNAnS5Po4g
존 에버렛 밀레이 〈눈먼 소녀〉, 1856
: 영국 화가 밀레이의 애잔한 이 그림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소녀는 손풍금을 연주하며 지나는 사람들에게 동냥을 하며 살아간다.
그녀의 목에는 "장님에게 자비를"이라고 쓰인 팻말이 걸려있다. 자매의 옷은 해지고 군데군데 기워 너덜너덜하다.
눈이 먼 소녀는 동생을 돌보며 주변 마을을 떠돌아다닌다.
한바탕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기 위해 소녀는 동생과 함께 붉은색 숄을 뒤집어쓴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 쌍무지개가 눈앞에 펼쳐진다. "무지개다!" 동생은 손가락으로 가리키지만 언니에겐 보이질 않는다.
동생의 설명을 따라가며 언니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쌍무지개를 그려본다.
소녀는 온몸으로 햇살을 느낀다. 환희에 젖어있는 찬란히 빛나는 소녀의 얼굴은 마냥 평화로워 보인다.
저자는 이 뭉클한 아름다움에 라흐마니노프의 <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 노래를 덧댄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 1896
: 20대 초반의 라흐마니노프는 존경하던 차이콥스키의 죽음, <교향곡 1번>의 실패, 사촌 동생과의 금지된 사랑 등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정신과 의사인 달 박사의 치료로 건강을 되찾고 1901년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다음 해 사촌 동생 나탈리아와 드디어 결혼한다.
결혼 생활로 영감이 넘치던 그는 사랑의 노래인 로망스를 12곡이나 작곡한다. 그중 7번째 노래인 이 곡은 갈리나의 시를 가사로 한다.
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
저 멀리 바라봐요.
불처럼 빛나는 강물과
형형색색의 카펫 같은 들판,
하얀 구름이 떠다녀요.
꽃과 오래된 소나무,
그리고 너, 나의 꿈. - 글라피라 갈리나의 시 <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 중에서 - 256쪽
https://www.youtube.com/watch?v=lhK6iKV_80s
존 슬론 <6시, 겨울>, 1912
: 미국 화가 존 슬론의 그림 속 기차역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금세 채워진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털모자를 쓴 사람들, 쌀쌀한 겨울날, 땅거미가 지면 마음은 절로 다급해진다.
거대한 열차는 화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튕겨 나올 것만 같다. 열차 너머, 바다같이 푸른 하늘에 시선이 간다.
그림에서는 머리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바쁜 잰걸음이 그대로 투명하게 보인다. 하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만 같다.
끌로드 드뷔시 〈아름다운 저녁〉, 1891
: 퇴근길 차디찬 공기를 맞으며 프랑스 작곡가 드뷔시의 <아름다운 저녁>의 선율을 음미해 본다.
이 곡은 프랑스 시인 부르제의 시에 드뷔시의 선율이 담긴 곡이다.
드뷔시는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음표에 빛을 그려냈다.
그는 특정 순간의 기분과 느낌, 정취, 시를 읽고 떠오른 장면을 음악으로 담아냈다.
해는 지고, 강물은 장밋빛으로 변하네.
밀밭 사이로 작은 풀벌레가 밀려드네.
젊은 우리, 이 아름다운 저녁에
세상의 매력을 맛보려는 호소,
파도는 떠나고 우리도 사라지네.
바다로, 무덤으로. - 폴 부르제의 시 <아름다운 저녁> 중에서 - 271쪽
https://www.youtube.com/watch?v=N_Ie57GUhzI
오귀스트 르누아르, 왼쪽부터 〈도시 무도회〉, 〈부지발 무도회〉, 〈시골 무도회〉, 1883년
: 르누아르는 다양한 분위기의 무도회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위 3점의 그림은 실물 크기로 그려져서 실제 그림 앞에 서면, 사람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도시 무도회>, 실크 소재의 우아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모델은 르누아르의 연인이었던 수잔 발라동이다. 그는 발라동을 위해 직접 파리의 고급 의상실에서 드레스를 주문했다고 한다.
<부지발 무도회>는 좀 더 편안한 분위기다. 르누아르와 친구들은 파리 인근 휴양지인 부지발에서 종종 파티를 즐겼다.
야외의 저녁 공기가 생기 가득 전해지는 이곳은 예술가들의 핫플이었다.
남성(작가 폴 로트)의 얼굴이 여성(발라동)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선 그림이다.
<시골 무도회>에 간 여성은 7년 후 르누아르의 아내가 된 알린이다.
그녀는 드레스 디자이너였다. 정면을 향해 미소 짓는 알린의 사랑스러운 표정이 눈길을 끈다.
그림에 등장한 모델 발라동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르누아르뿐 아니라, 드가, 로트레크, 모딜리아니 등 당대 웬만한 프랑스 화가들의 캔버스에 그녀가 그려져 있다.
발라동은 모델 일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화가가 되어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남성 화가의 붓끝에서 그저 예쁜 모델이었던 발라동은 자신의 자화상에서 예쁜 척하지 않는 '센 언니'의 거칠고 투박한 매력을 발산한다.
많은 남성들이 매력적인 그녀에게 구애를 했는데, 그중에는 음악가 에릭 사티도 있었다.
에릭 사티의 〈난 당신을 원해요〉, 1896
: 발라동은 사티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사티도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준다.
하지만 6개월 후, 그녀는 사티를 완전히 떠나고, 함께 찍은 사진 속 사티를 도려내 버린다.
사티는 인기 여가수 다르티의 피아노 반주자였다.
그녀가 뮤직 홀에서 부를 노래를 작곡해 주기도 했다.
발라동과 헤어진 지 3년 후, 사티는 사랑을 갈구하는 파코리의 시를 가사로 <난 당신을 원해요> 노래를 작곡한다. 사티는 그때까지도 발라동을 잊지 못한 것일까?
내 바람은 단 하나.
오직 당신 곁에서 평생 사는 것.
내 심장은 당신 것이 되고
당신 입술은 내 것이 되고
당신 몸은 내 것이 되고
내 몸은 당신 것이 될 거예요.
사랑에 빠진 당신의 심장은 내 손길을 원하죠.
영원히 타오를 사랑의 불길 속에서
끌어안은 우린 하나가 돼요. - 앙리 파코리의 <난 당신을 원해요>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t8BLYbVelU4
메리 카셋 〈푸른 소파에 앉아있는 소녀〉, 1878
: 미국 인상주의 화가 카셋은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화가의 눈으로 바라본 이 광경은 우리의 시선도 단번에 사로잡는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한눈에 들어오는 시원한 바다 빛 소파, 청록색이 가미된 푸른색은 그냥 '블루'라 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공작새의 날개 색(피콕블루) 같기도 하고, 터키석 색(터키즈 블루)에 브로콜리를 흩뿌린 느낌도 들고, 지중해 바다 빛 블루 같기도 하다.
화려한 싱글로 살았던 카셋은 드가와는 연인이 아닌 친한 친구 사이였다.
드가는 카셋을 자신의 캔버스에 담기도 했고, 두 사람은 그림이 맺어준 솔메이트로, 드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년 가까이 우정을 이어간다.
너무 지루한 나머지 몸을 비비 꼬고 있는 꼬마와 강아지를 보면, 포레의 <돌리 모음곡>이 떠오른다.
가브리엘 포레 〈자장가〉, 1894
: 포레는 은행가의 부인이자 소프라노 가수였던 엠마에게 완전히 반한다. 이미 가정이 있던 포레는 열렬한 사랑의 감정에 휩싸이고, 엠마는 포레의 뮤즈가 된다.
그녀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사람들은 이 인형 같은 여자아이를 '돌리'라고 불렀다. 포레는 돌리를 친딸처럼 사랑하였고, 돌리의 천 생일에 <자장가>를 선물한다.
<자장가>는 <<돌리 모음곡>>의 첫 곡으로, <<돌리 모음곡>>은 포레가 돌리의 첫 생일부터 4살 생일까지, 그리고 여러 기념일들을 위해 작곡한 6개의 짧은 곡들을 엮은 모음곡이다. 포레는 <자장가>를 1대의 피아노에서 두 사람이 4개의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듀오로 작곡한다. - 피아노 듀오에서 고음역대를 맡는 파트를 프리마, 저음역대를 맡는 파트를 세콘다라고 한다.
포레는 모음곡 각각의 곡에 귀엽고 앙증맞은 6개의 제목을 붙인다. <자장가> 외, <미아우>, <돌리의 정원>, <키티의 왈츠>, <부드러움>, <스페인 댄스 스텝> 등, 사랑스러운 제목들이다.
포레와 엠마의 관계는 그녀가 다른 작곡가인 드뷔시와 연애를 하면서 끝나버린다.
"이따금씩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가끔은 몸과 뇌를 쉬게 해 주세요." - 301쪽
https://www.youtube.com/watch?v=_lcaeyY1krM
조지 클라우슨 〈울고 있는 젊은이〉, 1916
: 자신의 알몸을 드러낸 채 태아처럼 웅크린 여성, 실제 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슬픈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워 보인다.
단정하게 묶음 머리를 한 그녀는 울음을 삼켜내며 신음하듯 운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어둡고 삭막한 곳에서 그녀의 희디흰 피부와 몸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고, 들풀마저 삭막해 보인다.
그녀는 영국 화가 조지 클라우슨의 딸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약혼자가 전사했다는 전갈을 받고 힘들어하는 딸을 보고 화가는 이 그림을 그렸다.
클라우슨은 딸이 느끼는 감정을 화폭에 담으며, 전쟁으로 사랑하는 애인을 잃은 수많은 젊은 연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전쟁의 참상과 포악함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비올라 엘레지〉, 1893
: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은 엘레지이다. 세상을 떠나 더는 볼 수 없는 이를 애도하는 노래이니까.
애도의 마음을 어찌 노래 한 곡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음악에서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하는 조성인 G단조의 엘레지를 그림 속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작곡가 글라주노프는 28살 되던 1893년, 러시아의 위대한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접한다. 그는 차이콥스키에 대한 고별사로, <비올라 엘레지>를 작곡한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음색을 들려주는 악기다.
우울한 음률이지만 비애와 슬픔만을 토해내지는 않는다. 슬프디 슬픈 G단조지만 경쾌한 알레그레토로 '조금 빠르게', 그리고 돌체로 '부드럽게 감미로운 느낌'을 더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비극을 보며 울면 감정이 순해지고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니, 울고 싶으면 맘껏 후련하게 울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_--5CutwC1w
윈슬로 호머 〈여름밤〉, 1890
: 마치 필터를 씌운 사진 같은 그림이다. 명과 암, 빛과 어둠 속의 바다. 해안가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미국 보스턴 출신의 화가 호머는 여행 중 영국과 미국 해안가에서 느낀 자신의 경험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는 바다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어촌 사람들이 바다에 맞서기도 하며 고군분투하는 일상과 어부 가족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곤 했다. 쉰 살을 앞두고 호머는 미국 메인 주의 프라우트 넥에 정착한다. 해안가에 마련한 호머의 화실은 바다에서 불과 20미터 앞에 있었다. 어느 여름밤, 호머는 화실에서 바라본 장면을 그대로 옮겨 그렸다.
검푸른 밤바다는 무서울 정도로 암흑이지만, 달빛의 마법으로 그녀들의 환한 은빛 살갗이 드러난다.
달빛 아래 마주 서서 춤을 추는 그녀들은 해변의 모래가 아닌, 호머의 화실 발코니의 마룻바닥에 발을 딛고 서있다.
화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그녀들의 드레스를 환하게 비춘다.
프레데리크 쇼팽 〈왈츠 7번〉, 1847
: 고국 폴란드를 떠나 의도치 않게 파리에 정착한 쇼팽은 난감했다.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언어에서부터 막힘의 연속이었다. 쇼팽은 유창하지 않은 프랑스어로 세련되고 빛나는 파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상드와 헤어진 쇼팽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왈츠를 써 내려간다. 쇼팽이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1847년이다.
첫마디부터 상처 가득한 마음을 담아낸 듯, 힘없이 무너진다.
C 숍 단조에서 차곡차곡, 3박자의 마디마디를 채워간다. 두 마디는 길게, 죽어감을, 다음 두 마디는 짧게, 살아감을..... 상처를 숨긴 채 쓸쓸한 어조를 이어간다. 우아하게 흐르는 템포 루바토의 미묘한 '당김과 끌림'. 마주르카 풍의 왈츠는 좀 더 기운을 내더니 '좀 더 활기 있는' 8분 음표들을 쏟아낸다. 마치 왈츠를 추는 여성들의 화려한 드레스처럼 빙글빙글 계속 돌고 돈다. 이제 숨통이 조금 트인다.
"인생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슬픈 왈츠와 기쁜 왈츠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곡의 왈츠에 슬픔과 기쁨이 다 있듯이." - 361쪽
https://www.youtube.com/watch?v=-wFubsIfZik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 1852
: 영국 화가 밀레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섬세하게 그린 라파엘 전파를 이끈다
그는 튜브 물감을 들고 밖으로 나가 자연을 담아낸다. 그중 하나가 <<햄릿>>에 등장하는 미련의 여주인공 오필리아를 그린 이 그림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주인공은 늘 햄릿이지만, 밀레이의 붓끝에서는 오필리아가 주인공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 자리한 그녀의 차디찬 육체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오필리아는 사랑하는 연인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실수로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억압받는 삶에서 갈 곳을 잃은 그녀는 실성하고 만다. 미친 척해야 했던 햄릿과 진짜로 미칠 수밖에 없었던 오필리아. 그녀는 꽃을 따다 개울에 빠지고 심장이 멈춘다. <<햄릿>>에서 그녀의 죽음은 이렇게 묘사된다. 오필리아가 죽어가며 부르던 노래가 그녀의 반쯤 벌린 입을 통해 들려오는 듯하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마르첼로의 협주곡〉 2악장, 약 1715
: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활동한 바로크 시대 작곡가 알렉산드로 마르첼로의 <오보에 협주곡>이 있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는 구슬픈 서정성이 절정을 이루고, 오보에 음색과 애잔한 선율이 잘 어우러져 어질러진 내면을 정화시켜 준다. 마르첼로는 직업 음악인이 아니었다. 그는 음악, 시, 미술, 철학, 수학, 정치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딜레탕트(예술 애호가)였다.
이 곡은 주요 오보에 레퍼토리로 역사에 남았지만, 당시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하마터면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바흐이다.
바흐는 마르첼로가 오보에로 새긴 깊은 슬픔에 감동해 하프시코드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한다. 이렇듯 바흐의 손에 의해 <마르첼로의 협주곡>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마르첼로의 이름도 주목받게 된다.
저자는 인간의 죽음을 담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다.
그것들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며 '나의 소멸'을 떠올린다. 동시에, 내 삶의 가치와 살아가는 이유를 묻고,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철학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iUPSoBrw9k
프리다 칼로 〈수박, 인생이여, 만세〉, 1954
: 칼로는 죽기 8일 전에 이 그림을 그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난데없이 수박을 그리다니, 설명 없이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서툰 필체로 그린 듯한 이 그림을 처음 접하며 칼로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힘들다.
이 그림은 칼로의 삶과 죽음, 우주를 뛰어넘어,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절절하게 전해 주는 작품이다.
수박은 멕시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 과일이다. 또 수박을 보면 같은 색의 멕시코 국기가 떠오른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 때 제단에 수박을 놓고 망자들이 수박 먹는 상상을 하며 축제를 즐기는 전통이 있다.
수박의 단단한 껍질은 칼로 인생의 대형 사고들, 즉 소아마비와 교통사고, 결혼 생활의 고통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칼로의 예술적 감성과 창의력이 더해진, 깊고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내면이 자리한다. 수박의 붉은 속살처럼.
그녀의 생에 마지막 작품이 된 수박 그림. 칼로는 빨간 과육에 대문자로 마지막 메시지를 쓴다.
"인생이여, 만세!
프리다 칼로
1954년 멕시코 코요아칸" - 381쪽
코요아칸은 그녀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다.
칼로는 파리 루브르 미술관에 그림이 걸렸던 최초의 멕시코 화가이자, 중남미 예술작품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화가이다.
그런 그녀의 유서와도 같은 수박 그림은 단순한 과일 그림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낸 칼로가 삶을 사랑하고 예찬하며 그린 그림이다.
사랑하고 원하던 그 무엇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로는 뒤로 물러나 있던 여성의 삶에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마누엘 폰세 〈작은 별〉, 1912
: 칼로의 꺼져가는 목소리가 멕시코 작곡가 폰세의 노래에서 들어오는 듯하다.
1912년 어느 늦은 밤,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폰세는 밤하늘을 바라다본다. 유난히 빛나는 별들을 보며, 즉석에서 종이를 꺼내 선율을 써 내려간다.
머나먼 하늘의 작은 별, 그대는
내 슬픔을 아시나요.
내 아픔을 아시나요.
가까이 내려와 아직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당신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나의 별, 내 사랑의 등대.
당신만이 내 마음에 빛을 내려줘요.
작은 별, 그대여. 아직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슬픈 건 이 마음뿐이니까.
당신 곁에 작은 별, 그대는 아시나요.
내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 <작은 별> 가사 - 382쪽
내게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인생이여, 만세!
브라보, 마이 라이프!
https://www.youtube.com/watch?v=DWzlTnv5ORg
칼로는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이 많다 보니 가끔은 그녀가 셀럽으로 느껴진다.
칼로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자신의 내면 상태에 집중한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그리며 운명과 정면으로 맞선다. 울면 우는 대로, 피가 나면 피가 나는 대로, 그대로 그려낸다.
욕조 광경을 그린 <물이 내게 준 것>에는 칼로의 얼굴이 아닌, 두 발이 등장한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로 무려 9개월간 입원한다. 병원에서는 꼬마 칼로의 다리를 작은 욕조의 따뜻한 물에 담그는 치료를 해준다.
그래도 오른쪽 다리는 계속해서 가늘어졌고 제대로 자라지 못해 결국 짧아진다. 친구들은 그녀를 "나무다리 프리다"라고 놀린다.
그녀는 당시의 상처와 이후 일어난 사고까지 모든 순간을 이 욕조 그림에 표현했다.
물속에 몸을 맡긴 칼로는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오필리아와 오버랩된다.
말레이의 <오필리아>가 들려준 바로크 음악처럼, 칼로의 그림에서도 그런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다.
바흐와 마르첼로, 그리고 헨델, 칼로가 물 위의 서사로 그려낸 슬픔의 시간들은 첫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날 듯하다.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미뉴에트〉, 1713
https://www.youtube.com/watch?v=5VMMwcnSu0E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의 저자 안인모가 엄선한 그림에 몰두하고, 음악에 취하다 보니, 책을 대출해 온 2주일 내내 이 한 권을 수도 없이 접었다 폈다 하며 보냈다. 그럴 가치가 있는 그림과 음악을 입체적으로 만났으니, 지난해 12월, 내가 나에게 주는 '시간 선물'이 됐다.
앞으로도 '일과 꿈', '성장', '사랑과 이별', '인간관계', '휴식과 위로', '아픔과 소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카테고리를 마음이 끌리는 대로 종종 감상하며 위로받고 싶어서 길게 기록으로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