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노인전문요양원'과 수원 '편백회관 조원점'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5월이 떠난 자리로 찬란한 봄은 더 바삐 서두는 낌새를 감추지 않던 어제 6월 1일. '묵'과 나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 '안양노인전문요양원'을 찾았다.
여윈 엄니와 늙은 아들의 애틋한 눈길은 불끈 연민의 정을 치밀어 오르게 한다.
매해 '계절의 여왕'이라 칭송하던 아름다운 5월도 양껏 구가하지 못한 채 바삐 떠난 자리 위로 6월 붉은 장미꽃의 화려한 자태는 의기양양해 보였다.
어머니는 소녀처럼 속삭이듯 '장미꽃이 예쁘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붉은 장미꽃 아래론 그늘조차 인색했지만, 90대 엄니와 70대 아들은 그 그늘 곁에서 서두는 봄을 꼭 잡아 세웠다. 나는 두 사람을 폰 카메라 속에 소중히 담아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2025년 봄날 한가운데 서서, 새로운 봄날을 기약하며.....
아니 그전에, 어머니와 아들 모두 무더운 올여름을 잘 보내고, 가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이 뜨락을 산책할 수 있길..... 이런 따뜻한 가을날이라면, 나는 발그레한 연시를 한 개 들고 와, 작은 티스푼으로 어머니께 달달한 맛 연시를 떠먹여 드리겠다.
새살스럽던 시절이 훌쩍 지나간 사이로 '묵'의 머리엔 은발이 내렸고, 내 얼굴엔 주름이 늘어났다.
어머니 머리카락은 오래전 은발이 되었고, 곱던 손가락 마디는 쭈그러졌고, 손등엔 파란 힘줄이 점점 진하게 드러났다.
사노라니 미운 정 고운 정 연민의 정이 한꺼번에 솟구치는 경험도 이젠 뒤죽박죽 혼란스럽지 않다.
우리는 말없이 빨리 늙어가면서 점점 더 자주 콧등이 시큰거렸고, 그다음 자연스레 두 눈을 껌뻑이며 코를 훌쩍거리곤 한다. 그리고 내겐 71세로 생을 마감하신 울 엄마 생각까지 더해지곤 하니, 이날은 이별도 만남도 슬프기만 했다.

돌아오는 길, 수원에 사는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형부를 떠나보낸 지 1년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몸이 점점 더 홀쭉해져 가고 있었다.
형부를 여윈 상실감이 그대로 전해지니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아팠다.
조카가 미리 예약해 둔 '편백 회관 조원점'에서 언니와 조카 부부를 만나 조금 늦은 점심 식사를 즐겼다.
들어설 땐, 텅 빈 듯했던 언니의 집도 우리에겐 오래된 인연과 낡은 공간이 주는 편안한 장소였다.
그런 곳에서 수박과 체리로 디저트를 즐겼다. 우리의 화제는 언니와 자식을 남겨두고 먼저 돌아가신 형부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젠 기억까지 가물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추억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아직 가장 빛나는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조카 부부의 알찬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일단 아쉬운 매듭을 짓고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짧은 오늘 하루 사이에도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얽히고설켜 또 한 개의 작은 매듭이 지어졌다. 우리가 서로 풀기도 하고 묶기도 할 수 있는 관계이니 마냥 편하고 좋았다.
좀 더 자주 만나고, 종종 연락을 취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뒤늦은 후회도 들었고.
어느새 이런 편안함을 만만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니, 까칠하고 여리기도 했던 내겐 이도 작은 성장이다. 길지도 않은 인생, 서로 보듬어 주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