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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유관순 열사 사적지와 순국자 추모각을 찾아서

뜨거운 마음으로 기념하는 광복 80주년

by Someday

훼손당한 국권, 민족의 존망(存亡)까지 짓밟혔던 역사의 몇 페이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일제 식민 잔재가 우리의 이념을 반으로 가르며 분열을 부추기던 현실,

민족의 가치관을 뒤흔들고자 했던 현대판 일제 앞잡이들에게 향했던 분노,

남의 손으로 넘어가 버린 우리 문화재를 바라만 보아야 했던 상실감,

이런 혼란스러움이 높다란 벽에 부딪치던 안타까움 들을 우리는 다 품고 뜨겁게 살아왔다. 광복 80주년을 앞둔 오늘, 지금까지.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 길, 원형 로터리에는 유관순 열사가 태극 상징 마크를 높이 받쳐 들고 하늘을 우러르며 서 있다.

살아생전 모습 그대로, 영원히 변치 않을 굳은 기개가 여전해 보여, 더 숙연한 느낌을 준다.

유 열사도 조국의 주권과 힘이 확고하게 안정되어야 좀 더 편히 쉬실 수 있으련만!

유관순 열사를 마주하니, 대한민국인의 자존감이 내면에서 강하게 꿈틀거렸다.


유관순길 로터리, 유관순 열사상 / '새 천년의 상' / '새 천년의 꿈'


1. 열사의 거리 - 역사 문화 둘레길

8일(입추) 아침부터 소나기를 한차례 쏟아부은 하늘은 회색 구름을 가득 드리웠고, 아직 가을은 저만치 먼 곳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유관순(1902년 12월 16일~1920년 9월 28일) 열사 기념관으로 들어서는 '열사의 거리'에는 독립만세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조형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져 있었다. 이 길은 '역사 문화 둘레길'과 이어진다.

유관순 열사의 흔적을 두 눈에 담으며 걷다 보니, 한국인의 긍지와 순국선열의 귀한 희생이 저절로 묻어났다. 이 길 입구에는 임정혁 작가의' 새 천년의 꿈', 김근배의 '새 천년의 상'이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둘레길 중간쯤엔 윤성길 작가의 '태극'이, 유관순 열사 기념관 앞에는 현남주 '희망의 물결'등이 전시되어 있다.


열사의 거리 옆으로 핀 무궁화 꽃길 / 유관순 열사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유관순 열사와 아우내 장터 독립선언서 곁으로는 천안에서 출생한, 충무공 김시민(1554~1592), 가은 박문수(1691~1756), 담헌 홍대용(1731~1783), 석오 이동녕(1869~1940), 유석 조병옥(1894~1960), 궁중음식 전문가 황혜성(1920~2006)의 일대기가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 가는 길 / 조형물 '태극'

열사의 거리 중간쯤에서 만나게 된 윤성길 작가의 작품 '태극'에는 수많은 나선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역사도 나선처럼 돌면서도 쌓여간다. 106년 전 아우내 장터의 함성도 그냥 스쳐간 시공간이 아니었고 소중하게 쌓인 우리 역사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이 땅에서 져버린 분들은 다시 하늘의 별로 떠올랐다. 우리는 순국선열들과 함께 계속 나선을 돌며 성장하고 있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던 김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고, 불끈 솟구친 대한민국인의 긍지가 나선형 원을 그리며 '태극' 원 속으로 함께 담겼다.


신사참배 / 손기정 선수 / 3.1 운동 당시 사진 기록들

일본 제국주의 야욕이 가득 담긴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정한론 선전도(1870년대), 강화도조약 체결(1876년), 한일 강제 병합 조인(1910년), 을사늑약(1905년 11월) 체결, 을사늑약을 부인한 광무황제(고종)의 친서, 일본군 강제위안부 모습이 담긴 사진 등을 바라보자니, 차오르는 울분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유관순 열사의 비 준공식(1963년), 동상 준공식(1972년)과 함께 '광복의 벅찬 순간들'의 흑백사진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벅찬 광복의 순간과 함께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 부속건물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관사의 태극기를 함께 담아놓고 보니, 광복 80주년을 맞는 감회가 더욱 새롭기만 했다.


진관사 태극기 / 광복의 벅찬 순간들

'열사의 길'이 끝나면, 유관순 열사 사적지가 보인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입구에는 현남주 작가의 '희망의 물결' 조형물이 서 있다.

'물방울이 모여 원을 이루는 상징성'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각기 떠다니던 수많은 물방울들이 지난한 우리 민족의 역사 속으로 모여질까?' 아렴풋한 80년 전 8월의 그날도, 물결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흐르던 수많은 희망들이 동그란 원 속으로 모여들었을 것이다.


'열사의 거리'에서 바라본 '유관순 열사 사적지' / 조형물 '희망의 물결'


유관순 열사 사적지 둘러보기

유관순 열사 사적지 안내 / 사적관리소와 '카페 사당'


2. 유관순 열사 기념관 - 위대한 불꽃, 유관순

'유관순의 횃불' 영상 캡처 / 독립만세 운동과 삼일운동 사료(史料)
서대문 형무소 재현
옥중 투쟁 / 겨레의 불꽃, 별이 된 유관순 열사
나라사랑 아카이브 / 메모리얼 벽 - 유관순 열사와 독립운동가들, 수많은 별이 되다.


3. 유관순 열사 기념공원과 유관순 열사 동상

유관순 열사 기념공원에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

순국자 추모각은 유관순 추모각 아래 조성된 유관순 열사 기념공원에서 가는 길과 유관순 열사 추모각에 들려 오른쪽 샛길로 통하는 두 개의 길이 있다.


4. 유관순 열사 추모각

유관순 열사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 유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장소다.


추모각과 추모각 주위 풍경 / 유관순 열사의 영정


5. 순국자 추모각

이곳은 호서 지방 최대 만세 운동인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선열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933년 8월 15일, 아우내 선열의 합동추모식을 거행한 후 48위의 위패를 병천의 민간단체에서 보관했다. 천안시는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9년 9월 순국자 추모각을 이곳에 건립하여 위패를 모셔왔다. 건립 당시에는 48위 위패였으나, 자료 발굴을 통해 독립유공자 서훈된 서열을 추가 봉인하여 현재 6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순국자 추모각 가는 샛길 / 아우내 독립만세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추모각

순국자 추모각에서 유관순 열사 추모각을 통해 돌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약수터가 보인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생수를 한 잔 들이켜고 초혼묘로 향한다. 초혼묘 오르는 돌계단은 생각보다 가팔랐지만, 상쾌한 숲 속 공기를 마시면 저절로 기분도 좋아진다. 가파른 계단 양옆으로 중간중간 놓인 바위에 새겨진 글을 읽으며 천천히 걷기 좋은 길이니, 미리 등산화나 운동화를 신고 방문하면 좋다.


매봉 약수터와 초혼묘, 봉화탑 오르는 길

매봉 약수터 / 초혼묘와 봉화탑 오르는 길


6. 유관순 열사 초혼묘

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서 아버지 유증권과 어머니 이소제의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이화학당에 다니던 중 서울 3.1 운동에 참여했고,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1일, 3천여 군중이 참여한 호서지방 최대의 독립운동인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경성 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중 끊임없는 옥중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하다가 갖은 폭행과 고문에 못 이겨 1920년 9월 28일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 주선으로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하였으나 일제에 의해 열사의 유택은 흔적 없이 망실되었다. 이에 열사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1989년 10월, 이곳에 초혼묘를 봉안했다.


유관순 열사의 초혼묘


7. 유관순 열사 봉화지

1919년 4월 1일, 거사를 각지에 알리기 위해 3월 31일 밤, 봉화를 올렸던 장소다. 당시 이 봉화를 신호로 목천, 천안, 안성, 진천, 연기, 청주 등 각지의 산봉우리 24곳에서도 봉화가 올려졌다. 거상 당일엔 이른 아침부터 동지들이 아우내 장터로 모여 감춰두었던 태극기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정오에는 유관순 열사가 장터 높은 곳에 올라가 독립을 호소하는 비장한 연설을 했고, 수많은 군중들이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당시 숭고한 뜻을 후세에 널리 알리고자 1977년 봉화대와 봉화탑을 건립했고, 매년 2월 말일 봉화제를 개최하여 유관순 열사와 만세 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유관순 열사의 봉화지와 봉화탑

봉화탑에서 초혼묘로 내려오면서 호적한 숲길을 돌아보니, 별안간 106년 전 아우내 장터의 함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짧고 굵게 살다 간 유관순 열사의 불꽃같은 숭고한 삶에 새삼 경의를 표하며 옷깃을 여몄다. 당시 암울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의 뜨거운 함성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유관순 열사 기념관, 추모각, 초혼묘, 봉화대를 둘러보고 나니 새삼 더 작아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소시민이지만 다이내믹한 한국인으로 살다 갈 수 있음에 늘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8. 유관순 열사 생가지

유관순 열사가 태어나 자란 집과 아우내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린 봉화터는 국가 지정 유산이며, 아우내 삼일운동 독립 사적지로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추모각과 구미산 아우내 독립만세 기념비가 있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아우내 만세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많은 독립운동가의 소중한 뜻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는 곳이다.


유관순 열사 생가 둘러보기

1898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 기도처는 1898년 선교사 스웨러에 의해 설립됐다. 당시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의 옛 이름이 지령리였다.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에 많은 교인들이 가담했다가 순국했고, 유관순 열사도 이때 체포되어 순국했다. 이 교회는 천안 동부 지역 최초의 교회였으며, 구한말 국채 보상 운동과 만세 운동에 앞장섰다가 1907년 일본 경찰에 의해 교회가 불태워졌고, 1932년 강제 폐쇄 조치되었다. 1966년 재개척하였고, 1967년 유관순 열사의 모교인 이화 여자 고등학교 지원으로 지금의 매봉 교회가 세워졌다.


역사 문화 둘레길과 이어진 유관순 열사 생가지 / 매봉교회


일봉산 사거리 충무로 있는 유관순 열사 동상

유관순 열사 생가를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봉산 사거리 충무로에 항상 서 있던 유관순 열사 동상을 평소처럼 무심코 바라보았다. 평소 자주 지나치던 길, 종종 올려다보던 같은 동상에서 이 날따라 더 빼어난 위상과 기개가 느껴졌다. 유관순 열사 사적지를 둘러보고 나니, 그 새 역사를 보는 눈이 좀 더 깊어졌나 보다. 역시 많이 알아야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밤 풍경 사진 3장, 7월 26일 밤 9시경 촬영 / 낮 풍경 사진 1장, 8월 7일 낮 12시 30분경 촬영


유관순 열사 사적지 관람안내

ㆍ 운영시간: 3월~10월 19:00~18:00 / 11월~2월 09:00~17:00 *종료 30분 전 입장 가능

ㆍ 운영일: 365일 개방

ㆍ 관람료: 무료


해설 안내

ㆍ 운영시간: 10:00~17:00

ㆍ 예약전화: 041) 522-6785


교통편

대중교통

철도: 경부성, 호남선, 장항선 - 천안역 하차

고속철도(GTX): 천안아산역 하차

수도권 전철: 1호선 천안역 하차

시내버스: 천안역, 종합 터미널에서 400번대 (병천 방면) 이용


자가용

ㆍ 목천 IC, 남천안 IC 이용


주차시설

ㆍ 주차: 대형 30대, 소형 30대

ㆍ 주차료: 무료


유관순 열사 사적지

ㆍ 31256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길 38

ㆍ TEL 014) 564~1233 / FAX 041) 521-2829


https://www.cheonan.go.kr/yugwansun/



이 글은 충청남도 누리집 > 소통마당 > 통통충남 > 여행 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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