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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온 가족이 모였던 초복

폭우와 수해로 얼룩진 땅 위로 찬란한 햇빛이 내린 날

by Someday

지난 토요일은 '묵'이 태어난 날이었고, 어제는 초복이었다.

묵은 지난주에도 전남 끝자락으로 출장을 떠났었고, 벌써 3주 째다.

폭우와 수해로 얼룩진 길을 무사히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는 반가움은, 매주 금요일 밤 10시가 넘어 묵이 집에 도착해야 가능한 안도감이었다.


토요일에도 묵은, 서울서 있었던 직장 동료의 딸 결혼식 참석으로 바빴다.

오전 10시, 부지런히 집을 나서더니 오후 5시가 훌쩍 넘어서야 돌아왔다.

묵의 생일 축하 모임도 자연스레 일요일로 넘어갔고, 이날은 (小暑)와 대서(大暑) 사이 낀 초복이었다.

우리 땅 곳곳에 엄청난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긴 폭풍우도 쓱 물러서고, 다시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처참한 피해를 입은 우리 땅 위로 찬란하게 내리 꽂히는 햇살이 고마우면서도, 딴청 피우던 철부지 지각쟁이처럼 야속해 보였다.

소꿉놀이 하는 꾸미

일요일 오전, 꾸미 가족이 환한 얼굴로 나타났다.

손녀 꾸미와 소꿉놀이를 즐기다 보니, 얼마 후 꾸미 삼촌도 시원한 차림으로 들어섰다.



'개미촌'에서 즐긴 초복 가족 점심 식사

꾸미의 귀여움에 푹 빠져 있던 우리는, 쌍용동 '먹자 거리(골목)'에 있는 한식 맛집인 '개미촌'을 찾았다. 예약도 하지 않고 나선 여유롭던 길, 뒤늦게 백숙에 꽂혔지만 30~40분 정도 기다리기엔 꾸미랑 꾸미 맘이 배가 고프다 하니, 백숙 백반 5인분, 열무국수 1인분을 시켰다.


개미촌 홀 / 메뉴판

먼저 나온 열무 국수가 생각보다 맛있었고 양도 푸짐해서 성인 5명이 나눠먹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오래전, 우리 엄니가 살아생전 말아주시던 바로 그 열무국수 맛과 흡사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묵과 아들딸, 사위도 그런 맛을 느꼈다고 했다.

'개미촌' 백숙 백반도 깔끔한 맛이 일품이었다. 꾸미까지 맛있다고 잘 먹어 주니, 생일 축하 겸 초복 나들이가 더 만족스러웠다.

우리 꾸미는 밑반찬으로 나온 감자볶음과 게맛살 부추 조림도 잘 먹었다.

더 필요한 반찬 없는지 몇 번이나 물어보아 주시던 주인장 할머니 모습을 뵈니, 이곳 밑반찬에서 '어머니 손맛'의 진심이 전해졌다.

우리는 처음 담아다 주신 반찬으로도 충분했다. 모두 맛을 즐기는 소식가((小食家)가 들이니.


가족들에게 열무 국수를 나누어 주고도 많이 남아 있는 국수 / 밝백숙과 열무국수 애니메이션


맛있게 잘 먹는 귀요미 꾸미, 애니메이션


sticker sticker


"꾸미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케이크 커팅 시간은 할아버지보다 꾸미가 더 기다린 시간,

꾸미의 축하로 행복해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족들에겐 더 큰 즐거움이었다.


할아버지 생일 축하 노래 부르기와 케이크 촛불 끄기는 꾸미에게 가장 중요한 일


할아버지 생신 축하, 애니메이션


책 읽기에 관해 서로 이야기가 통(?) 하는 삼촌과 꾸미


3시 30분경 아들과 꾸미네 가족은 집을 나섰다.

우리 부부는 가족 모두 건강하게 바삐 사는 모습을 두 눈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이 행복할 것 같다.

딸과 사위는 꾸미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만으로도 크게 애국까지 하고 있다.

우리 부부를 할아버지 할머니로 만들어 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나는 꾸미 할머니여서 행복하다.

꾸미가 없었다면, 할머니도 못 되었을 텐데... ^^


아들은 일이 많아 바쁘다고 하니, 요즘 같은 시기엔 이도 반가운 소식이다.

특히, 아들에겐 늙은 부모로서 고마운 마음이 크다.

우리 집 인터넷과 우리 부부 핸드폰 요금을 제 통장 자동 결제로 연결해 두었고, 김치냉장고와 정수기도 설치해 주었다. 정수기 필터도 6개월마다 자동으로 배송되고 있다. 수년이 흘렀지만 엄마의 노트북, 얼마 전엔 아빠의 임플란트 치료비까지 따로 신경을 썼으니, 자주 못 보아도 마음이 항상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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