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은 무(無) 호적 독립영웅 214인 중 한 분으로, 2022년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본적을 입적, 천안인이 되었다. 그동안 직계 후손이 없어 호적 등록을 못했던 동주 시인은 하늘 아래 가장 편안한 곳 '天安'에 영면한 우리 민족의 소중한 별이다.
'윤동주 문학산촌'을 찾은 1월 10일(토) 오후.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바람을 가르며 광덕면 무학산 쌍령 1길로 향하는 길은 마치 동주 시인의 짧은 생을 내내 뒤흔들어 놓았던 일제 식민지의 암울감을, 감히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드셌다. 이리저리 휘몰아치던 변덕스러운 비바람에 화들짝 놀라면서도, 누군가 우리 어깨를 힘껏 토닥여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건, 동주 시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마음속에 그의 짧고 굵은 생이 얼마나 커다란 울림으로 함께 하고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쌍령 고개로 들어서서 2번째 봉수를 지나 달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사잇길로 아담한 짙은 회색 건물이 내려다보인다. 이 집이 바로 광덕 무학산 자락에서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와 문학 혼을 만날 수 있도록 '윤동주 문학산촌'을 조성하고 있는 영우 박해환 촌장의 거처이자, 동주 시인의 귀한 사료가 임시 보관된 곳이다. '윤동주 문학산촌'은 아직 미완의 장소이지만, 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손길이 이곳에 모이고 있다.
현재, 문학산촌 박 촌장은 '윤동주 문학사상 선양회'를 이끌면서, 천안 무학산 기슭에 윤동주 생가를 재현하고, 제대로 된 전시관을 개관하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을 주민들과 최용현 이장도 이 사업에 적극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관심을 보태고 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며 시인, 작가이다. 그는 강인한 저항정신, 사랑과 평화의 인류애와 인도주의 실천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민족 시인이며, 그의 사상과 시는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 영혼에 아름답고 올곧은 자극을 주고 있다.
그는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 시 포항동 76번지였으나, 현재 호적은 독립기념관 주소인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이다
동주시인은 북간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그가 19세에 쓴 <오줌싸개 지도>는 우리가 애송하는 동시다. 1938년 연희 전문대 입학한 시인은 42년 초까지 4년간 서울 생활을 했다. 그동안 연희전문학교 문과 재학 시절, 소설가 김송의 집(종로구 누상동)에서 5개월 정도 하숙 생활을, 문우 정병욱과 함께 했다. 당시 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42년 동경 유학. 감옥 입소(옥살이 포함 2년 3개월 일본 생활)를 거쳐, 1945년 2월 짧고 뜨거운 생을 차갑고 누추한 일본 감옥에서 마쳤다.
동주 시인은 동경 유학을 하면서 선배 정지용 시인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옥살이를 하면서 많은 시를 썼을 것으로 추측되나, 남아 있는 시는 단 5편뿐이라는 것이 크게 안타깝다.
'윤동주 문학산촌'이 조성되고 있는 무학산 자락 산길을 오르면 자연스레 동주 시인의 뜨거운 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학산 계곡을 파고들며 태풍같이 휘몰아치던 바람도 동주 시인을 향한 사람들의 발길을 방해하진 못한다. 황량한 겨울 산에서 동주 시인의 작은 흔적이라도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하고 뜨거우므로.
작품명 '겨레의 눈'과 '민족의 소리'는 독립기념관 제3전시관,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북간도 항일독립운동사 전시품이었으나, 기념관 리모델링 공사로 철거된 것을 '윤동주 문학산촌'에서 기증받아 작품명을 붙이고 그 의미를 재해석해서 이곳에 다시 세웠다.
이곳 광덕 무학산 자락 '윤동주 문학산촌'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와 문학 혼을 만날 수 있다.
동주 시인의 <서시>와 <슬픈 족속> 시비를 그냥 지나칠 순 없다. 가만가만히 그의 시를 읊조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동주 시인이 된 듯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굽어보게 되는 곳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마주하는 마음 한편이 복잡한 것은 28년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이 우리의 마음을 아리게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인간으로서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랄 수 있을까!' 우리는 단 하루라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는지. 또 살아갈 수 있을지. 매일 밤마다 별은 차가운 바람결을 무심히 스쳐 간다.
힌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힌 고무신이 거츤 발의 걸리우다
힌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힌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네 남과 여의 모습이 마치 그림처럼 그려진 시다. ‘족속(族屬)’이란 단어를 통해 우리 민족의 테두리가 언어로 딱 구분되는 느낌이 들었다. 4줄의 짧은 시 속에 그 시대의 슬픈 조선인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조선인을 상징하던 흰색이 동주 시인의 시 속에 가득하다. 흰 수건, 흰 고무신, 흰 저고리, 흰 띠를 통해 슬픈 조선인을 보듬고 품어주는 것만 같다.
겨울엔 공연장 풍경도 겨울잠에 든 듯 한적하지만, 봄과 가을엔 북적이며 많은 행사가 열리던 곳이다.
윤동주 문학산촌 야외공연장은 문학기행, 윤동주 관련 상 시상식, 시 낭송대회 공모전 등을 통해 윤동주의 문학정신을 잇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윤동주 문학산촌'을 지키고 있는 박해환 촌장은 원대한 계획을 한 발 한 발 느리지만 쉬지 않고 내딛고 있는 중이다.
윤동주 문학 산책길은 약 3km에 달하는 코스로 조성될 예정이며, 산책길 중간중간 예술인 마을, 독립지사 후손의 집, 시비공원, 연수정, 윤동주 북간도 용정 생가와 교회 복원, 무학폭포, 쌍령 고개 과거길 쉼터, 서시정, 무학산 봉수대, 생각의 언덕 등이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북간도 용정에 있던 윤동주 생가를 이곳 무학산에 자락에 복원(재현) 시킬 예정이니, 이는 청소년 문학기행의 초석이 되어, 동주 시인처럼 '별 헤는 밤'을 직접 느껴보는 문학체험 공간으로 확대될 것이다.
시인과 화가의 집을 짓고, 예술인 마을로 승화시키면, 마을 주민들도 고급문화의 향유하며 함께 누릴 수 있게 된다. 이런 원대한 기획을 실천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도 관심을 갖고 함께 매진 중이라고 한다.
박 촌장은 27여 년 동안 윤동주 시인을 기리기 위해 국내외 윤동주 연구 학자 및 문인들과 윤동주문학 사상 선양회를 결성, 계간(서시), 윤동주 대표 시 4개국 대역 시집, 윤동주 문학대상 수상집 발간, 윤동주 상 등을 제정했다. 특히, 그는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 있는 윤동주 시인 언덕 조성과 '윤동주 문학관' 개관에 큰 공헌을 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윤동주 문학산촌 정자인 '序詩亭'은 천안시에서 지원하여, 완성됐다. '서시정' 현판은 한국 최고의 서예가 초정 권창윤 선생 작품이다. 우리는 사나운 날씨 탓으로 '윤동주 문학산촌'만 둘러보고, '서시정'엔 오르지 못했다. 새봄이 오면, 다시 찾아와 서시정에도 올라보리라 다짐하며, 동주 시인 유물 및 자료 임시 보관실로 내려왔다.
박해환 촌장은 직접 북간도 용정,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서 우물(벽)과 110년 된 우물 굴뚝, 초등학교 4학년 때 동주 어린이가 쓰던 등사기 등을 가져와 이곳 임시 자료실에 보관 중이다. 이 나무 벽 우물은 서울 인왕산 자락 윤동주 문학관에 있는 우물과 같은 우물이다. 원래 6칸 높이 우물이었는데 3칸씩 서울과 천안 2곳에 나누어 보관 중이다. 서울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이 우물을 전시 보관 중이나, 천안 윤동주 문학산촌에서는 아직 전시실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여서 이곳 임시 자료실에 보관 중이다. 윤동주 문학산촌이 좀 더 빨리 완성되어 개관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중국의 동북공정 관련, '윤동주 시인의 국적에 관한 논란'에 대한 진실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와, 중국은 동주 시인을 중국인으로 포장하고, 일본인들은 윤동주 시인을 사모하고 그의 시를 애송하며 시비까지 건립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동주 시인의 기상과 아름다운 시어 역시 대한민국이 문화강국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아직도 윤동주의 국적까지 들먹이는 일부 주장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열린 우물(제2전시실)에서 닫힌 우물(제3전시실) 입구가 바라다 보인다.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든 시멘트 벽 속으로 사람들은 윤동주 시인을 만나러 들어간다. 제3전시실은, 우리가 동주 시인의 삶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의미에서라도 편한 의자에 앉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던 곳이다.
서울 종로구는 2012년 이곳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있던 '청운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윤동주 문학관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 서울시와 서울시 수도국의 상반된 입장을 조율했던 사람이 현재 천안 '윤동주 문학산촌' 박 촌장이라고 한다. 박 촌장은 여러 차례 조율을 통해 당시 서울시가 수도국에 대토를 주고 가압장 터를 윤동주 문학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박 촌장은 당시 버려지던 '청운 수도가압장' 현판을 챙겨 와, 현재 이곳 윤동주 문학산촌 임시 보관소에 보관 중이다. 박해환 촌장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광덕면 무학산에 윤동주 문학산촌을 완공하겠다는 열정으로 더욱 드러나 보인 순간이기도 했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돕던 곳이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며 비겁해지려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이 된다. 그의 영혼과 우리의 영혼이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이어지고, 계속 멈추지 않고 흐르도록 해주지 않을까,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윤동주의 문학과 맑은 사상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기도 하다.

윤동주 시인 유품 및 자료 임시 보관소를 둘러보고 나서니, 그새 내린 눈이 무학산과 산길 위까지 가득 덮고 있다. 아직 눈발이 날리는 산길을 내려오다 보니, 중간에 자동차 바퀴가 서너 번 공회전될 만큼 산길은 벌써 미끄러웠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탄압 아래 펜을 꺾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래서 윤동주 시인의 꿋꿋한 절개가 더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이웃 나라 일본과 정리되지 않은 문제 역시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이 바라는 진정한 사과, 독도를 둘러싼 억지 주장, 1965년 한일기본 조약은 겉으로 드러난 국교 정상화 이면에 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해결되지 못한 역사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다. 반일 반한 감정도 크게 줄어든 것 같지 않다. 국내에서도 친일부역자 미정리로 아직도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채 혼란스럽곤 하다. 이럴수록 우리에겐 동주 시인의 기개가 그립고 절실하다.
일제 강점기를 짧고 굵게 살다 간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그는, 비로소 가장 길게,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고 사랑받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의 <서시>를 읽을 때마다 내적 규제로 작동하는 동주 시인의 깨끗한 도덕 정신이 우리 모두에게 그대로 전이된다. 윤동주 시인은 그가 그토록 열망했던 새벽인, 조국 독립을 맞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났지만, 식민지 국가의 젊은이로서 그가 겪은 고뇌와 갈등은 80여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고스란히 전해진다.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무학리 산 131
전화: 010-7503-7172 (촌장: 박해환)
현재, '윤동주 문학산촌'은 네이버 '장소' 지도에 뜨지 않는다.
문학산촌을 찾는 분들은 '광덕면 무학산 쌍령 1길'로 들어서서 전화를 하면, 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윤동주 문학산촌'을 안내받고 싶은 분들은 미리 전화로 시간약속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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