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에서 밀려나는 '뱅상 랭동' 연기에 빠지다.
티에리는 회사의 부당한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된다. 부당함을 항의하던 동료들과의 연대모임에서 빠져나와,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티에리. 그는 아내와 장애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모순된 현실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시장의 법칙>은 일자리를 잃자, 무기력한 가장으로 전락한 티에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고독한 뒷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우리 아버지들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는 <아버지의 초상>이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다.
티에리는 취업상담사의 추천과 권유로 15개월 동안 크레인 기사 교육과정을 마쳤지만, 함께 수료한 15명 중 13명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티에리도 그중 한 사람이다. 티에리는 성실하게 교육을 받았고, 한껏 자세를 낮추며 구직 면접도 보지만, 건설 분야 경력이 없어 채용할 수 없다는 말만 듣는다. 교육을 시작할 땐, 안내받지 못했던 경력 문제가 뒤늦게 지적된다.
15개월 전, 당시 티에리 취업을 상담했던 상담사는 이제 와서 대안이랍시고 취업이 아닌 다른 교육과정을 또 추천한다. 수료하면 취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좌절하는 티에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가장 손쉽게 실직자 해결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교육과정 추천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프랑스 실직자 문제도 우리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취업 상담소엔 국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비슷비슷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백화점 진열대 상품들처럼 번드르르하게 진열되어 있다. 실제 취업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진열품들도 많다. 직장을 찾는 간절한 이들 눈에는, 배우기만 하면 곧 취업될 것 같아 보인다. 보여주기 식 교육과정만 되풀이되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도 국비로 지원되는 진로캠프, 취업 준비교육, 취업 심층 교육, 재취업 교육 등의 비슷한 교육훈련정보가 홍수를 이룬다. 자기에게 맞는 정보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
프랑스든 한국이든, 개별 맞춤형으로 이뤄진다는 취업상담과 교육과정이 왜, 구직업체의 조건에 맞지 않는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티에리는 2년간의 끈질긴 구직활동 끝에 대형 마트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그는 매의 눈으로 매장 내 감시 카메라를 통해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
티에리는 언제나처럼 성실한 자세로, 묵묵하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 매장에서 물건 훔친 사람을 찾아내면, 원칙대로 처리한다.
15유로어치 고기를 살 현금이 없는 노인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경찰을 부른다. 그가 감시하는 모든 사람 속에는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도 포함된다. 20년간 매장에서 일해 온 여직원이 할인쿠폰을 빼돌리는 장면도 티에리 눈에 포착된다. 그는 원칙대로 처리한다.
여직원은 점장에게 '한 번만 봐 달라'라고 애원하지만, 해고된다. 며칠 후, 마트로 그녀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티에리는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녀 장례식에도 다녀오고. 그러나 그는 점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티에리는 또 다른 직원과 취조실 공간에 마주 서게 된다. 고객이 챙기지 않는 포인트를 자신의 포인트로 도용, 누적해온 그녀는 티에리에게 묻는다. "설마 이걸로 상부에 보고하진 않겠죠?"라고.
티에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취조실을 박차고 나온다. 그는 작업복을 벗고, 마트를 뛰쳐나온다. 냉혹한 시장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암울한 현실과 그의 도덕적 양심이 대치한다. 어느 쪽을 택하여도 정답일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다. 티에리는 ' 시장의 법칙'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채. 자본주의 시장에서 밀려나고 마는 것일까?
영화는 매 순간 열심히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롱 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보여준다. 현실 속에서 주인공을 지켜보는 것 같은 생동감이 든다. 스테판 브리제 감독은 끊임없이 고뇌하는 티에리 모습을 핸드헬드 촬영기법으로 진행, 마치 한 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배우의 진지한 연기와 절제된 촬영으로 관객들 몰입도와 공감까지 높여준다.
영화에 배경음악이 없는 것도 특이하다. 그래서 티에리 뒷모습이 더 고독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티에리와 부인이 로큰롤 댄스를 배울 때와 아들 앞에서 그 춤을 춰 보일 때, 단 2번 흐른다.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 아들은 불편한 손으로 박자를 맞추며 좋아한다. 그가 변함없이 행복한 가정의 가장임을 보여주는 따뜻한 장면이다.
브리제 감독은 현실감 있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주연인 뱅상 랭동 이외의 모든 배역을 비 전문 배우로 캐스팅했다. ‘티에리’의 아내, 장애를 가진 아들 마티유는 물론, 대형 마트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과 손님까지 모두 비 전문 배우다. 감독은 실제 자신의 직업과 동일한 인물이 그 역할을 맡도록 하여, 캐릭터의 신뢰성과 작품의 몰입 도를 높였다. 영화가 주는 묵직한 주제뿐 아니라, 티에리 가족과 배역들의 편안한 연기에 더 깊게 몰두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