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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Nov 03. 2021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성실한 시민이고 인간이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하는 우리가 다니엘 블레이크다.


I, Daniel Blake

개요  드라마 / 영국, 프랑스, 벨기에 / 100분 / 2016.12 개봉

감독  켄 로치(Ken Loach)

출연  데이브 존슨(다니엘), 헤일리 스콰이어(케이티), 샤론 퍼시(쉴라), 브리아냐 산(데이지), 딜런 맥키어넌(딜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 사람, 다니엘 블레이크는 평생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왔다. 나이 들어,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신청한 다니엘은 심사관과 통화한다. 심사관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지, 모자를 혼자 쓸 수 있는지 등을 묻고, 다니엘을 질병 수당 대상자에서 탈락시킨다. 


  다니엘은 구직활동을 하며, 구직수당이라도 받아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구직수당 신청은 인터넷으로 하란다. 평생 훌륭한 목수로 살아온 다니엘은 컴퓨터를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다니엘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준 센터 직원은 상사로부터 오히려 잘못된 선례를 남긴다며 꾸중까지 듣는다. '무척 잘 된 선례'인 것 같은데 말이다. 

  다니엘은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니, 손 글씨로 쓴 이력서를 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구직수당 제재 대상에 올리겠다고 한다. 고용센터에서는 심장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일을 하면 안 될 사람에게 이력서 작성 강의를 듣게 하고, 구직활동 증명서를 내라고 다그친다.  다니엘은 관공서를 찾을 때마다 복잡한 관료 절차로 번번이 좌절한다. 


  다니엘은 고용센터에서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한 젊은 엄마가 바삐 들어서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된다. 이주민인 케이티는 단지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심사를 거절당하고 좌절한다. 

  다니엘은 마치 아버지같이, 할아버지처럼 케이티와 아이들과 서로 의지하며 지내게 된다. 이주민 심사를 받지 못한 케이티는 양육비조차 없어 성 매매까지 하게 되고, 다니엘은 그런 케이티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 듯 아프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다니엘의 심장병 증세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더해 간다. 실업급여에 명단만 올린 채, 질병 재심사 항고는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인간으로서 수치심을 느낀다. "사람은 자존감을 잃으면 다 잃은 거요."라던 다니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커다란 울림으로 전해진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에서 배웠던 영국 복지제도도 오늘날 다른 나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세상 어디(국가, 사회)에도 더 이상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 이주민, 퇴직 노동자를 위한 부조리한 복지제도와 비합리적인 문제를 제대로 귀담아 들어주는 곳이 없었다. 

  약자와 소외계층 안전망인 복지정책이 운영자 위주의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전락한 영국 사회 부조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기계적인 촘촘한 시스템은 복지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걸러내겠다는 취지였으나, 그 제도가 절실한 사람들에게까지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밀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복지제도 벽에 부딪힌 다니엘은 고용센터 외벽에 자신의 요구 사항을 스프레이로 쓴다. 시민들 격려와 환호도 받지만, 경찰서로 연행되어간다. 경찰은 초범인 다니엘을 훈방 조치하면서, 다신 이런 문제 일으키지 말라는 다짐을 강요받는다. 


  힘든 나날을 보내는 다니엘은 점점 건강이 더 나빠진다. 항고 일이 겨우 잡혀, 케이트와 함께 센터를 방문한 다니엘에게 작은 희망이 보이나 싶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서러워하던 케이트의 울부짖음이 오랫동안 메아리처럼 되울려온다. 


  추도사는 다니엘이 남긴 글을 케이트가 읽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시린 겨울을 버티고 있는 우리 사회와 이웃들과 공유하고 싶은 영화다. 우리가 다니엘 블레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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