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이 찡해오고, 눈가가 촉촉해지는데 마음은 더 따뜻하게 젖어온다
개요 드라마, 가족 / 한국 / 103분 / 2018. 03 개봉
감독 김성호
출연 이주실(애란), 이종혁(규현), 김성은(수진)
‘나도 울 엄마에겐 보물이었지.’
영화 <엄마의 공책>은 우리네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다.
코끝이 찡해오고, 눈가가 촉촉해지는데 마음은 더 따뜻하게 젖어온다.
치매를 담담하게 다룬 가족 영화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엄마의 공책>에는 정성 가득한 엄마의 손맛과 가족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오랫동안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쌓인 엄마의 반찬 레시피 공책을 중심으로 기억 한편에 접어두었던 가족사가 잔잔하게 펼쳐진다. 엄마, 가족, 반찬, 노년, 치매, 요양원, 관심과 사랑 등, 우리가 살면서 비껴갈 수 없는 단어들이 우리의 이야기로 버무려진다.
엄마 애란과 시간강사를 전전하는 아들 규현은 서로에게 영 살갑지 않은 모자간이다. 애란은 음식 솜씨가 좋아 깔끔한 반찬가게를 30년 넘게 계속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동네 사람들도 정성 깃든 애란의 음식 솜씨를 모두 인정하며, 오랫동안 변치 않고 단골로 찾는다.
규현도 해장에 최고인 엄마의 동치미 국수 맛과 아플 때도 벌떡 일어나게 해 주던 엄마 표 벌떡 죽 맛을 품고 살아간다. 그뿐인가, 손녀 소율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도 할머니의 정성과 손맛 담긴 주먹밥이다.
애란은 일찍 세상 떠난 남편 몫까지 다해, 혼자 자식들을 키우며 억척같이 살아왔다. 아들딸을 공부시키고, 결혼시키고, 할 일 다 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즈음 엄마 애란은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규현은 시간강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에 낼 기여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의 반찬가게를 팔아 그 돈을 마련하고 싶다. 아내 수진과 여동생 혜원은 엄마를 모시는 일로 작은 말다툼까지 벌인다.
어느 날부터인가 애란은 자꾸만 정신 줄을 놓고 아들이 죽었다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 증세가 심해지면서 반찬가게마저 정리하려 한다. 결국 애란은 요양원으로 가겠다고 스스로 선택하고, 가족도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두고 돌아온 규현은 엄마의 반찬가게와 집을 정리한다. 규현은 애란이 음식을 만들 때마다 삐뚤빼뚤 한 글씨로 열심히 적어놓은 레시피 공책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반찬 레시피가 꼼꼼하게 쓰인 엄마의 공책을 손에 넣게 되면서, 규현은 ‘엄마를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이 과연 최선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규현은 7살 때 사고로 죽은 형의 존재도 새롭게 알게 되면서, 유독 자신에게만 까칠했던 엄마의 숨겨졌던 아픈 사연도 이해하게 된다.
결국, 규현은 중대한 결심을 한다. 기여금을 내고서라도 그토록 되고자 했던 정교수 자리도 마다한 채, 스스로 반찬가게를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규현은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다시 집으로 모셔온다. 그리고 엄마의 정신이 성하실 때마다 반찬 레시피대로 열심히 따라 하며 배운다.
엄마의 반찬가게는 다시 옛날처럼 활기를 되찾게 되고, 처음엔 반찬가게를 운영하겠다는 규현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내와 친구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게 된다.
노년에 찾아온 치매를 떨쳐 낼 순 없지만, <엄마의 공책> 속 가족과 이웃들은 치매조차 그저 일상의 일부분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작은 기적을 함께 만들어간다. 치매에 걸린 노년도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이유가 충분했다.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 함께 하는 한!
규현과 가족은 엄마의 공책으로 책을 만들고, 엄마 애란의 조촐한 출판기념식을 연다. 영화 마지막 장면, 엄마 애란은 [엄마의 공책] 출간을 축하하는 아들 규현에게 감싸 안기며, 속삭인다. “네가 내 보물이었어.”라고. 우리는 모두 엄마의 보물이었다. 이젠, 우리가 엄마를 우리 보물로 품어야 할 시간이다.
<엄마의 공책>은 개봉에 앞서 국회 특별 상영회를 진행하며 주목을 받았다. 2017년 정부가 발표한 『치매 국가책임제』 추진 계획과 관련된 내용이 영화 <엄마의 공책> 이야기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전하는 소재의 각별함을 되짚어 보게 한다.
김성호 감독은 “치매를 겪는 상황 속에서 좀 더 성숙해지는 캐릭터들을 통해 치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나 공동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며, 영화를 통해 치매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대비 등 다양한 방면에서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