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준다.
개요 드라마 / 프랑스, 독일, 미국 / 118분 / 2017. 12 개봉
감독 짐 자무쉬
출연 아담 드라이버(패터슨), 골쉬프테 파라하니(로라)
패터슨의 일주일간 이야기가 잔잔하게 스쳐가듯 그려진 영화다. '삶에서 아름다운 것은 일상 소소한 것에 있다.'라는 말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누구나 시인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나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 나갈 수는 있다.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내일은 더 아름다울 것만 같다.
패터슨은 23번 마을버스를 운전하면서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기도 하고, 점심을 먹으며 일상을 틈틈이 기록으로 남기는 운전기사이자 시인이다.
미국 뉴저지 주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마을버스 운전기사 패터슨의 하루는 평범하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서, 잠든 아내 로라에게 살며시 입맞춤 인사를 전하고, 혼자 시리얼로 아침식사를 한다.
패터슨은 매일 저녁 아내 로라와 함께 식사를 한다. 그리고 매일 밤, 로라의 애완견 마빈과 산책을 하면서 동네 바에서 잠시 한 잔의 맥주를 마신다.
그는 낮엔 버스 속에, 밤엔 바 안에 있다. 조용하고 성실한 사람이며, 아내 로라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로라는 항상 뭔가를 시도하고 변화를 추구한다. 새로운 것을 해보려는 그녀의 일상이 가끔 철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변화를 추구한다. 패터슨은 시를 쓰고, 로라는 컨트리 가수가 되고 싶다며 뒤늦게 기타를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패터슨의 일상은 마치 마을버스 노선처럼 단조롭고 규칙적이며 틀에 짜여 있다. 매일 반복되는 평이한 그의 일상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을까?
버스 차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매일 바뀌고, 버스 승객들 대화도 항상 다르다. 맥주 한 잔 마시러 들리는 바에서도 매일매일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패터슨이 자신의 비밀 노트에 틈틈이 적는 시도 매일 조금씩 고쳐 쓴다. 이 작은 도시에는 일상 반복과 자잘한 변화가 항상 함께 일어나고 그는 그런 일상을 시로 쓴다.
패터슨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다.
미국 시인인 그는 고향 뉴저지의 소도시인 '패터슨'을 예찬한 5권짜리 서정시집 [패터슨]을 펴냈다. 같은 이름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패터슨은 이 장편 서사시집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어느새 평온한 한 주가 지나가고 주말이 된다. 토요일, 패터슨에겐 큰 사건이 발생한다.
로라가 새 장터 빵 코너에서 손수 만든 컵케이크를 다 팔아, 기분이 좋아진 부부는 오래간만에 테이트를 즐긴다. 영화를 관람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홀로 남겨졌던 애견 마빈이 패터슨의 비밀 시작(詩作) 노트를 모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낙담한 패터슨은 맥이 빠진다. 함께 안타까워하던 로라는 마빈에게 크게 화를 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이번 주 토요일은 두 사람에게 참으로 엄청난 사건의 하루였다.
일요일, 패터슨은 로라의 부탁으로 마빈을 산책시킨다. 평소 산책코스와 달리 반대 방향으로, 마빈의 고집과 힘에 의해 끌려갔던 패터슨은 폭포 앞 벤치에서 일본 시인 한 사람을 만난다.
이 시인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 발자취를 찾아 패터슨 시를 찾아왔단다.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나는 시로 숨을 쉰다."라고 말한다. 헤어지면서 패터슨에게 선물이라면서, 새 노트 한 권을 건넨다.
"때로,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준다."라던 그 시인의 이야기는 우연처럼 패터슨의 안타까운 현실 앞에 나타나, 어쩜 마법 같은 상황이 됐다. 패터슨은 얼떨결에 받아 든 텅 빈 노트를 들여다본다. 그는 텅 빈 페이지마다 다시 자신만의 시를 채워갈 수 있을까?
다음날, 어김없이 패터슨은 다시 월요일 아침을 맞는다. 그는 잠든 로라에게 아침인사를 건네고 평소처럼 시리얼로 아침식사를 하고 출근한다.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다.
자무시 감독은, 영화 <패터슨>을 "그냥 평온한 이야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패터슨과 주변 인물을 다시 들여다보면, 아내 로라, 애견 마빈, 이미 헤어진 술집 커플, 무정부주의자 버스 손님, 시 쓰는 소녀 등이 다시 쓱 뇌리에 스치며 지나간다.
짐 자무시 감독은 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미국 독립영화계에서 작가 감독으로 손꼽히는 뉴욕 컬럼비아 대 영문과 출신이다. 그는 젊은 시절 시를 썼고, 시인들과 교류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로부터 영감을 받아 영화 <데드 맨>(1995)을 만들었고, 영화 <패터슨>을 통해 시를 다시 스크린 속으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