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파울라는 시대적 편견과 한계에 당당히 맞서다 짧은 생을 마쳤다.
<파울라>는 독일 여성화가 '파울라 모더존 베커'(1876~1907)의 짧은 일생을 담은 영화다.
여성이 한 사람의 당당한 예술가로 홀로 서기조차 힘들었던 19세기 말, 파울라는 여성화가로서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여성은 미술가로 제대로 교육조차 받기 어려웠던 시절, 파울라는 독일 예술가 공동체 ‘보릅스베데’에서 화가의 꿈을 키워 나간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림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주위 비웃음을 사곤 한다. 아버지도 파울라만 보면, ‘벌써 24살이니, 결혼부터 하라.’며, 압박한다.
파울라는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좋은 그림 세 점을 그린 다음 기꺼이 이 세상을 떠나겠노라."라고 선언하며 화가로서 치열하게 살아간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풍경을 스케치하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던 파울라는 인간의 신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성의 자연스러운 몸을 그대로 화폭에 담아내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
파울라와 특별한 우정을 나눴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독일 작은 마을에서 지내던 파울라를 예술 도시 파리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파울라 대표작 중 하나로 <시인 릴케의 초상화>가 손꼽히기도 한다. 릴케는 그녀의 소중한 친구이며, 파울라의 작품을 사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작가로 20세기 최고의 독일어 권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영화에는 릴케, 로댕, 세잔까지 시대를 대표한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독일 예술가 공동체 보릅스베데에서 함께 그림을 공부했던 친구인 조각가 클라라 베스트 호프는 일찍 파리로 와, 조각가 로댕의 조수로 일하고 있다. 파울라는 클라라 덕분에 로댕 작품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되고, 그의 작품에서 뭔가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세잔의 작품 <목욕하는 사람들>, <인형을 안은 소녀> 등 작품도 영화 속에 등장한다. 파울라는 우연히 찾은 박물관에서 폴 세잔 작품을 감상하게 되고,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한 그의 작품에 단번에 매료되어 깊은 영감을 받는다. 폴 세잔은 파울라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진 화가다.
파울라의 짧지만 열정적인 일생에 동행하는 것도 흥미진진하지만, 바라보고만 있어도 가슴 설레게 하는 당대 명작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큰 기쁨이다. 시각적으로 이렇게 황홀한 명화들을 계속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인가!
그녀는 여성의 운명과 모성에 대한 생각을 단순화된 형태와 절제된 색채로 표현, 자신만의 시각이 내포된 독특한 화풍을 창조해 낸 뛰어난 화가다. 여성화가라는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예술가로 살고자 했던 파울라의 열정적인 삶을 마주 할 수 있다. 영화 <파울라>의 모든 장면들은 각각 다 한 폭 명화였다.
파울라는 시대적 편견과 한계에 당당히 맞섰지만, 그토록 원하던 자신과 남편 오토의 아기(딸)를 출산하고, 31살 나이로 죽음을 맞는다.
그녀는 15년 동안 18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서양 미술사 처음으로 기록된 여성화가 누드 자화상이다. 브레멘에 있는 ‘파울라 모더존 베커 미술관’에 소장된 자화상에는 예술 세계와 일상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몸부림쳤던 그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파울라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째 되던 해, 나치는 비정상적인 여성상을 제시해 독일 민족의 건강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파울라를 퇴폐 미술가로 판정하고 자화상 한 점을 보란 듯이 퇴폐 미술전에 내걸기도 했다.
파울라는 나치 정권에 의해 죽어서도 한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나치야말로 비정상적인 세계관을 지녔으니, 문제 될 것도 아쉬울 일도 아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