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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Oct 28. 2021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바르다와 JR, 두 사람에게 우연은 항상 최고의 조력자였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Visages, Villages, Faces Places, 2017 Faces Places, 2017

개요  다큐멘터리 / 프랑스 / 93분 / 2018. 06 개봉

감독  아녜스 바르다, 제이알

출연  아녜스 바르다, 제이알 

      


두 사람은 포토 트럭을 타고      

프랑스 시골마을 누빈다.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거리 빈 곳을 찾아 대형 사진을 붙인다.     

두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평범했던 시골마을은 갤러리가 되곤 한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93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다. 55살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남다른 조화와 캐미를 보여주는 아녜스 바르다와 JR은 영화 각본도 직접 썼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아녜스 바르다'는 누벨바그 거장이라 불린다. 또 한 사람 감독과 주인공을 함께 맡은 JR은 2018년 타임지가 선정한 인플루언서다. 

  영화는 두 사람이 바르다의 옛 친구 '고다르' 집을 찾아가는 여행길에 동행하면서 펼쳐지는 아트멘터리다. 화면 가득 채우는 프랑스 시골 풍경이 수채화이고, 예술 사진이다. 

두 사람의 사진 작업은 시골마을 전체를 갤러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누벨바그(Nouvelle Vague): 1950년대 후반에 시작, 1962년 절정에 이른 프랑스 영화 운동.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이다.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했던 이 경향은 무너져가는 프랑스 영화 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됐다. 


  영화를 찍을 당시 바르다는 이미 88세, JR은 33세였다. 두 사람은 함께 다니며, 각자 사진을 찍고, 다시 공동작업을 한다. 

  두 사람은 포토 트럭을 타고 프랑스 시골마을 누빈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얼굴과 장소를 기록하고 사진으로 남긴다.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거리 빈 곳을 찾아 대형 사진을 붙인다. 

두 사람이 지나가고 나면, 평범했던 시골마을은 예술 거리로 탈바꿈한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 이야기가 이어진다. 두 사람은 농촌지역과 해변가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며 사진 작업을 한다. 열정적으로 작업하는 두 사람 모습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5년간 만나지 못했던 바르다 옛 친구 ‘고다르’를 만나러 함께 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폐광 촌 이야기, 8천 에이커 넓은 땅을 혼자 농사짓는 사람, 카페 종업원,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하늘 위 물고기 작업, 해변 가 유령마을과 이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집배원 이야기, 길거리 예술가 포니(75세)의 낙천적인 삶, 염소농장에서 고전적인 방법(생산 극대화 목적으로 뿔을 없애지 않고, 염소 자체를 존중)으로 염소를 사육하는 양심적인 농장주, 1995년 해변 가에 떨어진 독일군 벙커, 기 부르뎅 생가, 브레송 묘지, 항만 노동자와 그들 아내 등을 만나 각자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공동 작업을 해서 마을 빈 벽에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곤 한다.  


사진출처: 영상 캡처 - 썰물 때 진행한 벙커 사진 작업, 밀물이 들고나면, 사진도 사라진다.                                


  인간은 서서히 늙어가지만, 사라지는 건 밀물과 썰물처럼 빠르게 갑자기 이뤄지기도 한다. 바르다와 JR은 사라져 가는 것들을 현실에서 복원시켜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스러져가는 인생은 아무도 복원시킬 수 없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는 있겠지만, 바르다는 '만나는 사람마다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한다. 바르다는 노화로 시력이 점점 더 침침해지고, 걸음걸이도 힘이 없어져 간다.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두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영화 속에서 새롭게 재탄생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다. 

  현실에서 복원되면, 사라져 간 것들을 아련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짠 했던 마음이 편해진다. 자연 그대로의 작업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화다. 

  두 사람은 서로 상상할 권리를 주고 생각과 의견을 공유한다. 무궁무진한 두 사람의 이야기도 마지막 작업에 이른다.  

JR은 바르다 눈과 발을 사진으로 찍어, 정유 수송 열차 둥근 통에 붙인다. 또 하나 움직이는 예술품이 탄생한다.  바르다의 눈과 발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레일 위를 달려간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의 시선을 거두어들여도, 열차는 세상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관객들은 두 사람의 작품인 새 열차여행을 상상하면서 또 행복하다. 


  두 사람은 바르다의 옛 친구 '장 뤽 고다르' 집에 도착한다. 고다르 집은 비어있고, 문은 잠겨 있다. 바르다는 친구 집 문에 '기억해 줘서 고마워.'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바르다는 친구 고다르를 '예측할 수 없는 사람, 고독한 철학자, 창조자, 탐구가'라고 부른다. 고다르를 만나지 못한 바르다의 아쉬움이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는다. 좋아하지만 서로 못 본다는 것이 영화 촬영 당시, 88세 할머니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영화에서 고다르의 부재는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다르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인 걸까?' 나의 상상력이 너무 멀리 간 건지 모르겠지만, 바르다 할머니도 언젠가 고다르를 다시 만날 것이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서라도.


  당시, 최고 현역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아트멘터리야말로 계속 진행형이길 바랬다. 정유 수송 열차는 항상 방금 떠난 듯했고, 우리는 둥근 통에 찍힌 바르다의 아름다운 눈과 부지런한 두 발을 계속 따라갈 수 있어 행복하다.  

  두 사람에게 우연은 항상 최고의 조력자였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모두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향해 달려간다. 좋아하지만 서로 볼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바르다의 목소리가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저린 가슴 들어와, 긴 여운을 남긴다.

  바르다는 '오래된 친구'라는 말을 싫어한다. '길게 만난 친구'가 더 좋단다. 영화는 끝났지만, 바르다 할머니가 사랑한 얼굴들이 하나 둘 다시 떠오르고, 내가 '길게 만나고 있는 내 친구 얼굴'들이 오버랩된다. 




 바르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좋아하지만 서로 볼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난다'던 바르다 할머니는 벨기에, 프랑스 영화감독, 각본가, 사진작가, 배우로 한 평생을 훨훨 불타 오르듯 살다 갔다.

  바르다는 특히, 여성 영화인들에게 존경받는 감독이다. 바르다 데뷔 이전까진 여성이 영화감독되기도 힘들었던 시절이다. 남편 자크 드미 감독과 함께 누벨바그 세대 감독으로 유일하게 할리우드에 정착해 활동하기도 했다. 슬하에 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하는 아들 마티유 드미와 프로듀서인 딸 로잘리 드미를 두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 2017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한국 개봉 축하 영상 중, 바르다와 JR


  바르다는 2019년 3월 29일 암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이승에선 직접 만난 적도 없는 바르다는 이미 내게 '길게 만난 친구' 중 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한국에는 2007년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로 내한한 적 있다.  2017년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다시 서울 국제 여성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을 때는 건강 문제로 내한하지 못했다. 이때 축사 영상을 보내왔고, 직후 개봉 때도 공동 감독 JR과 한 번 더 축하 영상을 찍어 보냈다. 


https://www.cine-tamaris.fr/varda-par-ag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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