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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Dec 03. 2021

활판 인쇄 후, 버려졌던 오래된 다른 분들 원고 뭉치

젊은 시절이 빛바랜  원고 뭉치 위에서 서성인다.


1980년대 사보 고정란, ‘인기 작가 콩트 릴레이’에 게재되었던 원고들이다.

사보가 발간되고 나면, 다 폐기 처분해 버리던 원고들인데 유명인 자필 원고니, 몇 편 보관해 두었나 보다.

70~80년대 유명했던 소설가 오찬석, 최일남, 백시종, 김이연, 강유일, 이경자, 김홍신 등.

몇몇 작가들 친필 원고가 복층 누렇게 변한 종이상자 속에 남아있다.

일반인 글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

나에게 더 소중했던 아들딸 만화 스케치와 스토리 원고, 나의 몇 년 전 기록 뭉치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ㅠ



오래된 퀴퀴한 종이 냄새가 난다.

늙은 원고 뭉치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는 역겹지 않다,

특별하고 귀하다.

게다가 자필 원고여서일까.

글마다 조금씩 다른 냄새가 난다.

빛바랜 원고 뭉치들이 내 모습을 닮았다.

처지고 누렇고 힘조차 없어 보이는.


 

활자의 크기를 지정한 흔적,

제목을 컷으로 변경하는 지시,

특수 부호(▲)를 지정하는 번호(295번),

한자를 한글로 바꾼 흔적.

붉은 펜으로 쓰인 낯익은 글씨.

오래된 원고 뭉치와 함께 옛 기억이 따라온다.

펜을 움켜쥐고 바삐 움직이던 젊은 한 여자 사람도 같이.


그 외 매달 기획기사와 연결된 원고도 몇 점 더 있다.

김형석· 김재은 교수, 유달영 박사, 이규호 전 교육부 장관 등등.





돌아가신 분도, 살아계신 분도 옛 기억 속에 머물다, 잠시 들려간다.

젊은 시절이 빛바랜  원고 뭉치 위에서 서성인다.

젊음은 찬란했던가?

그날은 갔다!

찬란해서가 아니라, 지나간 것이기에 아쉽다.



어떤 원고는 한자와 한글이 반씩이다.

당시 1만 2천 부를 발행하던 우리 사보는 한글 전용지.  

한자는 한글로 바꾼다.

보수적인 분, 학식 높은 분, 말이 살짝 어눌하거나, 글이 반짝이거나, 모두 자기 이름을 귀하게 여기는 분들이다.



잡동사니 속에서 드러난 레이아웃 스케치 북.

핸드메이드 북인가!ㅋ



다시 많은 이야기들 몰려온다.

편집회의 -> 기획 -> 부서장 결제 -> 사내외 행사, 기사 취재 원고 작성 및 사진 촬영 -> 사내외 원고 청탁

-> 원고 접수 -> 1회~3차 교정 -> 레이아웃(원고와 사진 배치, 활자 호수와  컷 지정 등) 완성 -> 활판인쇄 작업 의뢰 -> 인쇄소와 회사를 오가며 활판 작업 끝난 쪽마다 3차까지 교정작업 및 레이아웃 재점검 확인 -> 'OK' 사인이 나면, 1만 2부 발행을 위한 인쇄기가 돌아간다.

사보가 완성된 후, 오타가 보일 때 제일 괴롭고 힘들었지.



동료와 레이아웃을 그렸다 지웠다, 특집 기사를 가 편집하던 상황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신년 특집판을 기획했던 것 같다.

1981년이 닭띠 해였다.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나온 시간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쌓여 내린 내 모습은 볼품없다.

얼굴엔 처진 주름, 흐릿한 시력의 동공, 손등 검버섯으로 까지 들러붙는지 그때는 몰랐다.

올핸 몸에 구멍을 내고 호스까지 들이밀어, 왼쪽 콩팥 위 내분비샘인 부신까지 잘라냈다.

더 변변치 못한 몰골이 들여다 보인다.


pixabay.com

한 해를 서서히 밀어내려는 이즈음,

2021년 남겨진 아쉬움은 다 쌓아서 툭 던져두련다.

언젠가 오늘처럼 이렇게 다시 옛 기억으로 따라나서라고.

오늘 뒤엔 내일이 오고

한 해가 가면 새해가 온다.

새해가 미처 오기도 전에

나는 생뚱맞게 새 신을 꺼내 신고, 1981년 그때처럼 멋스럽게 걷는다.



금요일 밤, 나는 무디어진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단 하루도 똑같은 일상은 없다.

나도 어제의 내가 아닐 걸!

매일

날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리드미컬하게 두드린다.

삶이 '안녕!'이란 이별의 말을 건네기 전까지.


활판인쇄: 본래는 활자로 짜여진 판을 기계에 걸어 인쇄하는 원판인쇄(原版印刷) 기술이었지만, 연판(鉛版) ·전주판(電鑄版) ·선화볼록판[線畵凸版] 등 각종의 복제판(複製版)이 발명되면서부터는 이들 각 판에 의한 인쇄도 모두 포함한다.

활판인쇄는 가장 이용범위가 넓은 문자의 인쇄였는데, 현재 컴퓨터 시스템에 의한 인쇄술의 보급으로 활판인쇄는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활판인쇄 [typographic printing, 活版印刷]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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