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좋았어요
영국 초등학교에서, 알파벳 쓰기나 음가 배우는 순서가, 우리가 알던 것과 달라 흥미로웠다. 특히 알파벳을 Aa-Zz로 내달리며 쓰는 대신, 아이들이 편안한 모양부터 시작을 해서 비슷한 모양끼리 묶어 썼다. 가령 c 다음에는 o 로 넘어간다. o 에서 a (이 폰트가 아닌 우리가 많이 쓰는 o 에서 꼬리가 달린 에이)로, 아이들의 쓰기는 마치 글자가 성장해 가는 단계처럼 완성이 되어갔다.
영국 유치원에서 c 를 쓰기까지 밑작업이 상당하다. 일 년 내내 하는 유치원 활동엔, 학년이 올라가 편한 쓰기가 될 수 있도록 준비운동이 많다. 가령, 리본을 묶어 여러 모양을 만들다가 커다란 글자도 만들어 본다. 모래판에서 그려보고, 찰흙으로 만들어 본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글자를 몸으로 터득해 간다. 연필을 쥐고 쓸 때가 되어서 위에서 말한 순서대로 노트에 적어본다. 6-7세가 되어서 바로 필기체처럼 이어서 쓸 수 있는 알파벳으로 들어가도 아이들이 제법 따라간다.
반골 기질인가, 어린아이들이 힘겹게 채워가야 하는 획일적인 A-Z 알파벳 쓰기가 싫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비슷한 형태로 묶은 알파벳 친구들을 소개해 주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놀다 보니 어느새 알파벳을 쓰고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출판사 미팅까지는 가보았지만, 그냥 거기까지였다.
아들 노는 걸 보니, 지가 좋아서 꽂히면 A-Z 순서대로 열심히 쓰며 즐겨서, 굳이 c o 순서로 갈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었다. (이른 영상 노출을 꺼려한 엄마의 말보다, 영상을 적극 활용하려 한 아빠의 말을 먼저 접하고 아주 어려서부터 abc 사랑에 빠져 밤낮으로 abc를 말하고 써보려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대문자는 그렇게 혼자서 하는데 소문자 쓰는 걸 보지 못했다. 소문자는 이 방법을 시도해 보고, 추후 또 글로 남겨야겠다.
혹시 알파벳 쓰는 걸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Aa-Zz를 따라가는 대신 이런 방법도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연락하시길…
알파벳 책, 알파벳 퍼즐, 알파벳 이야기.. 그냥 알파벳으로 하는 무언가가 재미있었다. 이런 것도 유전이 되는 걸까. 아이도 알파벳 책을 좋아했다. 사물 속에서 알파벳 모양을 찾아 재미있어하고, 사물들을 연결해 글자를 만들어 냈다.
프랑스 작가와 홍대 대학생과 프로젝트로 시작은 했는데… 아시다시피 아직은 파일 속에 머물러 있다. 잠을 깨워보고자 한다. 잊히면 그대로 놓아버릴 것 같아, 일단 가까운 곳으로 데려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