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도 치러주지 못한 아이디어

부활하라

by J Lee

며칠 전 방을 정리하다 발견한 노트. 런던에서 일할 때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A5 사이즈의 평범한 문구류 선물을 특별한 게 만든 것은, 첫 장에 남긴 그의 메모 덕분이었다. 이 노트 위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라고, 그런 의미에서 자기가 만든 캐릭터로 먼저 시작을 해 보겠다며 두 명의 인물 묘사를 적어 놓았다. 영화 공부를 하고 편집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던 동료. 그러나 생계를 위해서는 수학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지금도 취미로 편집을 하고 있을까.


2013년.

페이지를 넘기니, 동료의 캐릭터를 이어받아 신나는 이야기가 씌어 있어야 할 자리에...


"장례도 치러주지 못한 아이디어들, 행동이 따라주지 못한 아이디어는 그냥 그렇게 죽어간다."라는 글귀가 남아 있었다.


이십 대엔, 에너지 넘치게 참 하고 싶은 게 많던 때였다. 그러나 현실로 이루어지기까지 필요한 연료를 어디서 찾아 어떻게 태워야 하는지 잘 몰랐다.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생각만 하다가 시간은 가고, 아이디어는 흐지부지 잊혔다. 아마, 삼십 대가 되면서 한 풀 꺾인 에너지로 적어 놓은 넋두리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다음 페이지로 넘기니, 까마득한 기억 속에... 적어놓았는지도 몰랐던 글이 있었다.

왜 그때 한글 관련 글을 썼을까. 장례를 치러줘야 하는 글인지, 브런치로 이장을 한 뒤 부활 시킬 수 있는 글인지...일단 옮겨 놓고 본다.




가 로등이 켜지면

나 는

다 롱이와(키우던 강아지 이름)

라 디오를 들으며

마 당에 앉아,

바 다를 그려요.

사 람들이 다녀간

아 주고은 모래 위에

자 전거도 그리고

차 돌멩이도 쌓아보고,

카 악 카악 목청 다듬는 갈매기도 만나요.

타 다닥 타다닥 모닥불을 피우면

파 하고 흩어지는

하 얀 거품 사이로

빠알간 불똥들이 폭죽처럼 튀어요.




다섯 살이 되어가는 아들의 리뷰를 먼저 좀 들어 봐야겠다. 요즘, 모든 말 앞에 '안'이 붙어 되돌아오고 있긴 하지만...


재밌겠다. - 안 재밌겠다.

맛있겠다. - 안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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