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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Feb 15. 2023

남자가 원하는 건 딱 하나?

수호신을 믿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강아지 인형 목에 걸린 줄이 끊어지려고 했다. 오래되기도 했지. 이스라엘 여행할 때, 길거리에서 팔레스타인 소녀들이 팔던 줄이었다. 여러 가지 색실로 엮어 만든 줄이... 아주 끊어져 버리게 되면 왠지 많이 아쉬울 것 같다. 다시 사러 가기엔 많이 멀다. 그 소녀들을 찾을 수도 없을 것이고...




이십여 년 전, 이스라엘 여행 당시 히치하이킹으로 곳곳을 누볐다. 이 방법이 워낙이 생활화되어 있어 택시기사마저도,

"아 거기까지 가는 데, 뭘 택시를 타. 히치 해 히치"라고 할 정도였다.


내가 있던 곳은 레바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쪽의 부유한 키부츠였다. 이스라엘에 왔으니 거창한 성지순례는 아니더라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처럼 역사 깊은 도시는 방문하고 가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다. 여행 계획은 심플했다. 버스로 예루살렘까지 쭈우욱 내려가서, 해변을 따라 히치로 돌아오는 것.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가벼운 맘으로 떠났다.


내가 탄 버스에, 예루살렘의 한인 교회로 가는 준비된 한국 여인이 중간 정거장에서 탔다. 여행의 출발이 좋다. 그녀를 따라, 교회에서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에 오면 으레 돌아봐야 하는 곳을 함께 다녔다. 내 정보력이나 실행력으로는 그녀와 함께한 일정의 반도 찾아 먹지 못하고 왔을 풍성한 성찬이었다.


베들레헴으로는 혼자 떠났다. 나의 허점을 간파한 한국여인은 걱정의 눈빛으로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부터 정거장을 잘 못 내려 길 한 복판에서 두리번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황망해하고 있는 나를 보고 누군가 다가왔다. 곧 있으면 이곳으로 자기가 아는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이 올 테니, 함께 가라고 알려줬다. 반신반의하면서 그가 있는 호텔 앞에서 기다렸다. 정말 청년이 등장했다. 베들레헴이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는데, 이 남자를 따라간다고? 이 사람이 대학교 학생인 건 또 뭘로 믿지. 그런 맘이 들면서도 그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다행히, 청년은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이 맞았다. 그는 나를 데리고 베들레헴 순례지를 모두 돌고 자신의 학교도 보여주었다. 아이스크림을 함께 먹고 사진을 찍었다. 못에 박힌 예수님이 누워 계셨다는 돌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지금 딱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다만. 마음이 좀 아팠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을 하다가 지친 모습이, 깡마른 팔레스타인 팔라페 상인의 눈에도 불쌍히 보였나 보다. 그는 나를 손짓으로 불러 옆에 있는 의자를 내어주며 물을 권하고 웃어 주었다.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그게 나란 듯이,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힘들지?'라고 말하려는 듯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팔라페 하나를 주문했다. 정말 힘들고 배고팠는데, 그의 팔라페는 그 와중에도 정말 맛이 없었다. 그의 마음만 받기로 하고 반 이상은 그냥 들고 일어섰다.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기에... 홀로 하는 여행에는, 사람이 많이 그리웠다. 비록, 신체의 허기는 달래지 못했으나, 그는 내 마음의 허기를 채워 주었다. 그래서 그의 맛없는 팔라페는 용서가 되었다.


텔아비브 해변도로부터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당연히 히치로 갈거라 계획해서 차편은 알아보지도 않았다. 어딘지 모르지만, 굉장히 복잡한 곳으로 기억한다. 히치를 할 때는 내가 있는 키부츠를 염두에 두고 그 방향으로, 상대 운전자가 갈 수 있는 만큼 타고 가다 내려서 다시 히치를 한다. 나보다 지리를 더 잘 아는 현지인들은, 자신들의 목적지와 내가 다음 히치를 잘할 수 있는 지점에 내려주었다. 목적지보다 조금 더 가서 내려주고 유턴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렇게 이름 모를 친절을 다리 삼아, 키부츠에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던 중, 딱 봐도 깐깐하게 생긴 운전자와 맞닥뜨렸다. 그는, 이스라엘 히치 역사 경험 중 처음으로, 맞긴 맞지만 듣기에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당신은 왜 돈을 내고 버스를 타지 않는 거지?"


이방인이 자신의 나라에서 공짜로 차를 얻어 타고 다니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고 불만스러운 말투였다. 정류소까지 '태워줄 테니' 거기서 버스를 타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왠지, 이 성난 코뿔소 같은 남자에게 국적을 밝혔다간, 내 나라가 불필요한 욕을 먹을 것 같았다. 당시, 어디 나가서 실수하면 일본인이라고 하라는 농담이 유행했었다. 사실, 까맣게 그을린 나를 보고 동남아시아에서 온 줄 아는 이들이 꽤 많았지만, 믿거나 말거나 그냥 Japan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쓰미마센이라고 쿨하게 쐐기를 박았다.


농담에서나 씀직한 말을 실제 상황에서 써먹었는데도,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다. 기분이 상당히 별로였다. 히치 할 의욕을 잃고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 그에게 했던 사과를 받을 이는 따로 있는 듯하다. 쓰미마센. sincerely...)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려, 다시 히치를 시작했다. 멋진 사륜구동에 느끼한 미소를 장착한 사내가 타고 있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그의 차를 탔다. 그는 연신 웃으며 자신만이 알고 있는 멋진 해변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운전대를 잡은 것은 그였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그는 해변의 모래를 흩뿌리며 해변 끝 한적한 곳에 주차를 시켰다. 자신이 좋아하는 해변이라며. 그리고 내게 말했다. 내가 샤론스톤보다 이쁘다고. 아 놔.... 이 분은 또 왜 이러셔.


'정신차렷!!'

내가 해변에서 달려봤자 사륜구동을 따돌릴 재간은 없다고 판단... 이 느끼한 미소를 구슬리기로 했다. 이봐요. 여행자를 태워주는 당신은 아주 훌륭한 사람입니다. 지금 해가 지고 있으니, 어서 도로로 진입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내는 괜찮다며 웃었다. 여긴 석양이 멋지다고. 내 손 위로 그의 손이 올라왔다. 나는 손을 빼며 웃었다. 나는 결코 샤론스톤보다 이쁘지 않아요. 정신 차리세요. 그는, 샤론스톤보다 이쁘진 않지만,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다며 윙크를 했다. 내 심장은 쿵쾅거렸고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그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내 차 어딨어? 차 가지고 당장 돌아와!" 정도의 대화였으리라.


사내는, 굉장히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차에 올랐다. 나는? 그 차를 도로 탔을 거라고? 그렇다. 난 그의 차를 타고 도로까지 다시 나갔다. 내려서도 한참이나 심장이 벌렁거렸다. 다시 또 히치를 했냐고? 그렇다. 어딘지도 모르는, 땅거미 어둑한 도로에서 별 수 없이 다시 엄지를 세워 들었고, 허름한 차에 호박씨를 까서 차 아무 데나 던지는 터프한 거구의 노신사? 차에 올랐다.


그는 이 시간에 내가 있는 키부츠까진 무리라고 했다. 난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주면 된다고 했다. 그는 키부츠에서 용돈을 얼마 받느냐고 했다. 얼마 받는다고 했다. 내 나라에 와서 일을 하는 데 그것밖에 못 받냐고 했다. 쓸 데가 딱히 없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는, 오늘은 늦었으니, 방을 잡아 주고 내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모텔비를 치르고 그는 떠났다. 우리의 도착부터 그의 출발을 지켜본 주인아주머니는 말했다.


"남자가 원하는 건 딱 하나야. 내가 너라면 그가 돌아오기 전에 지금 당장 떠날 거야."


대체 뭘 믿고. 난 그렇게 안심했을까.


과묵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그가 내뱉던 한 마디.

'난 Barok 이야.' 마치, 난, 너희들이 걱정하는 그런 것에 관심 없거든.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약속대로 다음날 아침에 나타났다. 내게, 지도에서 이름만 본 하이파라는 멋진 도시를 보여주었고, 그의 친구 집을 방문하여 차와 케이크를 함께 했다. 그 집의 아이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녀석의 커다라 눈이 떠오른다. 그는 결국 내가 머무는 키부츠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시작과 끝이 좋았던 이스라엘 일주였다.


어느 날은, 프랑스 룸메이트의 지인이 머무는 성당으로 출발하려던 오후, 그는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나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길을 돌려 가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절묘한 타이밍을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서의 마지막 날, 공항까지... 여전히 호박씨 가득한 차로 태워다 주었다. 그의 차 거울에 달아주고 온 꽃술 달린 노리개는 여전히 달려 있을까.


나의 무용담?을 들은 캐나다 벌룬티어가 용기를 내어 히치 하이킹으로 떠났다가 그날 오후로 바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왜 벌써 왔냐 했더니, 처음 탄 차에 하필,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분이 계셔서, 허벅지로 바로 들어오는 손길에 놀라 당장 내려 돌아왔다고 한다. 캐나다 남자는 그 당시 프랑스 여인을 무척 사모하고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히치가 바로 막을 내렸다.


나는 수호신의 존재를 믿는다. 인간사에 흔히 있는 소소한 협상에서 밀리고 나면, 상대의 수호신이 더 셌나 보다 생각하며 잊는다. '그 사람에겐 그 돈이 꼭 필요했나 보다.' 하면서. 신은 존재하는데, 인종과 나라에 따라 그 형상이 조금씩 달라진 것 아닐까 했다가...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힌두교인 들에게 설교를 들었다. 그래서... 거창하게 신을 논하기보다... 수호신으로 아담하게 사이즈를 축소했다. 이후엔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각자가 믿는 신의 은총까지 함께 나누고자 했다.


아무튼. 수호신의 존재를 더욱 강력하게 믿으며 감사한 마음을 꽃피운 계기는 홀로 떠난 이스라엘의 여행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였다. 마치, 내 힘으로 돌릴 수 없는 수레바퀴를, 필요하면 굴리고 위험하면 막아주는 수호신이 곁에 있었다는 느낌.


지금은 그때보다 더 악화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및 주변 지역 갈등 상황이 안타깝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내겐 모두 친절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행자를 위해, 히치의 징검다리를 기꺼이 놓아준 이들도 고맙고, 웃음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고마웠다. 그래서 그저 먼 나라의 정치 얘기보다 조금 더 가깝게 마음이 쓰인다. 그곳엔, 바록 아저씨도 있고, 팔라페 아저씨도 있기에.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지구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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