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선택
남편과 아들이 술래 잡기 놀이를 했다. 아들은 자지러지게 웃고 넘어지며 기어서라도 아빠의 손길을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의자는 밀리고, 장난감들이 튕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엄마야 나 살려라' 하며 품으로 달려드는 아들과 쫓아오는 남편 셋이 뒤엉켜 요란법석을 떨었다. 이사 온 지 일주일쯤 되어서였다.
그때, 인터폰 벨소리가 울렸다. 순간, 모두 정지했다.
"네, 여보세요?" 조심스럽게 받았다.
"거기 이사 오던 날부터 아주 난리요 난리."
아래층 성난 이웃의 목소리가 울렸을 때, 우리 셋은 풀 죽은 아이들이 되어 버렸다.
다음 날, 장미 화분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벨을 눌러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가지고 갔던 화분과 메모를 현관 앞에 놓아두고 올라왔다. 마주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는 공부방을 했다. 휴일에도,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에서 학부모님들과 종종 마주치곤 했다. 이래저래 아는 사람이 많아지니 외출 시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새로 이사 온 곳에서는, 아무도 모른 채 편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굳이 먼저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게 나았다.
아들은, 걷기보다 뛰기에 특화된 아이였다. 끊임없이 주의를 주어도 아이의 발을 묶어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다시 인터폰이 울릴까 늘 조마조마했다. 무엇인가 떨어지고 바닥으로 굴러가는 소리에도 점점 민감해졌다. 아들의 놀이소리가 커진다 생각되면 바로 '한소리' 해야 했고, 아들은 흥이 깨지기라도 한 듯 짜증을 냈다. 맘껏 뛰어놀 때이긴 한데, 아래층을 생각하면 '싫은 소리' 듣기 싫은 마음이 앞섰다. '배려'라는 명분아래, 소음에 대한 잔소리가 늘었다. 그럴 때마다,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토요일 오후, 조금 전까지도 거실에서 놀던 아들의 목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려왔다. 혼자 인형놀이를 하는가 싶었는데, 열어 놓은 창문으로 웬 아주머니 목소리가 간간이 섞여 들렸다. 누군가 하고 보니, 아래층 사람이었다. 아들은 처음 본 아주머니를 스스럼없이 '이모'라 불렀다. 그녀는, 흙 묻은 장갑을 낀 손에 모종삽을 들고 있었다. 아파트 테라스에 꽃을 심는 중이었다. 챙이 넓은 모자 위로 오후 햇살이 내려앉았다. 아들이 부르면, 분주하던 손길을 멈추고 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햇살 대신 그녀의 환한 웃음이 보였다.
"이모, 지금 뭐해요. 이모, 노란 꽃 예뻐요. 이모, 어디 가요. 이모 어디 있어요?... 이모... 이모."
말을 튼 것도 모자라, 말끝마다 '이모'를 붙여 살갑게 굴다니. 아주머니에겐 아들 또래의 손녀가 있다. 그래서일까 다섯 살배기 아이가 불러주는 호칭이 싫지 않은 듯했다. 아주머니 남편도, 이모부의 호칭을 기대했으리라. 그러나 아쉽게도, 아들은 그 어떤 회유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를 고수했다.
"이모... 할아버지 어디 갔어?"
그럴 때마다 이모의 웃음소리는 커졌고, 이모부도 성이 난 척, 토라진 척 아들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낯 모르던 아래층 이웃, 서로 얼굴 보고 인사도 하기 전에 층간소음으로 어색한 사이가 되어 늘 마음이 쓰였다. 처음 보는 아이. 분명 층간소음의 주인공이었을 아이. 그러나, 웃으면서 이모야 놀자 하니, 기꺼이 이모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와 주었다. 얼마 전, 증손주를 보고 싶다는 남편의 할머니를 위해, 영국에 다녀왔다. 아들이 없던 한 달, 아래층은 조용해서 좋았을 텐데. 아들을 보자마자 그동안 심심했다며 반겨주었다. 아는 아이 발소리에 너그러워진 마음에 감사하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지은 지 십여 년이 되어간다. 요새 짓는 아파트는 개별 테라스나 1층 텃밭을 포함해서 저층의 가치를 높이려 한다. 이에 반해, 우리 아파트는 관리 사무소나 도서관등 아파트 편의 시설이 있는 동에만, 2층 세대 앞쪽으로 테라스를 크게 둘러 조경을 가꾸어 놓은 디자인을 선택했다. 1층엔 아파트 어린이집과 관리실이 있고, 2층부터 일반 세대가 거주하는 구조다 보니, 2층에선 아무리 뛰어도, 아래층에서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게다가, 방 문 앞으로는 아파트에서 관리해 주는 정원을 내 것처럼 누릴 수도 있다. 아주머니는 팔 년 전, 우연히 모델하우스에 들렀다가 조감도를 보고, 일부러 2층을 선택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들 놀이방 창문으로 내다보니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가 덩그마니 꽂혀 있었다. 아주머니는 땅따먹기 놀이라도 하듯, 테라스 코너에 부채꼴 모양으로 돌멩이들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앙상한 가지는 텅 빈 부채꼴을 지키는 허수아비 같았다. 그러더니 다음날엔, 노란 꽃 빨간 꽃을 심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적 공간이 아닌 곳에 무엇을 하나 생각했지만, 밋밋한 잔디보다 보기가 좋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었다.
잔디 위에 소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던 아파트 공유의 테라스는, 이제 철철이 피어나는 꽃들로 화사해졌다. 예뻐진 테라스가 관리실측에서도 마음에 들었는지 별다른 제재는 하지 않았다. 암묵적 동의아래 그녀는 맘 편히 정원을 확장해 나갔다. 둘레둘레 꽃을 심어 이 층 거실 어디에서도 가지가지 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테라스엔 주기적으로 잔디를 깎으러 오는 이들뿐이다 보니, 그곳은 아주머니만의 정원이 되었다.
나무 아래 평상과 캠핑의자까지 놓았다. 그것은 내 유년시절의 시골 할아버지 댁 평상을 떠오르게 했다. 할아버지 평상 위에서, 방금 찌어 뜨겁고 포실한 감자에, 밭에서 갓 따온 토마토를 곁들여 먹곤 했다. 그러다 배부르면 그대로 누워 뒹굴거리던 여름방학 오후. 오랜만에 본 평상은, 어린 날의 평화로움을 함께 불러왔다. 더운 여름날, 평상 위에서 수박을 쪼개먹는 아랫집 내외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커다란 항아리 뚜껑에 받아놓은 물 위로, 새들이 목을 축이고 목욕도 하러 바쁘게 드나든다. 아침이면, 요란한 새소리에 숲 속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아들은 볕 좋은 여름날, 꽃밭에 물을 줄 수 있도록 초대를 받곤 했다. 층간 소음 걱정 없는 개인 정원에서 이모와 맘껏 공을 차고 놀기도 했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감사했다. 그러나 언제든 내 맘대로 내려와 놀 수 있는 곳은 또 아니다 보니, 마당이 갖고 싶은 마음은, 아들이 신나게 놀고 온 날 더욱 간절해졌다.
어느 날, 벨소리에 문을 여니 상추 가득한 바구니와 오이 두어 개를 챙겨 온 2층 아주머니가 있었다. 오이가 잘 자라, 여름 내 잘 따먹고 있다며 나눠주었다. 토마토가 영글고 호박 넝쿨에서 실하게 열리는 호박을 볼 때마다, 꽃피고 새들이 지저귀는 정원이 있는 곳에서 아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동적인 에너지를 억누를 필요 없이, 달리다가 넘어져 무릎에 생채기가 나더라도 괜찮을 마당. 아들이 '내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봄이 오면 꽃을 사러 가야겠다. 내 마당에 심을 꽃은 아니지만, 아들이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심을 꽃이다.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는 나 대신, 정원에서 흐드러지게 꽃을 피워주는 분을 이웃으로 둔 것도 복이 아닐까. 비록, 아직 '내 정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들이 빨갛게 노랗게 꽃 피고 지는 것을 보며 자랄 수 있어 고맙다. 아들의 마음속에, 신나게 달려도 괜찮은 '정원'의 꿈이 함께 자라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