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먼저 가시게요?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에 있는 2차선 도로. 편하게 걷는 보폭으로 스물 다섯 걸음이 채 되지 않는다.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 서면, 투명인간으로 변신을 하는지, 차들은 '일단 통과'를 한다. 다섯 대를 보내고 나서야, 차가 뜸해져서 길을 건넌다. 차들이 멈춰주지 않아, 아이들이 중간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봤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건널목을 건널 때마다 불쾌감이 쌓여 갔다.
평일 오후, 병원에서 나와, 전화를 받으며 건널목에 들어섰다. 양쪽으론 모두 차가 없었고 조금 멀리서 하얀 SUV가 오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차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뒤따라오던 신랑도 차의 속도를 감지하고 길을 건너려는 내게,
"STOP."을 외쳤다.
험하게 운전하는 차들을 보면서, 화장실이 급한가 보다 생각하며 넘기곤 했었다. 내 운전이 서툴러 실수가 많다 보니, 운전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내 앞가름도 겨우 하는 중이기에. 초록불임에도 우회전 차량이 서지도 않고 앞을 지나갔다. 운전석을 보니 몸을 앞으로 내민 채, 잔뜩 긴장한 여인이 보였다. 그 맘을 알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신호등도 없는 도로에서 그토록 속도를 내며, 건널목에 들어서려는 사람보다 먼저 가야 할까? 그 정도 속도를 감지한 사람이라면, 건널목에 내딘 발도 거둬들일 판이었다. 그랬다면 차는 속도를 줄일 필요 없이 '쌩' 하고 지나갈 수 있었겠지. 그런데, 오늘은 쟁겨놓은 불쾌감이 고개를 들었다. 건널목에 들어 선 것도, 사람이 먼저였고, 설령 차가 가까이 왔다 해도 건널목에선 사람이 먼저 가는 게 맞다고, 도로 교통법규에도 명시되어 있으니. 역시 사람이 먼저였다.
도로 위에서, 차와 사람의 대결놀이도 아니고... 매번, 이게 뭐람.
'차 속의 운전자님. 분명 건널목으로 들어선 사람이 보였잖아요. 그러면 최소한 속도는 줄여 주셔야죠.'
나는 양팔을 벌려, 이 메시지를 바디랭귀지로 전달했다.
운전자는 돌아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그랬더라도, 그날. 건널목을 사람이 먼저 건넜다.
문득... 운전뿐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보이면, 이익을 먼저 채우고 싶은 그 마음의 속도를 잠깐 늦춰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