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지 말자.
그녀와 그녀의 신랑은 이제, 머리 검은 짐승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야박한 세상인심은, 믿고 빌려 준 부부가 어리석었다 했다.
그 돈이 돌아왔어도 어리석었다 했을까. 사람에 대한 믿음으로 그들이 더욱 돈독해졌어도 어리석었다 했을까. 결과론적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이미, 자신들의 실수에 대한 자책,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막역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한 아픔은, 지나가는 이들의 말들이 더해지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 쉽게 큰돈을 벌겠다고 투자에 발을 들인 것도 아니고 그저, 급한 사람 돕는 마음이었던 그들이었기에... 아들 셋을 데리고 방 2개 허름한 빌라로 이사할 때의 원통하고 서러운 맘은 하늘밖에 호소할 곳이 없었다. 하늘은 귀한 넷째를 보내 부부를 위로해 주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2021년 12월, 엄마표 영어 유명 강사 강연에서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강의하는지 궁금해서 신청을 해보았었다. 코로나 시국에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의 엄마들 백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이런 강연은 처음이었는데, 강연 전 거의 두 시간이 보험 광고로 채워졌다. 진행자는 경험이 많아서일까, 엄마들을 다루는데? 능수능란했다. 듣고 있자니, 무엇을 팔든 살 수밖에 없을 만큼 조리 있었다.(아는 동네 엄마 두 분은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귀가 얇은 나만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앞 좌석에 앉은 분 키가 커서 뒷모습에 자연히 시선이 많이 갔다. 펌이 풀린 머리를 쓸어 올렸고 검은색 패딩에 검은 바지, 검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커다란 검은 가방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보험 선물 이벤트 시간에 그녀가 아들 넷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행자는, 아들 넷 엄마... 아무리 옷에 신경 쓸 겨를 없어도, 이렇게 검은색만 입고 다니면 밤에 위험하다는 농담을 하며, 마사지 팩을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팩이 어디 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에 대해 호기심이 조금씩 생겼다. 아들 넷을 키우는 엄마의 생활은 어떨까. 그 바쁜 중에도 엄마가 영어를 해주는 것에 관심을 둘 수 있다니, 대단하단 생각도 들었다. 우연이었을까, 우린 보험 가입 테이블에도 함께 앉게 되어(그렇다. 보험 광고에 넘어갔다.) 잠깐의 틈을 타, 그분께 아들 넷 키우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힘들다고 말했다.
그날 마침 명함을 가져가지 않아, 강연이 끝나갈 때쯤 노트에 급하게 쓴 메모를 건넸다.
"엄마영어 코칭 해드리고 있는데 연락처 부탁드려도 될까요?"
사실, 내가 누군지도 모르니, 되었다고 할 수도 있건만 그녀는 순순히 번호를 적어 주었다. 문자로 명함 사진을 다시 보내 놓았으나, 그녀로부터는 '당연히' 연락이 없었다. 내쪽에서 세 번쯤 시도한 전화는 매번 모두 '어디세요?'로 시작했다. 그렇게 전혀 모르고 지내던 우리는 세 번의 통화 끝에 만남을 갖기로 했다.
2022년 1월 당시,
첫째 14살 중 1
둘째 9살 초2
셋째 7살 유치원 졸업반
막내 6개월
아들 하나도 힘에 부쳐 쩔쩔매는 내게, 아들 넷 엄마에게 '존경'이란 단어가 절로 나왔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가장 여유로웠을 첫째 때는 책도 많이 읽어주고 영어노출도 제법 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상이 '전투'가 되었을 세 동생들의 육아에 밀려 꾸준해야 할 시스템이 무너져 아쉽다고 했다.
그녀와는 주로 아이들의 영어 얘기만 나누었을 뿐 그 외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간혹, 사정이 있어서 지금 좀 힘들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연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본인이 꺼내지 않는 속사정을 묻지 않았다. 나 역시도, 고시원 매도에 속이 썩어갈 즈음에, 그저 조금 힘든 일이 있는데 지나가겠죠라고만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었다. 다만, 어떤 사정인지 몰라도, 그저 아들 넷 영어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아들의 작아진 옷가지와 더 이상 쓰지 않는 유아용품은 새로 생긴 동생 몫이 되었다. 그녀는 고마워했다. 아들 넷의 영어 자립이 이루어지면, 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크게 맘 쓰지 마시라 했다.
요 며칠, 자꾸 그녀가 생각났다.
전화를 받은 그녀의 목소리가 이전과 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내 생각이 나서 오늘 전화하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사는 앞 단지 아파트 계약을 했다고 한다. 일 보고 다녀가면서 여러 번 생각났었다고. 얼마 전, 빌라에서 신축 아파트로 이사 가서 한결 낫다는 말을 들었는데, 또 다른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의아해하는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는 빌려주었던 돈을 아파트로 대물 변제받았다고 알려주었다. 정말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고, 하느님이 도우셨다고 좋아했다. 아파트를 대신 받을 정도면 대체 얼마를 빌려줬던 거냐고 했더니, 오억이라고 했다.
5억!! Really??
돈을 빌린 그 사람은, 전에 보여 준 적 없던 달의 어두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돈 없으니 배 째라고. 이런 스타일 제일 싫다. 대개 이런 경우, 집을 경매에 넘기거나 잠적을 해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다행히, 그녀의 수호신은 그녀를 지켜 주었다. 돈을 빌려줄 당시에 차용증은 받았지만, 그때 받아 놓지 않았던 대물 변제 계약서를 법무사를 통해 받을 수 있었고, 이년이 넘게 끌어오던 채무 변제를 얼마 전 아파트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아, 듣는 내 속이 다 시원해졌다. 그녀와는 정말 인연이었을까. 그녀가 변제받은 집도 마침 내가 사는 단지보다 지대가 약간 높은 앞의 단지라니.
그녀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경쾌하다. 마침 이번주에 신랑 생일이 있어 주말에 가족이 놀러 갈 계획을 세웠나 보다. 너무 신나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심정... 내 일이 아니어도 함께 신난다. 내일은 그녀가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자기도, 이제 점심 한 끼는 맛있는 걸로 먹을 때가 되었다면서. 오랫동안,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어떻게 아이들 영어를 집에서 해주려고 나와 소통할 수 있었을까 물었다.
"애들은 키워야죠. “
그렇지. 애들은 키워야지. 당연한 걸 물었다.
믿고 빌려준 5억이 돌아오지 않을 때...
내켜하지 않던 신랑을 설득한 것이 그녀였기에, 신랑이 이혼하자 해도 별 수 없겠다 생각했었다 한다.
그러나,
기꺼이 N잡러가 되면서도, 자신을 원망하지 않은 신랑. 부부는, 더욱 견고한 그들의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
어느새 자신의 키보다 훌쩍 커버린 첫째 아들과, 부족함이 많았던 환경에서도 무엇이든 잘 먹고 잘 자라주는 어린 세 아들들을 보며 어두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그녀.
그들에게 5억이 돌아와 줘서… 참 고맙다.
그녀는, 주머니에 단 돈 5천 원도 없어보긴 처음이었는데, 그나마 아직 젊을 때 겪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아들 넷 키우는 데만 근 15년을 보내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경제공부를 시작하며 '다시' 꿈꾸게 되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한다. 끝까지 악한 마음 먹지 않고, 계약서를 이행해 준 그 사람도 용서했다고 한다.
내일은 그녀와 무얼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photo: 중기 이코노미 <이미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