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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Dec 30. 2022

꼭 뭐가 되어야 해?

나한테 묻는 거임?

2022년에는 책이 나올 줄 알았다.


2021년 여름, 책 쓰기 특강(글쓰기 특강 아님. 모든 건 본인이 기획하고 계획하고 써야 함)을 들었다. 본 수업료 금액이 커서, 등록을 망설였다. '혼자 하면 십 년이 걸리는데, 수업을 듣게 되면 삼사 개월에서 일 년 이내로 투고할 수 있도록 코칭해 준다'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돈 들이지 않고, 혼자서도 열 권씩 책을 냈다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면서 혼자 해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미 십 년째 혼자 버벅거리며 하다 말다 한 이력이 있기에... 아이를 키우며 매번 무너져 내리는 하루 일과를 알기에... 그 말이 구원이 되어 줄 것만 같았다. 출판을 하더라도 몇 쇄를 더 찍어야 겨우 수업료의 '본전'을 찾을 만한 금액이었지만, 이 산을 함께 넘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꼭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간에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힘든 상황이 겹치면서,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나 하고 죽자'라는 생각으로 매듭을 하나 짓고 싶었던 마음이 더 강했다.


이루고 싶은 일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더라. 그래야 힘내서 더 열심히 한다고.

거액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난 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이들에게도 굳이 알렸다.

다시 꿈꾼다고. 책을 쓰기로 했다고.


책 쓰기 수강생 중, 유일하게 엄마표나 영어 관련 책을 출간하지 못한 수강생이 된 채, 일 년 수업 기간이 종료되었다. '시간차만 있을 뿐, 선생님은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위로와 격려를 받으며.


시간차.

그 시간차를 줄여 보고자 지불한 거였는데.

또 혼자가 되었다.


알리지나 말걸.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만.

그래도.




유튜브를 보다 보면,

000 출신 대학 000가 알려주는 '이것'...

'이것'을 하면 영재가 된다....

상위 1%는 '이것'을 하고 있다...

고수 엄마들만 알고 있는 '이것'

'이것'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과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 많다.

하나를 클릭하면, 친절한 알고리즘이 '이것'과 관련된 영상들을 주르륵 함께 띄워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에 빠져보란 듯이.


그들만 알고 있을 것 같은 '이것'이 대체 뭘까. 궁금한 사람들이 많은 지, 조회수가 높다. 구독자도 많다. 좋은 콘텐츠도 많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문득 다른 생각이 고개를 든다.


꼭 영재가 되어야 해?  


'이것'의 공통점은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인 경우가 많았다.

기본으로 돌아가 기본을 충실히 꾸준히 하는 것.

부모가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니,

아이들이 따라 하더라는.

내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시작했더니 아이가 변하더라는.

듣기를 온전히 충실히 열심히 해주었더니,

귀가 열리더라는.

책을 매일 읽어줬더니 아이가 책을 좋아하더라는....


마법사의 매직봉이 휘리릭 마술을 부리는

‘놀랍고 간편한' 비법을 찾다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잊고 있었던 '본질'로

매번 돌아온다.




만보 걷는 발걸음을, 인스타에 매일 올리는 친구가 있다. 만보를 걷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걷는다. 걷는 영상을 보는 사람 없어도, 좋아요가 없어도 매일 올린다. 어느 날은 하얀 운동화를 신고, 구두를 신은 날도 있고. 눈길 위를 걷기도 하고 보도블록 위를 걷기도 하고.


<포레스트 검프>에서 '그냥' 뛰기 시작한 톰 행크스를 따라 뛰는 행렬이 늘듯, 매일의 행보를 지켜보는 이들이 하나 둘, 함께 걷기 시작했다. 좋아요가 늘고, 구독자도 많이 늘었다. (친구는 뭘 하든 꾸준히 잘하는 편이라, 걷기 이외의 꾸준한 다른 활동으로 유입된 구독자 수도 포함 되었으리라)

뭐가 되려고 걷기 시작했다면, 좋아요 없는 날 다리 힘이 풀렸겠지. 그녀는 개의치 않고 걷고 또 걷는다. 그 매일의 힘이. 보고 있는 이에게도 전해진다.


거금의 수강료를 내고도 불발되었던 출간.

적지 않은 연간 회비를 내고도 손해만 봤던 부동산 투자 컨설팅.

손해보고 사람잃고 마음 아팠던 고시원 매매.

비싸게 인생 수업료 지불하고 ‘글감' 하나 얻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일이 잦은 편이지만,

그래도 감당할 수 있음에 감사하니

차라리 맘이 편하다.

이루지 못한 자의 합리화인가.


2022년 책이 출간되었다면,

브런치를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브런치 시작 안 했어도 괜찮으니

책이 출간되는 게 더 좋은 일이었을까.)

아무튼.

힘 빼고 쓰기.로 했다.

비워내듯이 쓰기.로 했다.

쓰다 보면 책이 되는 순간이 온다면.

감사하기로 했다.


2023년.

꼭 뭐가 되어야 한다면.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뭐가 되든 말든,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함.

일상의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매번 파닥거리지 않는 여유로움.

더 많은 아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능력.

그냥.

내가 되어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가는 길에 좋은 인연이 허락되어 흐뭇한 2023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달려야 할 때는,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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