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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May 10. 2023

니가 더 무서워

그걸 몰랐네...

That I was just as strange to them
As they were strange to me!


보도블록 위를 지나가는 작은 곤충. 풍뎅이였을까. 푸른빛의 등이 반짝였다. 이쁘다 생각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보는 중, 아들은 말릴 새도 없이 그 작은 생명체를 운동화로 꾸욱 밟았다.


"Hey... Why did you do that?" (여보세요... 왜 그러셨어요?!)

"Scary" (무서워서: 곤충이 scary 해서 내가 scared 했어 의 포괄적 표현)


대체, 이 작은 곤충의 어디가 무서웠을까. 반짝임이 아들의 그 무언가를 자극한 걸까. 호기심이든 공격성이든. 아들에겐, 풍뎅이보다 수백 배는 큰 네가 더 무서웠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신랑을 만났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긴긴 여름밤, 노천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풀숲에서 무언가가 쓰윽 등장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심장 약한 여인이라, 소스라치게 놀라 오두방정을 떠는 내게... 고슴도치가 더 놀랬겠다고 조용히 말했던 그 남자. 그의 시선이 신선하다고 느꼈었다. (다음 생엔, 놀란 여인을 먼저 챙겨주는 시선의 남성을 만나보고 싶다.) 아무튼, 무방비 상태에서, 생전 처음 맞닥뜨린 고슴도치와는 서로의 뾰족함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잘 알지 못하는 상대. 게다가 으슥한 밤에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누군가와 자꾸 마주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전혀 다른 모습... 윗도리도 없이 바지만 돌아다니는 괴상한 정체. 심장이 철렁하고 식은땀이 흐르고... 하루 이틀 반복되면 피폐한 모습으로 밖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바지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피할 수 없이 맞닥뜨린 상황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 바지 양반. 아마 속으로 그랬겠지.


'네가 더 무서워.'


Those pants began to tremble.
They were just as scared as I!



<What was I Scared of?> by Dr. Seuss 

https://www.youtube.com/watch?v=7v7LFjLIZ3s


동물의 세계에선, 약한 위치에 있는 생명체들이 공격을 당할까 봐 실체보다 무섭고 커 보이는 위장술로 보호막을 치는 경우가 많다. 그 마음속엔, '어흥, 내가 무섭지' 보다는 '네가 더 무서우니까... 저리 가버려'... 가 더 간절하겠지. 그 마음 도닥여 주면... 높이 쌓아 올린 방어기제가 살짝 낮아지려나. 어린왕자의 장미가 고백하듯... 최소한, 상대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려나.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이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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