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와 소통 가능한 걸로
오랜만에 아는 대표님을 아들과 함께 만날 일이 있었다. 아들에겐, 첫 만남이지만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해 주시니 바로 장난이 시작되었다. 대표님은, 아들에게 한글을 쓰지 않으셨다. 한국 억양에 짧은 단어 정도이지만, 영어로만 소통을 해보려 하셨다.
한국에서, 아들은 엄마가 만나는 어른들과 당연히 한국말로 소통을 한다. 그런데 아들은, 비록 단어만 던져지는 소통이지만, 본인에게 한국말을 전혀 하지 않으니 대표님과는 영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표님이 나와 한국말로 소통을 하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쓰는 것이 신기했다. 아이들은 보통 자기중심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54개월의 이중언어를 하는 아들은, 상대가 자신과 소통하려는 언어에 ‘맞춰' 줄 수 있는 능력? 배려? 자동반응? 기능을 갖추고 있음을 보았다.
한국말 가득한 환경에서, 짧은 문장이나 단어정도의 소통이었다. 아들이 평소 한글보다 영어를 훨씬 더 많이 쓰던 상황도 아니었기에, 아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아들은 집에서 아빠에게 말을 걸 땐 영어를 쓴다. 어휘가 모자라면 한글과 혼용해서 쓰고, 아빠한테 번역해 주는 단어를 듣고는 반복해 말하면서...'그래 내 말이 바로 그거야'란 식으로 다시 말을 한다.
한글과 영어 모두, 딱히 글자를 가르치고 있지는 않다. (알파벳은 워낙이 좋아해서 그냥 혼자 영상을 보고 어려서부터 말하고 쓰는 것을 어려워하진 않았다.) 한글은 유치원에서 하는 정도이고, 영어의 사운드를 기회가 있으면 들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책 읽어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아들이 이중언어를 어떻게 얼마만큼 잘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래도, 소망해 볼 수 있다면... 이탈리아 레지오 에밀리아에서 번역을 맡아 주셨던 선생님처럼, 한국말과 영어로 바뀔 때 그 경계가 느껴지지 않게 언어가 자연스러우면 좋겠다. 상대조차도, 아들이 자신에게 맞춰 편한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만큼. 숨 쉬듯 자연스러운 두 언어가 아들에게 발현될 수 있기를.
문득, 우리 아이들도 영어로만 소통을 해야 하는 AI가 있다면, AI를 위해서 뇌 속에 회로 하나를 마련해 주지 않을까. 언어가 사람 사이에 소통을 위해 생겨난 것이라면, 아이들도 소통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언어에는 관대할 것 같은데... 여전히 어려운 일일까. 한국에서 영어를 즐겁고 편하게 한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