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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May 21. 2023

비자발적 홈베이킹

후덜덜 빵가격 현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집으로 바로 가려 했는데, 아들이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점심도 먹지 않은 터라, 겸사해서 차를 세우고 상가 쪽으로 향했다. 처음 본 도시락 집이 생겨 들어가 보았다. 닭 가슴살에 아보카도, 얇게 썬 계란 지단이 덮어져 있는 도시락 밥이 6900원이었다. 입맛에 아주 맞았거나, 배가 어지간히 고팠는지 나름 잘 먹은 편이어서 소식하는 아이 기준으로 만족스러웠다. (밥 양에 비해 닭가슴살과 아보카도 양은 상당히 적어, 성인 기준으론 불만족스러울 수 있으나... 요즘 웬만한 식사는 만원에서 그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가격대비 크게 기대할 순 없겠다.)


주변에 마땅한 베이커리가 눈에 띄지 않아, 청과점에 들러 아보카도와 젤리를 사서 먹고, 한 켠에 만들어진 수로에서 물장난을 한참 한 뒤 차로 돌아왔다.


"케이크 먹고 싶어."

"..."


잊지 않고 있었구나! 케이크를 사지 않았어도 별 말이 없기에, 젤리의 당성분으로 퉁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케이크... 케이크... 케이크... 뒷좌석에선, 케이크 먹고 싶다는 신경질적인 노랫소리가 카랑카랑 울렸다.

(골골한 위장은 어미를 닮고, 달달한 거 좋아하는 입맛은 아비를 닮았구나.) 이대로 귀가하면, 쉼은 없다.


얼마 전, 동네의 대형 슈퍼 옆에 2층까지 100여 평 규모로 운영했던 베이커리가 문을 닫았다. 골목을 돌며, 조각 케이크 살 만한 곳을 찾았으나 오늘따라 눈에 띄는 곳이 없었다.


'Have a good dessert'


뒷골목, 아주 작은 가게가 보였다. 나무 격자 문이 분위기 있어 보여 들어갔으나... 외부 인테리어에 비해 판매하는 제품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일반적인 베이커리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갭시장을 공략하려는 것이었을까. 그렇다고 간판처럼, 전문적인 디저트샵도 아니고. (비싼 임대료 내며 고생했던 경험이 있어, 문득, 사장님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아무튼, 고를만한 것이 딱히 없었지만, 아들은 파운드케이크 조각을 선택했고 스콘 좋아하는 신랑을 위해 아이 주먹만 한 스콘을 골랐다.


런던의 물가도 만만치 않았지만, 한국의 빵가격도 대단해졌다. 가로 세로 길이가 7 cmx 5 cm 나 되었을까. 두께는 1.5센티정도. 가격은 4200원. 스콘 여러 번 사봤지만, 개중에 가장 작은 사이즈. 가격은 3500원. 원재료 가격이 상승했다 하고, 식자재 값도 껑충 오른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빵 가격 비싼 것도... 인식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처럼 절실히 홈베이킹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 때가 있는 법이겠지.


하긴, 얼마 전 카페에 딸린 베이커리에서도 크로와상 2개, 페스츄리 1개, 소금빵 1개에 1만 5천 원에 가까운 가격이었다. 케이크가 더해지면, 가격은 더 올라간다. 층고가 어마어마하게 높고 주차장도 널찍해 드라마 촬영도 했었다는 베이커리 케이크는 냉동이었음에도 5만 원이 넘었었다. 신랑이 좋아하는 빵 몇 개 집고 샐러드 추가하여 음료를 계산하면, 이 또한 5만 원대였다. 그럼에도, 이 카페도 얼마 전 영업을 종료했다. (대체, 빵가격을 얼마로 해야, 카페 운영이 가능한 걸까...)


한국 빵값 특히나 더 비싸다고 이미 난리였는데, 왜 이제 와서 뒷북을 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랴. 그동안엔, 참 비싸구나... 정도로 넘어가던 현실이 도저히 안 되겠구나 로 돌아선 것이 지금인 것을.




아들을 깨우며, 마들렌을 구워주겠다고 속삭이니, 엉덩이부터 씰룩인다. 달달함을 미리 당겨 기분을 업한 뒤, 아침밥을 먹였다. 어제 하루 먹어본 한약이 벌써 효과가 있는 건지, 기분 탓인지, 어제오늘 연이틀, 밥 싫단 소리는 안 하고 있다. 지성이면 감천이어라... 에헤라 디야.


진심. 내 손으로 구워 주려고 했다. BUT. 대대적인 집안 가구 배치 변경과 청소로... 신랑찬스를 썼다. 얼떨결에 오케이를 하고 하얀 설탕이 없어 흑설탕으로 대충 만든, 노랗지 않은 마들렌. 설탕 적게 넣으란 말을 잊어 다소 달긴 하다... 그래도 어제의 파운드케이크 가격을 생각하면, 집에 있는 재료 밀가루+버터+계란+설탕만으로 큰 이득을 본 느낌이다. 아들도 좋아라 하니, 이제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


스콘도 구워봐서... 맘만 먹으면 그리 어렵진 않으리라.

신랑. 담엔 내가 구워줄게. 원하는 사이즈, 말만 하시게.

Thank you for your brown Madele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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