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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May 20. 2023

빨간 공룡의 비애

어머니, 저 여기 있는데요...

 미술학원을 끝내고 건물 밖으로 나오자 토요일 햇살이 눈부시다. 마침, 동네 상인들을 지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료로 해주는 페이스페인팅과 풍선 아트 부스에 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들은 빨간 하트풍선을 받아 들고 기분이 한층 좋아졌다. 눈부신 해를 풍선으로 가리고 세상이 빨갛다며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아이를 재촉해 신호가 긴 건널목을 건너는데, 곁으로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엄마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의 대화가 피할 수 없이 귀에 꽂혔다.


아이: 빨간 공룡 갖고 싶었는데...

엄마: 빨간 공룡이 어디 있어. 공룡은 초록색이야.

아이: 공룡은...


젊은 엄마는 걸음이 빨랐고, 아들은 자꾸 뒤처져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른다. 아이가 공룡색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우겨 엄마가 수긍했을 수도 있고, 아이가 공룡은 모두 초록이구나 했을 수도 있겠다. 궁금한 것은, 아이 엄마는 왜 빨간 공룡의 존재를 부정했을까이다. 아들 상상 속에 버젓이 살아있는 빨간 풍선의 공룡이 보이지 않았더라도... 공룡은 초록이라고 할 건 또 뭔가. 둘리만 떠올랐던 걸까. 아들이 가진 초록 풍선의 공룡이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하려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영유아기는 개인의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중요한 시기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비판 없이 수용되면서, 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아이가 성장하면서, "왜 그래야 하지?"라는 질문을 통해 자신의 색깔과 중심을 찾는 것이 인생이라 해도. 때론, 불필요했던 한 마디로 귀한 시간을 허무하게 잡아먹기도 하기에...


빨간 공룡의 부정이 이렇게 크게 확대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와 비슷한 접근이 아이들에게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관습적인 고정관념에 기반하여 아이들의 사고를 가로막고 건강한 성장을 (나도 모르게) 제한하는 것. 정확한 근거 없이 (선입관에 근거해) 부정부터 하는 습관.


2022년 12월 7일 자 BBC 코리아 보도에 따르면, OECD 성별 간 임금격차는 한국이 26년째 1위를 달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OECD가 공개한 '성별 간 임금 격차(gender wage gap)'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31.1%로 조사국들 중 가장 컸다. 남녀 근로자를 각각 연봉 순으로 줄 세울 때 정중앙인 중위임금을 받는 남성이 여성보다 31.1%를 더 받았다는 뜻이다. 한국은 1996년 OECD 가입 이래 26년 동안 줄곧 회원국들 중 성별 임금격차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2021년) OECD 38개 회원국들의 평균 성별 임금격차는 12%였다.


이렇게 오래도록 영예? 의 1위를 지킬 수 있는 원천이 어디에 있을까.




유치원 수업을 참관하던 어른이, 그림 그리고 있는 아이에게 물었다.


"무얼 그리고 있니?"

"신이요."

"신을 본 적이 있니?"

"아뇨."

"신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생긴 줄 알고 그리지?"

"기다리세요. 곧 그림이 완성되면 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2010년 영국 브리스톨대 마이클 밴턴 교수, 베이징 척추동물고생물학 및 고인류학연구소 중허 저우 교수 등 연구진은, 시노사우롭테릭스 깃털에서 색소세포 멜라좀을 발견했고, 멜라좀을 분석해 색을 찾아내는 방법을 고안했다. 공룡 화석에서 발견된 멜라좀은 검은색과 회색을 표현하는 유멜라노좀(Eumelanosome)과 빨강색을 표현하는 피오멜라노좀(Pheomelanosome) 2가지로 나뉜다.
출처 (https://www.newspenguin.com)


공룡의 색을 대표하는 두 가지 색 중의 하나 빨강. 아이의 상상 속 색깔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연구진에 의해 밝혀져 어찌나 다행스러운지... 부디 그 아이가, 본 적도 없는 신을 그려내는 아이처럼 당당하게 빨간 공룡을 지켜내며 성장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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