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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May 26. 2023

씨앗 얘기 나온 김에

한 줄 끼워넣기

하얀 스크린 위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두어 시간씩 바라만 보고 있다. 마감 기일은 다가오는데, 엉켜 있는 생각이 풀리지 않으니 자꾸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식은 차를 데우고 또 데운다. 울리지 않는 폰을 만지작 거리며 딴 세상도 기웃거려 본다. 주전부리는 또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실타래는 어디론가 던져 버리고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산만한' 행동으로 표출된다.  


한 번쯤.

글을 써내야 하는 일이 있었다면, 이런 경험 한 두 번은 있지 않을까.




한글 문장을 써놓고 영어로 바꿔보라는 영작 문제들은 어떨까.

아이들 영작문 책을 보면, 밑줄 위의 텅 빈칸이 야속하다.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달려드는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 하얀 종이 까만 밑줄 바라보며 눈만 깜박일 아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목도 마르지 않으면서 자주 물을 마시고, 화장실도 여러 번 가고 싶은 게... 사실 다 이유가 있었다.


물론, 패턴 연습 삼아 반복적인 문장을 주인공과 사물을 바꿔 적는 경우, (재미는 없더라도) 어렵지 않게 문제를 푸는 아이들도 꽤 있다. 다만, 배운 내용과 관련하여 말로 물으면, 말로 답이 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웃풋이 종이 위에서만 이루어지니, 영어는 좀처럼 언어로 다가오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와 공원이나 숲에 가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기회가 더 많다. 

먼저, 편하게 눈에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들을 나열해 본다.


stone, leaf, seed, cloud, wind...


아이들이 맘에 드는 것을 선택한다.

선택한 것의 시점에서 따라가 본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어제, 씨앗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도 씨앗을 선택해 보기로 했다. 부디. Please.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보고, 그 길이에 놀라 손절하지 마시길. 단어나 문장보다, 그 이야기가 전개되어 가는 과정에 집중해 보자. 중요한 것은, 흐름이다. 짧아도 상관없다. 한 줄이어도 상관없다. 아이들의 생각이 들어간 한 줄. 그 생각의 흐름이 연결이 되면 그땐 말릴 수 없는 서사가 된다. (한글 스토리에 맞게 문장을 맞춰 끼우는 것이 아니다. 영어로 먼저 쓰고,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을 뿐이다. 영어로만 던져보자. 이것을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가 아니라...)


처음엔, 짧게 던지듯, 아이와 그냥 아무 말 잔치라 생각하고 시작해 보시길 바랍니다. 얌체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듯, 재미가 붙으며,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릅니다. Please, try.  


일인칭 씨앗 시점.


나는 씨앗입니다. 작은 씨. 과일 속에 살아요. 캄캄하군요. 새가 왔어요. 열매 쪼아 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아무래도 여긴, 새의 뱃속 같은데 안락하진 않아요. 출렁출렁. 수영을 하다가 스르륵 미끄러져 나가요. 와, 파란 세상이에요. 하늘이군요. 슈우웅... 톡. 땅 위로 돌아왔어요. 누가 내게, 물을 좀 주세요. 거기요. 미안하지만, 해님을 가리지 말아요. 바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좀 주세요. 친절한 당신 덕분에, 나는 싹을 틔우고 중력을 거스르며 자라납니다.


I am a seed.

I am small.

And I am red.

Yes, I am a small red seed.


I live in a fruit.

It is dark here.


A bird.

She is pecking, I've heard.


I am in the bird.

Not a comfy bed.


I am swimming.

I am sliding.


Wow, I can see blue.

It is sky.


I am falling.

Into the ground.


Please.

Give me some water.

Give me some air.

Give me some sunlight.

Give me some time.


You are so kind.

I can grow.

And grow.



(2008년, 쑥쑥 에 올렸던 묘사하기 부분에서 일부 '자기 복제' 하여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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