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베이팅 세계 챔피언
소통을 이어가려면,
서로 간의 차이가 우리를 작아지게 하기보다
성장하게 한다는 믿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김미경: 언어가 안 돼서 억울해도 못 싸울 때 어때요?
서보현: 저는 그때, 자신을 배신하는 느낌이었어요.
8살 때 호주로 이민을 간, <디베이터>의 저자 서보현 님과의 인터뷰 중에 나온 말이다. 영어로 아직 말을 못 해, 또래 아이들과의 소통에서 일단 '동의'의 생존카드를 쓰면서 갖게 된 생각이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른데, '일단' 살아남기 위해 나를 감추기로, 8살 소년은 결심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곧 관계의 차단이었다. 또래와 소통하기 위해 호주 아이들이 말하는 데로 '끄덕끄덕'은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일방적 동의는 우울하고 외로웠다. 공간 속에 함께 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아무 관계없는 관계를 경험한 그. 그가 디베이팅 세계 챔피언이 되고, 하버드에서 디베이팅 코치를 하며 <디베이터> 책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러나 여기에 그의 이력을 열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서보현 디베이팅, 검색어를 치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똘똘이들을 모아놓은 중에서도 얼마나 우수했는지 잘 알려준다. 그리고, 영악한 알고리즘은 디베이팅과 학습을 연결시켜 당장 토론식 학습을 해야 할 것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들쑤신다. 토론이 공부에 도움을 주고, 대학을 가는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던 그가 어떻게 하면 디베이팅 챔피언이 되었는지 그 방법에만 몰두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의 토론 '기술'만 전수받으려 책을 구매한다면, 그것은 구매가 아니라 기부가 될 확률이 높다. 그는, 김미경 강사의 표현처럼 언어를 아프게 배운 사람이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남들보다 몇 배의 공을 들여 언어를 익힌 사람이다. 토론은 "자기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고통을 아는 사람" 이 선택한 생존법이었다. 책 제목이 디베이트가 아니라, 디베이터다. 방법 이전에 사람을 먼저 이해해 보자.
그가 잠재력을 터뜨릴 수 있었던 계기는, 5학년 때 선생님 덕분이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토론을 하면서 상대가 말을 할 때 방해하거나 가로채지 않고 끝까지 듣도록 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이민자라고 해서 생각하는 능력조차 미숙한 것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내성적 성향이라고 해서, 표현이 욕구가 없는 것 또한 더더욱 아니었다. 토론은, 밤새 열심히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따박따박 자신의 논지를 펼쳐갈 수 있는 도구였고, 그가 말을 끝낼 수 있도록 해주는 방패막이였다. 짜릿했으리라.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마지막 단어를 내뱉고 숨을 들이쉴 때.
이 글은, <디베이터>에 대한 서평이 아니다. 누군가가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느꼈을 감정과 절실함으로 밤을 새웠을 치열함에 대한 인정과 응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알고 나니 조금 더 알고 싶어지는 사람이라 끼적여 본다. 미디어에서 하도 상위 1%만 강조해서, 광고는 그닥 보고 싶지 않다. 토론과 책이 중요하다는 것, 마치 오늘 알았다는 듯이 이 때다 싶게 '강요'하는 것이 마뜩지 않다. 하지만, 인생드라마를 좋아하는 일인으로, 토론하기 좋아하는 일인으로 그의 책을 읽어보고자 한다.
한 줄 추가하자면, 우리 아이들은 언어를 아프지 않게 배웠으면 좋겠다. 물론, 누군가를 성장시킨 원천이긴 했으나, 그렇게 언어를 배운다고 모두가 디베이팅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소중한 어린 시절... 영어에 대해 행복한 기억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즐겁게 배운 언어로 자신들의 세계에서 챔피언이 되는 것도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