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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Jun 02. 2023

사랑으로 타 준 커피

덕분에, 글 권하는 사회에 빠지다.

"Mommy, coffee!"

"What! Really? Wow!! Is this for me??!"


어제 오후 네시쯤, 55개월 차 인생을 살고 있는 아들이 커피잔을 들이밀었다. Hmmmm 따로 원하는 게 있어 보이진 않는데... 표정도 온화하고 상냥하다. 조금 전, 샤워 문을 급히 닫아 어미 등을 아프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난데없이 등장한 커피의 근원지를 마음대로 추정해 보았다.


아들의 첫 바리스타? 데뷔 과정 상상해 보기.


1. 손잡이 달린 작은 커피잔을 정수기에 올리고, 반대편 선반으로 올라가 정수기 뒤쪽에서 온수 버튼을 누른다.(의자를 이용하지 않고, 특이한 부엌 구조를 이용. 아마도, 제 몸으로 빠르게 기어오르는 것이, 낑낑 거리며 의자를 끌어 오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으리라.)

2. 조심조심 커피잔 손잡이를 잡고 바닥으로 내린다.

3. 아메리카노 개별 포장을 가위로 자른 뒤, 내용물을 잔에 털어 넣는다.

4. 냉장고에서 2L 사이즈 우유를 꺼내 잔에 붓는다.

(신랑의 밀크티는 항상 찰랑찰랑하여 바닥에 흔적을 남기는데, 녀석은 아비의 실수를 교훈 삼아 양조절을 잘했다.)

5. 오직 당신만을 위해 준비한 표정으로 잔을 배달한다.

네 나이에, 어미의 상상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구나. 아들이 커피를 만들어 왔을 과정은 상상해 보았지만, 커피를 만들어 올 거라는 것은 상상도 못 해 봤었다. 어딘가 우렁각시라도 숨겨놓은 걸까. 혼자서 커피로 어미 기분을 달래줄 생각을 다 하다니...

Unbelievable!!!


잔을 받아 들고, 첫 커피라며 사진을 찍고 호들갑스럽게 고마움을 표하고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는 역시 남이 타 준 게 더 맛있다. 다만, 오전에 마시는 밀크티 카페인으로도 충분한 편이라 12시 이후 카페인 섭취를 안 하는 편이다. (특별한 경우 제외) 하루에, 홍차 두 잔도 잘 마시지 않아서 오후 네시의 커피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한쪽에 슬며시 내려놓은 잔을 아들이 감지하기 시작했다.


"coffee?"


결국, 마지막 한 방울이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고 나서야 녀석은 만족스럽게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또렷한 정신을 자정이 한 참 넘어선 시각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 브런치 글을 올리고, 이웃 작가님들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은근? 글 권하는 사회다. 계속 읽게 만든다. 매일의 힘일까. 어느 순간부터 글이 조금 더 잘 들어온다. 읽는 속도도 올라간 듯하다. 폰으로 짬짬이 보는 것보다, 큼직한 화면으로 편하게 읽어 내려가니 좋았다. 그러다 보니, 한없이 읽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브런치 공화국. 글 권하는 사회가 맞다.

책 많이 읽는 이웃분들이 많아,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늘었다. 여러모로 글을 읽게 만든다.




잠이 든 지, 네 시간만에 아들이 얼굴을 들이밀고 눈을 뜨라고 했다. 어미가 정신을 못 차리자, 아들은, 또다시 커피를 타오겠다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머그잔에 어제보다 물이 많이 담겨 커피는 맛이 없었다. 그래도, 아들이 타 준 커피는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기에 견딜만했다.


목격자, 강여사에 따르면, 정수기에 잔을 놓고는 물이 제대로 담길 자리인지 물 나오는 곳부터 잔까지, 손가락으로 맞춰보고 반대편으로 돌아 선반 위로 기어올랐다고 한다.


어제, 소리 없이 혼자서도 잘 타온 커피이건만... 새로운 목격자의 '참견과 우려'로 아들은 점점 불편해지는 목소리로, ’00 이가 할게‘라는 소리가 여러번 들려왔다.


사실,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들인데, 어른들은 옆에서 끊임없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조금 더 아끼기로 했다. 믿고 지켜보다 쏟아진 물을 함께 조용히 닦아주는 것이, 쏟아질까 조바심 내며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보다 훨씬 괜찮은 일임을, 아들의 커피가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Children are great imitators.
So give them something great to imi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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