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굽지 않는 남자
"I will bake scones!"
아들이 스콘을 먹고 싶다고 할 때 행여나 신랑이 먼저 주문을 할까 싶어 미리 쐐기를 박았다. Jamie Oliver는 밀가루 500g에 버터 150g을 넣었으니, 집에 있는 밀가루 220g에 넣을 버터 양을 방정식으로 풀고, 전자저울로 계량해 가며 정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What happened to the scones?"
베이킹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아들은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베이킹 자체의 시간보다, 베이킹하는 동안 여기저기 신경 쓸 일들이 생기면서 지연이 되었다) 고요함 속에, 스콘을 접시에 가득 담아 와서 한 입 베어문 신랑의 감상평이었다. 그러게, 스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지...
Oh, dear... 스콘을 바로 꺼내 식혔어야 하는데, 오븐에서 장기체류를 하다가 말라버려 딱딱해졌다. (어쩌면, 반죽에서부터 문제가 있었을 수도...) 아무튼, 막 구워낸 따뜻하고 부드러운 홈베이킹 스콘을 기대했다가... 치과에 갈 뻔했다.
강여사의 리뷰는, 천천히 조금씩 (갉아) 먹으면 끝맛은 나름 고소하니 먹을 수는 있다고 했다.
아들은 입도 대지 않았다. 스콘 먹고 싶다는 소리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홈베이킹 하겠다고 큰소리치고 나서 면이 서질 않았다. 기억에서 얼른 지우고자 사진으로도 남기지 않은 슬픈 스콘 사건이었다.
저녁에 신랑이 갑자기 에너제틱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기 드문 현상이다. 달걀 네 개 풀기를, 유리 냄비 중 가장 큰 걸로 꺼내 왔다. 어찌하여 이 소란인고.
"I'll bake a cake."
저녁 8시가 넘어, 갑자기 케이크를 굽겠다고 한다. 아들은 케이크를 외치며 덩달아 신이 났다. 저녁 먹은 설거지는 원래 신랑 담당인데, '설거지해 주실 수 있나요'라는 존댓말로 물을 때, 이미 계획이 있었던 거다.
분명 케이크라 했는데, 잠깐 뭐 좀 하고 돌아오니 이미 반죽이 다 끝나 오븐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또 조금 있다 보니, 다 구워졌다며 케이크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며칠 전, 아들 기분 풀어준다고 사 온 동전 초콜릿을 까서 올리니, 따끈한 케이크에 바로 녹아 펴 바를 수가 있었다.
아주 빠르게 뚝딱뚝딱해 놓고... 먹어보니 맛도 좋았다.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으면서 왜! 왜! Why!
신랑은 아주 무심히, 설거지하기 귀찮아서라고 했다. 케이크계의 숨은 고수가 베이킹을 하지 않는 이유가 설거지였다니. 저녁 설거지에 질려, 베이킹 이후 설거지는 상상도 하기 싫었던 게군. 그러게, 계란 네 개 푸는 데 왜 왕유리 냄비를 꺼내 오시냐고요.
A 가 하기 싫은 이유는 A 때문이 아니라, A로 인해 생기는 B 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는, 이미 알고 있던 교훈을 되새겨 본다.
식기 세척기가 생기면, 홈메이드 케이크를 조금 더 자주 먹게 될 수 있는 것일까.